<본 아이덴티티>를 필두로 한 본 시리즈의 제 일 명제는 ‘나는 누구인가?’라는 본의 정체성 찾기였다. 그리고 그 답은 9년 전 시리즈 <본 얼티메이텀>을 통해 나왔다. 기억을 통째로 잃어버린 본이 사실은 CIA가 만들어낸 인간 병기였다는 사실을 제이슨 본이 알았으니, 그의 정체성 찾기의 여정은 일단락되는 듯했다.

영화 <제이슨 본> 스틸 이미지

자신의 정체성을 찾는 데 성공한 본 시리즈에 한때는 위기가 찾아왔다. <본 레거시> 때문이었다. <본 레거시>는 맷 데이먼이 출연하지 않아 혹평을 산 게 아니라 이전 시리즈보다 떨어지는 퀄리티를 갖고 있었기에 기존 본 시리즈에 매료된 팬들의 원성을 사기에 충분했다. 4년 전 본 시리즈의 위기를 의식이라도 한 듯, 맷 데이먼과 이전 시리즈의 감독이 의기투합하여 9년 만에 본 시리즈 팬들의 목소리에 부응한 작품이 <제이슨 본>이다.

영화 속에 등장하는 CIA의 새로운 프로그램인 ‘아이언 핸드’는 9.11 이후 국가가 테러를 방지한다는 명분 아래 진행된, 개인의 사적인 행적을 국가 안보라는 당위성 가운데서 합법적으로 감시할 수 있는 부시 행정부의 전 방위적 감시 체계를 떠올리기에 충분하다. 아이언 핸드는 현실 속 구글이나 페이스북과 같은 세계적인 소셜 미디어 프로그램을 통해 공권력이 소셜 미디어 프로그램을 사용하는 다수의 개인을 감시할 수 있는 ‘디지털 빅브라더’ 프로그램.

영화 <제이슨 본> 스틸 이미지

이런 디스토피아적인 프로그램은 공익을 위해서라면 국가 권력이라는 빅브라더에게 사생활이 침해당하는 것쯤은 감수할 수 있어야 한다는 ‘디지털 빅브라더’의 폐해를 초래하기에, 이전의 제이슨 본이 트레드스톤에 맞서 싸웠다면 이번에는 CIA가 아이언 핸드를 활성화하는 것을 막기 위해 투쟁한다.

이전 세 시리즈는 제이슨 본이 자아를 찾는 투쟁기였다. 이런 ‘자아 찾기’ 여정을 이번 시리즈에서도 반복한다면 안이한 시리즈로 퇴보할 것이기에, 이번에는 제이슨 본의 아버지가 어떤 사람이었는가를 되짚어가는 아들 제이슨 본의 추적담으로 살짝 변주한다. 제이슨 본이 CIA의 인간 병기였다면, 그의 아버지의 행적을 되짚어봄으로 말미암아 제이슨 본이 기억하지 못하는 퍼즐 조각을 맞추는 것이 이번 제이슨 본의 과제라는 이야기다.

영화 <제이슨 본> 스틸 이미지

기존 팬들에게는 찬사를 받을지 모르지만, 9년 만에 돌아온 제이슨 본 시리즈의 유일한 약점은 ‘동어반복’이다. CIA가 세계 곳곳의 CCTV와 디지털 기기를 조종해 제이슨 본을 추적하는 과정, 현지의 공권력을 무력화하는 ‘팍스 아메리카나’적 발상의 CIA와 제이슨 본의 투쟁의 행적, 시리즈마다 CIA 요원 가운데 한 명이 CIA가 뒤쫓는 제이슨 본의 중요한 조력자가 된다는 설정, 관객의 시각을 현란하게 만드는 화려한 차량 추격전 등 이전 시리즈의 궤적이 반복된다. 때문에 이전 시리즈보다 진일보하지 못해 보이는 약점을 새로 나온 이번 속편이 안고 있다.

하지만 이런 약점에도 불구하고, SWAT 기동대 트럭이 다수의 차량을 밀어붙이는 대규모 물량 공세 카 체이싱 장면 등은 제이슨 본의 귀환을 오랫동안 기다려 온 전 세계 팬들의 기대에 부합하기에 충분해 보인다.

늘 이성과 감성의 공존을 꿈꾸고자 혹은 디오니시즘을 바라며 우뇌의 쿠데타를 꿈꾸지만 항상 좌뇌에 진압당하는 아폴로니즘의 역설을 겪는 비평가. http://blog.daum.net/js7kei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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