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O없인 못살아~’
혼자서는 못산다. 상생하자. 아름다운 광고가 TV를 통해 나온다. ‘아름다운 기업, 금호아시아나’의 광고다. 금호아시아나가 지난해 인수한 대한통운에는 요즘 아름답지 않은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 대한통운 광주지사에서 1톤 탑차를 운전하는 택배기사 70여 명이 지난달 16일 집단 해고됐다. 이유는 이들이 소위 단체로 회사측과 ‘협의’를 시도했기 때문이다.

이 어려운 시기에 상생을 이야기하는 기업에서 일어난 일이다. 지역을 기반으로 성장한 기업이 지역민이기도 한 이들 노동자에게 이처럼 쉽게 해고통보를 할 수도 있다.

▲ 지난달 26일 오전 광주시 남구 대한통운 광주지사 앞에서 화물연대 광주지부 대한통운분회 조합원들이 집단 계약해지 사태 10일째를 맞아 기자회견을 갖고 회사 측에 원직 복직과 밀린 배달수수료 지급, 성실교섭 등을 촉구하고 있다.ⓒ광주드림 임문철 기자
70여명 갑작스런 해고

대한통운 광주지사는 세련되게 해고가 아닌 계약해지라고 했다. 택배기사들은 회사에 고용된 노동자가 아니기 때문에 해고가 아니고 계약위반으로 인한 계약해지라고 했다. 요즘에는 해고 당한 사람은 있는데 해고한 사람은 없는 경우가 많다.

대한통운 택배기사들은 법률상으로는 개인사업자. 그러나 이들은 사실상 회사의 지시를 받는 노동자다. 이른바 특수고용직 노동자다. 하루 아침에 일자리를 잃었다면 이들 입장에선 해고가 맞다. 그러니 법률상의 용어는 일단 접어두자. 어차피 법이란 것이 ‘약자’들 편이 아니란 것은 새삼스럽지 않는 일이다.

어쨌든 대한통운의 지시를 받고 대한통운의 일을 해서 그 대가로 임금(‘법률상’으로는 수수료)을 받았던 70여명은 물가인상과 유류비 상승 등을 고려해 사측에 운송단가 30원 인상을 요구했다. 운송단가 30원이 적정한지 아닌지 논의는 여기서 중요치 않다. 임금이나 운송단가는 일하는 사람과 사측이 얼마든지 요구하고 협상할 수 있는 일이다.

문제는 ‘협의’조차 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이들은 사측과 협의가 결렬된 바로 그날 문자메시지를 통해 사실상 해고 통보를 받았다. 이들 해고자들이 단지 ‘집단적’으로 문제를 풀려했다는 이유가 계약해지 사유다. (개인적으로 운송단가에 대한 부분을 ‘협의’할 수 있느냐라는 기자들의 질문에 지사장은 “그럴 수 없다”고 했다. 결국 개인적으로도 안되고 집단적으로도 안된다는 소리다. 마음에 안들면 그만두라는 소리와 다름 없다.)

▲ 계약해지로 복귀하지 못한 차량들이 대한통운 광주지사 정문 앞에 세워져 있다.ⓒ광주드림 임문철 기자
노조는 절대 안돼?

“다른 곳은 이런 문제가 없는데 유독 광주만 이러하다.”
“단체로는 협의할 수 없다. 오직 개인적인 협의만 가능하다.”
“저 세력들이 회사로 들어오면 회사가 마비될 것이다.”
“회사의 지시를 어기고 단체행동을 했기 때문에 즉각적인 계약해지를 할 수 있다.”

대한통운 관계자가 한 말들에는 몇 가지 불편한 ‘진실’이 녹아 있다. 하나는 사측이 해고된 노동자들을 계약관계에 있는 개인 사업주보다는 회사의 지시를 받는 노동자로 부리고 있다는 사실이고 또 하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체행동권’을 포함한 노동권을 절대로 인정할 수 없다는 인식이다.

거기다 노동조합에 대한 뿌리깊은 부정적 인식이 박혀 있다. 전국의 많은 지역들 중 화물연대에 가입된 택배기사들은 오직 광주에만 있다. 해고자들은 금호아시아나가 대한통운을 인수합병한 뒤 아예 노조의 싹을 잘라버리려 하고 있다고 믿고 있다.

계약해지된 70여명 중 당장 생계가 급박한 몇몇은 회사에 다시 복귀하기도 했다. 그런 이들에게 기다리고 있었던 것은 ‘각서’. 사측은 어떤 단체행동도 하지 않을 것과 모든 업무는 전적으로 회사의 지침에 따르겠다는 내용을 담은 각서를 쓰게 했다. 오직 회사에 복종하겠다는 다짐을 해야만 받아주겠다는 것이다.

임금도 못주겠다?

▲ 로케트전기 해고 노동자들이 20일 넘게 옛도청 앞 0.5평 교통관제 CCTV 철탑 안에서 고공농성을 벌이고 있다.ⓒ광주드림 임문철 기자
이들 해고자들은 이제 생계마저 막막한 상태다. 대한통운은 이들의 무더기 계약해지 사태에 따른 대체차량 투입과 그로 인한 손해액을 이들 해고자에게 물리겠다고 한다. 사측은 지난 25일 지급돼야 할 1월분 임금(배달 수수료)을 지급하지 않겠다고 했다. 손해액이 얼마나 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수수료를 지급할 수 없다는 것이다. 갑작스런 해고도 억울한데 이제 그 해고로 인한 회사의 손실까지 물어야 되는 상황이라니. 참 희한한 계약관계다.

1월분 임금이 왜 3월에야 지급되는지 알게 되니 더 할 말이 없어졌다. 배달 과정 중 발생하는 모든 사고는 택배기사들이 100% 책임을 물게 돼 있기 때문에 사고 처리 과정 등을 감안해 2개월씩 미뤄서 지급한다는 것이다. 그리하야 정상적으로 업무가 이뤄졌던 1월분 임금이 3월에 지급되는 것이고, 그것마저 못 주겠다는 것이 사측의 입장이다.

‘당장 돈이 안들어오면 생활이 힘들다. 생활이 힘들어지면 싸우는 것보다 현재의 입장에 감사하고 회사의 요구에 충실하게 따를 것이다.’
그런 계산이 깔려 있었을까. 해고자들은 “가족들의 생계를 담보로 노동자들을 사지로 몰아넣는 행태”라고 분개하고 있다.

“OO없이는 못살아” 의 아름다운 광고 뒤켠엔 “너희들 없이도 잘 사니 말 안 듣는 이들은 필요없다”는 정 반대의 현실이 벌어지고 있다. 대한통운 해고 사태 이외에도 지금 광주에선 로케트전기 해고 노동자들이 20일 넘게 0.5평 교통관제 CCTV 철탑 안에서 고공농성을 벌이고 있다. 사람이 죽어나갈 판이다. 그런데도 로케트전기 측은 “우리와는 관계가 없다”며 모르는 척 하고 있다.

최근 아니 아주 오래전부터, 아름다운 기업이라는 것이 과연 존재할 수 있는 것인지 의심스럽다. 그래서 함께 위기를 극복하자는 미사여구 따위가 ‘시키는 대로 하라’는 협박으로 들린다. 과대망상일까?

지역일간지 <광주드림>에서 기자로 일하고 있습니다. 광주드림은 한때 지역 문화잡지 <전라도닷컴>과 한몸이었으나 자본의 문제로 각각의 길을 걸어가고 있습니다. 지역신문이 지역에서 살아남기 어렵다는 것을 몸으로 체감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여전히 신문법 한 조항에 집착하고 있습니다.
"정기간행물은 상대적으로 소수이거나 이익추구의 실현에 불리한 집단이나 계층의 이익을 충실하게 반영하도록 노력하여야 한다" 신문법 <제5조> 3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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