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해직된 조승호 YTN 기자가 지난 3월 28일 토요일, 오후 6시부터 다음날 오전 9시까지 구속된 노종면 위원장을 생각하며 뛴 ‘전주 울트라 마라톤’(100km) 후기입니다. 원문은 YTN 노조 홈페이지(http://www.ytnmania.com)에서 볼 수 있습니다.

< 오프닝: 출발선에 서기까지 >

사실 100km를 뛰는 것보다 제게 더 어려웠던 것은 100km를 뛰겠다고 '마음먹은' 것입니다. 아는 형님의 "함께 뛰자"는 제의에 겁없이 덜컥 신청은 했지만, 2주전 처음으로 겨우 풀코스를 뛰어본 제 입장에서는 마지막 순간까지 망설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첫 풀코스의 후유증인지 몰라도 동아마라톤 이후 1주일은 전혀 운동을 하지 못했습니다. 이제 다시 운동을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지난주 일요일 새벽 아내와 함께 달리기 모임에 나가다 집앞 주차장에서 경찰에 체포됐습니다.

체포영장에 적시된 이유는 '경찰 조사에 응하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함께 체포된 4명 모두 그동안 3차례 경찰조사에 성실히 응했고, 나흘 뒤 추가 조사를 받기로 경찰과 합의가 돼 있던 상황이었습니다. 그리고 구속영장이 신청됐습니다. 저와 다른 동료는 영장실질심사를 거쳐 "도주 및 증거인멸의 우려가 없다"는 이유로 풀려났지만, 우리와 생사고락을 함께 해온 노종면 YTN 노조위원장은 풀려나지 못하고 구속됐습니다. 저는 아직도 이유를 모릅니다. 우리가 왜 체포됐는지, 왜 구속영장이 신청됐는지, 그리고 노종면은 왜 구속이 돼야 했는지?

법원은 노종면에게 "도주와 증거인멸의 우려가 있다"면서 영장을 발부했습니다. 그러나 가슴에 손을 얹고 감히 말씀드리건데, 우리는 도주나 증거인멸을 할 생각이 없고 이유도 없습니다. 공정방송의 소명을 갖고, 또 기자로서 언론인으로서의 자존심을 걸고 한 일인데 왜 우리가 달아나야 하며, 왜 우리가 한 떳떳한 일을 부인하겠습니까? 세상 일 이라는게 어디 상식으로만 통하겠습니까만, 그래도 그렇지 이렇게 상식 밖의 일들이 버젓이 일어나리라고는 상상도 못했습니다.

제가 제 능력에 맞지 않게 100km 도전의 마음을 먹고 출발선상에 서게 된 것도 어찌보면 노종면 구속으로 대변되는 우리 사회의 이런 부당함에 항의하기 위해서인지도 모르겠습니다.

< 1-15km >

아직 한번도 가 보지 못한 길... '100km'라는 용어만으로도 제게는 위압적이었습니다. 내가 과연 그 길을 끝까지 달릴 수 있을까?

'YTN 공정방송' 스티커를 가슴에 달았습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YTN 노조원들의 공정방송 의지를 보여주기 위해 시작한 일이지만, 언젠가부터는 이 스티커가 중간에 포기하고자 하는 제 마음을 다잡아주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제가 감히 부탁드리기 어려웠지만, 함께 뛴 형님도 기꺼이 'YTN 공정방송'을 가슴에 달았습니다.

출발 신호가 울리면서 4백여명의 참가자들이 일제히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다른 참가자들과 속도를 맞출 능력이 못 됐지만 초반에는 약간 무리를 해서라도 함께 달렸습니다. 전주 시내를 빠져나갈 때까지는 교통신호를 통제하는데 혹시라도 뒤처지면 전주 시민들에게 민폐가 클 것 같아서였습니다. 10km쯤 지나자 시내를 거의 벗어나고 서쪽 하늘엔 석양이 아름답게 지기 시작했습니다. 평소 하프(21km)까지는 자주 뛰어본 만큼 초반에는 크게 힘도 들지 않았고 즐거운 마음으로 달렸습니다. 그 뒤 80여km의 과정에 어떤 고통이 닥칠지 이때는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 조승호 기자. ⓒYTN 노조
YTN 노조의 투쟁도 이렇게 길어질지, 이렇게 고통스러울지 아무도 몰랐습니다. 공정방송을 해야 한다는 우리의 요구가 지극히 상식적이고, 따라서 쉽게 관철될 줄 알았습니다. 대통령 후보 특보 출신으로 정치적 편향성을 가질 수 밖에 없는 구본홍씨가 YTN 사장으로 오면 YTN은 공정방송을 할 수 없다고 믿었고, 지금도 그렇게 믿고 있습니다.

그러나 상식적인 해결을 기대한 우리에게 내려온 것은 가혹한 징계였습니다. 6명 해직, 6명 정직, 8명 감봉, 13명 경고... 1980년 신군부의 언론통폐합 이후 28년만의 언론인 대량해직으로 기록된 이 징계에서 당시 정치부 국회반장이던 제 이름도 해직자 6명의 명단에 올랐습니다. 그동안 국회반장을 맡아 화장실 갈 시간도 부족할 만큼 바빴는데, 이제는 좀 여유를 갖고 운동도 열심히 하고, 구본홍씨 반대도 본격적으로 하라는 사측의 배려(?)로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클라이막스라고 생각했던 이 징계도 나중에 보니 서막에 불과했습니다.

< 15-50km >

15km쯤 지나자 해가 다 지고 주변이 깜깜해졌습니다. 헤드랜턴과 앞뒤의 붉은색 깜빡이등을 모두 켰습니다. 어둠 속에 끝없이 길게 펼쳐져 있는 빨간 반딧불(깜빡이등)의 행렬이 아름다웠습니다. '앞사람의 반딧불이 내게 아름답게 보이듯이, 내 등의 반딧불도 뒷사람에게는 아름답게 보이겠지?'하며 즐거운 생각도 해 봅니다. 그러나 이런 감상도 곧 현실로 돌아왔습니다. '이 반딧불의 행렬을 놓치면 길을 잃는다' 중간중간에 자원봉사자들이 배치됐지만 생전 처음 와 본 곳에서 어둠 속을 달린다는게 여간 불안하지 않았습니다.

20km쯤 지나자 이번 대회 출전 전부터 저를 걱정시켰던 부상들이 도지기 시작했습니다. 동아마라톤 이전부터 아팠던 오른쪽 장딴지가 뒤틀리기 시작했고, 하루 전날 노조 체육대회때 다쳤던 왼쪽 발목이 시큼거리며 부어올랐습니다. 한발 한발 디딜 때마다 왼쪽 발은 발목이, 오른쪽 발은 장딴지가 아팠습니다. 조금 속도를 낮춰서 달리니 고통도 조금 덜했습니다. 함께 아팠던 왼쪽 무릎이 아직 아무 소식이 없는 것이 그나마 다행이었습니다.

오르막이 나오면 걸었고, 평지나 내리막길은 뛰었습니다. 오르막길이 사실상 휴식 시간이었습니다. 어느 순간에 보니까 제 마음은 오르막길 나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참 아이러니라고 느꼈습니다. 평소 그렇게 싫어하던 오르막길인데, 이때만큼은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었습니다.

뛰기 시작한지 6시간 45분만에 50km 체크포인트에 도착했습니다. 100km를 완주하려면 중간에 뭐든지 억지로라도 먹어둬야 한다는 얘기가 기억나 체크포인트에서 주는 콩나물 국밥을 코를 처박고 먹었습니다.

평소 싫어하는 콩나물 국밥이 왜 이렇게 맛있던지... 또 추운데 있다가 천막 안에 들어오니 어찌나 몸이 노곤하고 졸음이 밀려오던지... 그러나 어쩔 수 없었습니다. 모든 유혹을 뿌리치고 천막을 나와 다시 어둠과 추위 속으로 달려야 했습니다.

국밥과 졸음의 유혹과는 성격이 좀 다르지만, 제게도 뿌리치기 힘든 '복직'의 유혹이 있었습니다. 지난해 구본홍씨의 출근을 막으면 안된다는 법원의 가처분 결정이 내려질 때 노사간에는 해직자 복직에 거의 근접하는 합의가 이뤄질 뻔 했습니다.

법원의 조정 아래 '해직자 5명 복직, 해직기간 임금 지급, 무리한 징계에 대한 사과'라는 합의가 이뤄질 뻔 했지만, 문제는 해직자 전원이 아니라 5명이라는 점이었습니다. 사측이 노종면 노조위원장만큼은 복직시키지 않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종면이는 그 합의를 받아들이자고 했습니다. 자기 혼자 희생하면 모두가 구제될 수 있다고... 그러나 다른 해직자 5명은 절대 받아들일 수 없다고 했습니다. 너를 희생시키면서 우리가 어떻게 살아남느냐고...

저는 지금도 그 당시 자신을 희생시키려 했던 종면이의 마음을 고맙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YTN 노조원 그 누구도 노종면을 포기할 수 없습니다. 이미 노종면은 우리의 목숨과도 같은 '공정방송'의 상징이 돼 버렸기 때문입니다.

▲ 조승호 기자. ⓒYTN 노조
< 50-63km >

따뜻한 국밥으로 배를 채우고 나니 속이 든든해져서 달리기가 한결 나았습니다. 터벅터벅 달리다 보니 60km 무렵에 밤티재 고개가 나왔습니다. 이때쯤에는 달리는 사람들의 속도 차가 나서 간격이 다소 벌어졌을 때입니다.

고갯길 오르막부터 내려갈 때까지 1시간 10분 가량 혼자서 달렸습니다. 중간에 주자 1명이 저를 추월해 지나쳤을 뿐 1시간 10분 내내 앞뒤로 반딧불(깜빡이등) 하나도 볼 수 없었고, 지나가는 차량도 3대 밖에 없었습니다.

'옛날 같으면 이런데서 산적이 나오거나 호랑이가 나왔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가로등도 없이 온 사방이 깜깜했고, 눈에 보이는 것은 길 옆 시꺼먼 나무들의 윤곽과 제 헤드랜턴 불빛에 반사되는 도로옆 교통표시 뿐이었습니다.

갑자기 겁이 덜컥 났습니다. 귀신이 나올 것 같다거나 그런 류의 겁은 아니었지만 아무튼 온 세상이 깜깜하고 아무도 보이지 않는다는게 그토록 두려울 수가 없었습니다. 저 혼자 소리 내어 노래를 불렀습니다. 장르도 없이 그냥 아는 노래 다 불렀습니다. 파업가, 바위처럼, 임을 위한 행진곡, 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을, 솔아 솔아 푸르른 솔아... 기자들이 같은 표현을 중복해서 쓰는 걸 싫어하는지라 노래도 한번 부른 노래는 또다시 부르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보니 진짜 사나이 같은 군가도 불렀고, 산토기, 학교종, 나비야, 곰세마리 같은 동요까지 총동원해 미친 듯이 불렀습니다. (그때문에 지금 목이 쉬었습니다.)

누군가 제 모습을 봤다면 '세상에 별 미친 놈이 다 있네' 생각했을 겁니다. 그러나 그 당시엔 쪽팔림보다 혼자라는 두려움이 훨씬 더 컸습니다. 정말이지 '미친 놈'하고 욕을 해도 좋으니까 누군가 제 옆에 있어주기를 바랬습니다.

악플보다 무플이 더 무섭다고 했나요? 제가 밤티재에서 그랬습니다. 그리고 지금의 YTN 노조가 그렇습니다. 초기에 많은 이들의 관심과 지지가 있었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관련 뉴스가 잠잠해지고 많은 분들이 YTN 사태가 모두 해결된 것으로 알고 계십니다.

그러나 우리는 지금도 매일같이 구본홍씨 반대의사를 표명하고 있고, 내부적으로는 사측의 공정보도 방해와 편파보도에 끊임없이 저항하고 있습니다. 사태가 모두 해결됐다면 저들이 저렇게 무리수를 둬가면서까지 노조원들을 체포하고 구속시키려 할 이유가 있었을까요? 저들이 눈엣가시처럼 여기는 YTN 노조의 공정방송 투쟁이 지금도 계속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 63-77km >

밤티재를 내려오고 나서 평지가 나오자 이제 고갯길은 끝났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오산이었습니다. 밤티재보다 더 높고 긴, 전주 인근에서 가장 험하기로 소문난 모래재가 있었습니다. 어느 참가자가 후기에다 '모래재를 코스에다 넣은 사람은 미친 놈일 것이다'라고 쓸 정도였습니다.

6km 가량 계속해서 오르막길이었는데 경사도 밤티재보다 훨씬 더 급했습니다. 다행히 이번에는 주변에 주자들이 함께 있어서 두렵지는 않았지만 오르고 올라도 끝이 없었습니다. 산 옆을 끝없이 S자 모양으로 길을 냈는데, 고개를 들면 저 높은 곳에서 먼저 달리는 주자들의 헤드랜턴 불빛들이 어른거리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아~~ 저기까지 어떻게 올라가나?' 그런데 간신히 그 지점에 올라가보니 또다시 더 높은 곳에서 똑같은 헤드랜턴 불빛들이 어른거렸습니다. 맥이 탁 풀리는 이런 좌절을 몇번이나 거듭한 끝에 정상에 올랐습니다.

정상에 73km 체크포인트 천막이 있고 거기에 현수막이 걸려 있었습니다. 전주울트라 마라톤 대회위원장이신 배형규님의 부인(다들 '꽃님이'라고 부르시더군요)을 추모하는 글이 있었습니다. 고인이 생전에 하셨던 말씀같은데 길지 않은 그 글귀를 다 외운다고 했지만 당시 제 정신이 정상이 아니라서 지금 잘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다만 '사랑하며 살자, 긍정적으로 살자'는 내용이 들어있었던 것으로 기억납니다.

사랑... 아마 인류에게 가장 소중한 말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런데 누구를 사랑해야 합니까? 누구라도 다 사랑해야 합니까? 나와 내 사랑하는 사람들의 사랑을 가로막는 자들까지 모두 사랑해야 합니까? 쉽게 말하겠습니다. 저를 해직하고, 노종면을 구속시키고, 우리 노조원들의 공정방송 외침을 억누르는 저들까지도 모두 사랑해야 하는 겁니까?

저는 YTN 노조원으로서, 위원장인 노종면을 절대적으로 지지하고 존경합니다. 지금까지 저와 노종면의 의견이 다른 적은 딱 한 번 있었던 것으로 기억납니다. 시기상조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YTN 사태가 잘 해결되면 노조를 억압하고 공정방송을 훼손한 자들과는 어떻게 관계를 설정해야 하느냐의 문제였습니다.

저는 저들을 결코 용서할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친일파를 청산하지 못한 것이 우리 역사에 큰 불행을 가져온 것처럼 저들을 물리적으로 처벌하지는 못해도 최소한 도덕적인 처벌은 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노종면의 생각은 달랐습니다. 사태가 해결된 뒤 YTN이 방송을 제대로 하기 위해서는 노조에 반대했던 사람들까지 모두 감싸안고 다시 화합하는 길 밖에 없다고 강조했습니다.

저는 솔직히 정답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저들이 화합을 외쳤던 노종면을 지금 감옥에 잡아넣었다는 사실입니다.

▲ 조승호 기자. ⓒYTN 노조
< 77-100km >

80km를 넘어서자 온 몸의 진이 다 빠졌습니다. 왼쪽 발목과 오른쪽 장딴지에 이어 그동안 참아줬던 왼쪽 무릎까지 통증이 오기 시작했습니다. 부상의 위험을 뻔히 알면서도 시간에 쫓겨 모래재 급경사길을 무리하게 뛰어내려온게 화근이었던 것 같습니다.

어느덧 동녁이 환히 밝아왔습니다. 시골 농부들은 어스름이 가시기도 전에 논에 나와서 분주히 움직이고 있습니다. '아~~ 저들에게는 내가 어떤 모습으로 비춰질까?' 억지로 이런 생각을 하며 몸의 고통을 잊으려 애썼습니다. 서울에서 내려온 집사람과 아는 형님이 옆에서 함께 뛰며 응원을 해줬습니다.

두 사람이 5미터 정도 앞에서 뛰어가고 제가 그 뒤를 쫓아갔습니다. 그런데 두 사람이 처음에는 좀 뛰면서 뒤를 돌아보는 것 같더니 어느 순간부터는 걷기 시작했습니다. 두 사람이 걷는 것을 보자 제 자존심이 울컥 치밀었습니다. 제가 속도를 내서 두 사람을 다시 뛰게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지만 어디까지나 마음 뿐이었습니다. 안간힘을 써서 속도를 내봤지만 앞서 걷고 있는 두 사람과의 거리는 전혀 좁혀지지 않았습니다. 저는 나름대로 뛴다고 뛰고 있었지만 걷는 것과 똑같은 속도였습니다. 정말이지 이때의 좌절감이란... 솔직히 아주 아주 잠깐은 '이 두 사람이 나를 응원하러 왔나? 아니면 좌절시키려고 왔나?'하는 원망도 들었습니다. 그러나 서울에서 저 멀리 전주까지 내려와 새벽잠을 설치며 저를 응원하고 격려하는 이들에게 어떤 말로도 고마움을 다 표현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내 몸의 고통보다 더 괴로워하고, 내 자신의 완주보다 더 기뻐하는 이들이 있었기에 그토록 고통스러웠던 마지막 20여km를 포기하지 않고 완주해 낼 수 있었습니다.

우리 YTN 동료들도 똑같습니다. 저의 해직을 저보다 더 아파했고, 저의 체포에 저보다 더 분노했고, 구속영장 기각으로 제가 풀려날 때 저보다 더 기뻐했습니다.

제가 해직되고 나서 해직을 실감한 변화가 4가지가 있습니다. 회사 출입카드가 작동 정지되고, 기사작성 시스템에 접속이 불허되고, 회사 공지사항을 볼 수 있는 이메일센터 접속이 차단되고, 월급이 나오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어느 후배가 어떻게 구했는지 모르겠지만 출입카드를 구해줬고, 다른 후배가 자신의 기사작성 시스템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공유하자며 가르쳐줬고, 또다른 후배가 자신의 이메일센터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제게 가르쳐 줬습니다.

급여도 회사 동료들이 '희망펀드'라는 이름으로 자발적으로 성금을 내 현재 6개월째 해직 전과 똑같이 나오고 있습니다. 저희들이 복직돼 이 돈을 다시 반납하게 되면 동료들은 수익률 0%의 원금을 돌려받게 되겠지만, 혹시라도 복직이 안될 경우에는 돌려받지 못하게 되는 펀드입니다. 이런 위험스러운 펀드에 지금까지 2억원이 넘는 돈이 모였습니다. 저를 비롯한 6명은 해직됐지만, 결코 해직되지 않았습니다.

전날 오후 6시에 출발해 다음날 아침 9시가 넘어 15시간 이상을 달려 골인점에 들어설 때 제 눈앞에는 함께 뛰고 응원을 해 준 동호회 분들의 기뻐하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그리고 그 위에 노종면과 YTN 동료들의 얼굴이 오버랩됐습니다.

< 클로징 >

함께 뛴 형님이 저에게 뜨거운 축하를 보내면서 한마디 농담을 던졌습니다. "너가 100km 울트라를 뛴 것은 울트라맨들에 대한 모독이다"라고... 말씀드리기 부끄럽지만, 이 말은 사실입니다. 100km를 뛰려면 최소한 몇달씩은 연습하고 준비해야 하는데 저는 솔직히 별로 준비하지 못한 채 100km에 도전했습니다.

그러나 노종면 구속으로 대변되는 우리 사회의 부당함에 항의하고 잊혀져가는 YTN 노조의 공정방송 투쟁을 달림이분들에게라도 이렇게나마 알리고 싶어서 이 악물고 뛰었습니다. 저의 무모함을 준엄하게 꾸짖으시더라도 저의 이런 진의만큼은 너그러이 이해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무모함의 대가는 톡톡히 치르고 있습니다. 지금 하반신이 거의 움직이지 못할 정도로 마비됐고, 가만히 누워있어도 다리가 아파 잠도 제대로 못자고 있습니다. 몸살도 걸렸고, 밤티재에서 노래 부르느라 목도 쉬었습니다.)

현재 YTN 노조원들은 낙하산 사장 구본홍씨의 방만경영을 규탄하는 파업을 합법적으로 벌이고 있습니다. 파업 자체를 문제삼을 수 없게 된 사측과 정부는 대신 무리수를 둬가며 노종면 위원장을 체포하고 구속시켰지만 이는 노조원들의 분노에 기름을 부어 오히려 파업 참가율이 더 높아졌습니다.

노종면은 YTN 달리기 동호회인 'YTN 달리는 사람들' 회원입니다. 노종면은 5월3일 상암경기장에서 열리는 여성마라톤대회에 참가신청을 냈고 그날 아내와 세 자녀가 모두 나와 응원을 할 예정이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영어의 몸이 돼 출전 자체가 불투명하게 됐습니다.

노종면은 오늘 검찰에 송치됐고, 곧 구속적부심을 받을 예정입니다. 최소한의 상식이 통하는 세상이라면 도주 우려가 없는 만큼 당연히 풀려날 것으로 믿습니다. 그리고 노종면이 풀려날 때까지 저는 가슴에 '살아남은 자의 슬픔'을 품고 '공정방송' 스티커를 단 채 계속해서 달릴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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