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의 ‘권력층 눈치보기’ 의혹이 언론에 자주 등장하고 있다. 은폐나 축소 혹은 늑장 수사, 봐주기 수사의 이름으로 불리는 수상한 발표들로 여론의 비판을 한 몸에 받고 있다.

가장 최근 발생한 것은 ‘청와대 행정관 성매매 의혹’이다. 지난 24일밤 서울 마포경찰서는 방통위에서 파견나간 김모 행정관을 성매매 혐의로 입건해놓고도 일체 공개하지 않다가, 28일 언론보도가 나간 후 해명하면서 ‘말 바꾸기’로 의혹을 더욱 키우고 있다.

▲ 한국일보의 3월 31일치 기사
31일 <한국일보>는 “청와대 김모 행정관이 안마시술소에서 입건됐다는 당초 경찰 설명과 달리 케이블방송업체로부터 술자리에 이어 성 접대를 받은 정황이 드러나 경찰이 사건을 축소은폐하려 했다는 의혹이 일고 있다”면서 “경찰은 성 접대 의혹에 대해 수사를 기피하는 모습까지 보이고 있다”고 보도했다.

그러니까 경찰이 단속장소를 ‘F안마시술소’로 발표했다가 뒤늦게 ‘모텔’로 바꾸어 말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한국일보는 “모텔에서의 ‘2차’ 성 접대를 숨기고 개인의 단순 성매매 사건으로 축소하려 한 것”이라고 의혹을 제기했다.

또 경찰쪽은 “28일의 언론 보도를 보고 나서야 청와대 행정관인 줄 알았다”고 했지만, 또 다른 경찰 관계자는 “서장이 직접 지휘부에 보고했다”고 밝혀 말이 엇갈리고 있다. 청와대는 이와 관련해 지난 27일 김아무개와 장아무개 청와대 행정관의 사표를 이미 수리한 상태다.

이외에도 경찰은 성 접대를 받은 정황이 밝혀졌지만 단속 후 5일이 지나서야 조사에 착수했고, 주상용 서울경찰청장은 기자간담회에서 “현 단계에선 성 접대 의혹에 대해 수사 계획이 없다”며 “성매매로 적발된 만큼 성매매 부분만 수사하겠다”고 선을 그었다. 김모 행정관과 함께 2차로 간 나머지 일행 등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설명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고 장자연씨 문건관련 수사에도 경찰의 대응은 석연치 않다. 언론에 의해 ‘언론사 대표 등 고위급 유력인사들이 포함돼있다’는 고 장자연씨의 문건이 공개된 이후, ‘말바꾸기’를 계속하며 모호한 태도를 취하고 있다는 것이다.

▲ MBC '뉴스데스크'의 3월 19일치 기사
MBC는 ‘뉴스데스크’는 지난 19일 ‘눈치보기 수사’ 리포트에서 “고 장자연씨의 문건이 언론에 공개된 직후, 경찰은 즉각 문건을 입수하고 “성상납 강요 등과 관련된 인사들의 실명을 확인했다”고 밝혔다”면서 “그러나 이틀 뒤 문건에 특정 인물이 적혀 있지 않다고 말을 슬쩍 바꾸더니, 어제는 명단 자체를 갖고 있지 않다고 밝혔다”고 전했다.

이어 해당 리포트는 “급기야 오늘(19일)은 처음에 실명을 확인했다고 말한 건 추정해서 얘기한 것이라고 구차한 설명을 내놨다”면서 “유족들의 고소에 대해서도 경찰은 사실 관계를 확인해야 하므로 당장 피고소인을 부르기는 어렵다며 몸을 사리고 있다”고 비판했다.

무엇보다 경찰의 눈치보기, 그 결정판은 아마도 ‘청와대 용산 이메일 지침’ 의혹 때인 것으로 기억한다. ‘언론이 경찰의 입만 바라보고 있는 실정이니 계속 기사거리를 제공해 촛불을 차단하는 데 만전을 기해주기 바란다’는 내용이 들어있던 이메일. 이에 대해 지난달 11일 청와대와 경찰청은 일단 ‘이메일의 존재’를 부인했다.

하지만 하루만에 청와대는 ‘홍보담당 행정관이 개인적 행동이었다’며 구체적인 진상을 밝히지 않은 채 ‘구두 경고’로 어물쩍 넘어갔고, 이 행정관은 이틀 뒤 자진 사직했다. 경찰청도 청와대의 발표 후 경찰청 홍보담당관이 지난 2월 3일 ‘다음’의 개인 계정을 통해 이메일을 받았다고 밝혔다.

이후 ‘청와대 이메일’ 발송 시점을 놓고, 청와대와 경찰청의 ‘지난 2월 3일에 개인적으로 보냈다는 주장’과 야당의 ‘2월 3일 이전에 경찰청 홍보관보다 서울경찰청 인사청문팀에 먼저 보냈다’는 야당의 반박이 맞섰다.

이 문제로 두문불출하던 이동관 청와대 대변인은 일주일여 만에 기자들 앞에 당당하게 나타났다. 지난달 20일 이메일 홍보지침에 대한 기자들의 질문에 “엄청난 대형사건도 아닌데 시시콜콜 기억을 못한다”고 답했다.

▲ 경향신문 2월 20일치 사설
당시 <경향신문>은 같은날 사설에서 “살인마의 살인 행각을 부각시켜 구조적이고 제도적인 공권력의 인명 살상을 감추도록 여론을 조작하자는 발상이 어떻게 시시콜콜한 일인가. 또 자체 진상조사 결과마저 공개하지 않은 채 두서없는 해명만 믿어달라니 국민은 안중에 있는 것인가”라며 “그러고도 개인의 돌출행동은 어찌할 수 없다는 것이니, 언제든지 제2, 제3의 유사 사태가 재발할 것 같아 불길하다”고 지적했다.

이렇게 청와대가 기자들에게 작심하고 ‘배째라’로 맞서준 덕분에, 경찰청과 청와대 홍보담당 직원 간 오간 용산 참사 이메일은 곧 묻혔다. 당시 ‘눈치 작전’의 위력을 경험한 탓일까. 그 뒤로도 경찰의 언론에 대한 거짓말과 고위층 눈치보기 의혹이 계속 불거지고 있으니 말이다.

그렇다면 언론으로서는 피곤하더라도 끈질기게 ‘눈치 없이’ 실체에 접근하기 위해 보도하는 수밖에 없겠다. 바로 이런 때에 쓰는 말이 ‘국민의 알 권리’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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