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조선일보 4월1일치 오피니언면 ‘동서남북’ 란에 실린 이한우 사람들 팀장의 칼럼 <“그 많던 촛불은 다 어디로 간 것일까?”>의 플롯의 원형을 유지하며 주어와 목적어, 서술어 등을 대체해 쓴 것임을 밝힙니다. 칼럼은 ‘민주주의의 위기’라는 현실 정세 인식이 ‘엄살’이고 ‘과장’이라며, 2008년 촛불이 좌파 언론인과 사회운동가들의 ‘양치기 소년’식 허위적 선동임을 다수 국민들이 깨달아 꺼져버렸다고 ‘진단’했습니다. 그러나 낱말 몇개만 바꿔 끼우면 이 칼럼이야 말로 허위적 선동임이 드러납니다. 조선일보는 고생이 많고, 칼럼 뒤집어 읽기는 여전히 차암~ 쉽습니다.

[동문서답] “그 많은 충견들은 다 어디로 갈까?”

민주주의에 침묵하란다. 주로 수구 진영에서 나오는 주장이다. 이들은 언론관련법 개정부터 촛불시위 수사, MBC ‘PD수첩’ 수사, YTN 노조위원장 구속, 박연차 관련 야당 의원들의 사법처리 등이 모두 이 땅의 민주주의와는 상관없는 ‘법치’의 일환이라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것은 굴종이요, 왜곡이다.

지난 31일 이명박 정부의 장관들은 국무회의에서 “인권위 정원을 208명에서 164명으로 44명 줄이고, 현행 ‘5본부 22팀 4소속기관’을 ‘1관 2국 11과 3소속기관’으로 축소”하는 민주주의 위기를 자초했다. 이는 이명박 정부의 방송통신위원장인 대통령의 멘토 최시중 위원장이 지난해 9월, “민영방송이 다루기 쉽다”는 망언과 같은 맥락이다. 이유는 인권 축소와 표현 통제가 이명박 정부의 정체성과 성격에 대한 적극적인 표현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언론인의 한 사람으로서 최근 MBC ‘PD수첩’ 수사나 YTN 노조위원장 구속을 지켜봐야 하는 심정은 까놓고 불쾌하다. 물론 MBC PD들‘만’이 정당했다는 뜻도 아니고 YTN 노조위원장이 ‘뭐든’ 잘했다는 뜻도 아니다. 언론인이 범법행위를 했다면 그에 해당하는 처벌을 받아야겠지만, 범법행위를 하지 않았는데 범죄자 취급을 받는 것은 보편적 권리 침해임은 물론 오히려 국가적 범법행위이다.

더욱이 그 강도(强度)가 과연 지금처럼 강해야 하는 것인지를 두고서 현재 수사당국이 보여주는 조치에 절대로 동의하기 힘들다는 생각이 드는 게 사실이다. 이렇게까지 ‘충견’ 노릇을 해야 하는가라는 의문이 든다는 말이다.

▲ 4월 1일자 조선일보 29면.
어찌되었건, 국무위원들처럼 ‘인권’을 업신여기고 최 위원장 식으로 ‘민영방송이 다루기 쉽다’ 운운하는 데는 결코 동의할 수 없다. 수구들은 늘 법치(法治)는 공평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맞는 말이다. 기자와 피디가 문제라면 구본홍과 정운천 역시 법치의 성역이 될 수는 없다. 그렇지 않고서, MBC에 대한 압수수색이 이뤄진다면 국민들이 다름 아닌 바로 그 독단적 법치에 대한 저항과 항쟁에 나설 수밖에 없다. 정부에 문제가 있으면 국민이 나가서 촛불을 드는 것은 당연한 일 아닌가? 정권의 일련의 공권력 행사는 ‘독재’라는 비판을 면키 어려울 것이다.

문제는 국무위원이나 최 위원장과 같은 생각이 그 개인들만의 생각이 아니라는 데 있다. 요즘 수구 언론과 한나라당 국회의원, 뉴라이트들은 입을 모아 민주주의와 언론자유에 별일 없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3월 11일 뉴라이트가 발표한 성명을 보면, 아예 “MBC, 대기업이 사회악이면 대기업 광고 받지 말라”였다. 이들은 뜬금없이 MBC에 대한 광고 금지 권유 운동에 돌입하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들의 말이 사실이라면 큰일 아닌가? 민주주의가 실종되게 생겼으니 말이다. 하지만 언소주를 잡아낸 경찰이 이들까지 잡아 갈리는 만무한 세상이다.

어찌 보면 민주주의에 침묵하라는 말 자체는 그다지 나쁜 말은 아닌 듯하다. 이미 인터넷에서는 미네르바가 없어지면서 비판적 논객들이 입을 다무는 민주주의의 위기가 호소되고 있고, KBS를 비롯한 방송에서도 정부에 비판적인 인사들의 목소리를 없애려는 노력이 있다. 이러한 것은 민주주의에 대해 떠들었다가 자칫 잡혀갈 것을 대신 우려해주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학계의 대표적인 우파로 꼽히는 중앙대 이상돈 교수(법학)는 30일 자신의 홈페이지에 올린 ‘명예훼손죄와 명예훼손소송’이란 제목의 글에서 “검찰은 PD수첩 관계자에 대한 수사가 정운천 전 장관 등 피해자가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한데 따른 것이라 주장하지만 설득력 있게 들리지는 않는다”면서 “정 전 장관 등은 민사소송을 제기할 능력이 없는 이른바 ‘사회적 약자’가 아니고, 또한 사건이 있은 후 반년이 지나서, 그리고 그것도 ‘무슨 근거로 언론을 수사하느냐’는 비난이 일자 고소를 했으니 의구심을 갖게 되는 것”이라고 썼다. 그 답은 이미 나와 있다. 2008년 촛불에 씻기 어려운 내상을 입은 정권, 수구 언론인과 사이비 사회운동가들이 선동하여 민주적 법치가 아닌 강압적 법치를 시행하고 있다는 사실을 국민이 알아가고 있다.

‘충견’ 신세가 돼버린 우파의 충성에 누가 더 동조하겠는가? 아마 당분간은 진실을 이야기해도 잘 먹히지 않을 것이다. 그건 누구 탓할 것 없이 자업자득(自業自得)이다.

잘 들여다보면 민주주의에 대한 침묵이 아니라 어이 상실의 침묵이다. ‘그 많던 촛불들은 절대로 사라진 것’이 아니다. 다만, 더 이상 정부에 희망을 가질 수 없는 막막함 때문에 망설이는 것이다. 진정 수구들이 건강한 민주주의의 한 축으로 다시 태어나려면 사회를 반동과 절망으로 물들이고 있는 것에 대한 조속한 중단과 사과가 있어야 할 듯하다. 그것이 이 정권이 대한민국을 위기에서 건져 올리는 첫 걸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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