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기자는 ○○○정부의 정책이나 자신이 속한 언론사 간부에 대한 비판을 일절 금한다. 이 조치를 위반한 기자는 아무것도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체포·구속하며 ○○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

위 작은따옴표 안의 내용은 북한 같은 곳에서나 가능한 일이고 동시대를 사는 대한민국 국민에겐 가당치 않다. 단순 글짓기이고 ‘허구’에 지나지 않아야 온당함을 미리 밝혀둔다.

각설하고 이쯤에서 YTN과 MBC를 얘기해본다. 둘 다 방송사다. 한국언론재단 조사결과에 의하면 신문시장의 약 70%를 차지하는 조중동보다 방송이 우리 사회에 미치는 영향력이 더 크다고 한다. ‘언론장악’을 꿈꾸는 자들이 풀어야 할 중대한 숙제다.

‘꿈꾸는 자들’의 행동강령엔 여러 가지가 있으나 일선 기자들의 저항에 대한 효과적인 무마는 매우 까다로운 숙제 중 하나다. 결국 또 해결사는 경찰과 검찰! (꿈꾸는 자들이 이들은 아닌 것 같은데…) 말 안 듣는 기자와 PD 중에 골라서 각각 4명과 1명을 기습적으로 체포하고 그 중 기자 1명은 구속수감한다.

꿈꾸는 자들답게 각종 화려한 수식어도 챙긴다. <아이 셋과 아내가 지켜보는 일요일 아침에 (노종면 YTN 노조위원장) 체포>, <(이춘근 MBC PD와 부인이 함께 탄) 차량 미행 후 마포대교에서 급습>, <(김보슬 MBC PD) 약혼자의 집 수색> 등등. 무슨 탐정추리극 제목 같다. 2009년 3월, 그 자들의 본격적인 미션과 질주는 언론계를 자극하지만, 한편으론 일부 언론인의 펜을 꺾게 만드는 효과가 있다.

정권의 ‘낙하산 사장’을 반대했으니 잡아들인다. 정권의 부실한 쇠고기협상과 광우병의 위험성을 지적했기에 잡아들인다. 도피 또는 증거인멸의 염려도 내세워 잡아들인다. 염려나 우려! 그 자들은 역시 매사에 대비를 잘 한다(헌데 ‘장자연 리스트’의 유력 인사들 도주에 대한 우려는 별로 없어 보인다). 아뿔싸, 중간에 큰 일 날 뻔도 했다. PD수첩 수사 맡긴 검사가 옷 벗고 나가버렸다.

▲ 한겨레 3월30일치 6면 기사
하여간 그 자들 무서워(?) 숨죽이며 다음 정권이나 기다리는 언론인 숫자 늘어가는 소리가 들릴 법도 한 세상이고 보면, 꿈의 고지를 향한 숙제를 술술 풀어가는 모양새다.

하지만 기자나 PD를 체포함에 있어서도 동료와 국민 동요를 최소화해서 제2, 제3의 촛불항쟁은 사전에 차단해야 한다. 미디어법 개정과 언론장악의 고지가 얼마 남지 않은 상황에서 방심은 금물이다. 언론인 총파업, 이거 또 나오면 골칫거리다.

예상했지만 역시 상황이 그리 만만치는 않다. 듣기 싫은, EBS 지식채널e ‘동아일보 해직기자’ 편의 배경음 ‘너의 목소리’가 이곳 저곳에서 들려온다. ‘너의 목소리가 들려~ 아무리 애를 쓰고 막아보려 하는데도~ 너의 목소리가 들려~’ 다름 아닌 1970년대 박정희 정권에 맞서던 동아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동아투위)와 조선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조선투위)의 목소리를 닮은 21세기를 사는 언론인과 시민들의 목소리! 오늘날 180도 변신한 동아일보·조선일보와 달리, 옛 동아투위 같은 조직은 ‘꿈꾸는 자들’이 가장 경계해야 할 언론인의 유형이다.

“비겁한 자 물러나도 용감한 자는 굳셉니다. 우리는 언론자유 투쟁에 순사하렵니다. 무릎 꿇고 사느니 서서 죽기 위해서….”

당시 중앙정보부와 유신정권은, 동아 편집국, 방송국, 출판국에서 해고된 뒤 투위를 결성하고 거리로 나가 시민들과 더불어 싸운 113명의 기자·PD·아나운서들을 구속수감하거나 취업 방해 또는 지속적인 미행 등의 전술을 구사하며 효율적으로 괴롭힌다.

“대한민국 헌법을 부정·반대·왜곡 또는 비방하는 행위를 금하고, 유언비어를 날조, 유포하는 일체의 행위를 금하며, 이를 권유, 선동, 선전하거나 방송, 보도, 출판 기타 방법으로 이를 타인에게 알리는 언동을 금한다. 이 조치에 위반한 자와 이 조치를 비방한 자는 법관의 영장 없이 체포, 구속, 압수, 수색하며 15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 1974년 1월 선포된 긴급조치 1호의 요지다. 이듬해, 보다 구체화된 긴급조치 9호로 투위 리더들을 모조리 잡아들이는 등 미증유의 언론탄압에 성공한다.

(필자는) 다시 제 정신으로 돌아와 졸문을 마무리해본다.

유신의 ‘긴급조치권’이나 5공의 ‘비상조치권’은 사라졌으나 그 망령이 되살아난 듯해서 심히 불쾌하다. PD수첩의 작가들까지 수사 대상이라니 그 시절 특별조치들에 견줘볼 만하다. MBC 압수수색 움직임을 철회하지 않거나 노종면 선배기자를 당장 석방함과 동시에 국민 앞에 사죄하지 않으면 ‘MBC투위’와 ‘YTN투위’가 결성되고 이젠 촛불을 넘어 전국 단위 ‘시민항쟁’을 불러올 수 있다.

그걸 원하면 그렇게 하라. 안 그래도 국민들은, 경제난으로 실의에 빠진데다 용산참사를 포함한 각종 석연치 않은 사건들과 정부와 여당의 몰아붙이기식 정치로 인해 이미 잔뜩 찌푸린 상태고 거의 폭발 직전이다. 또다시 공권력 대기시키나? 허망할 따름이나 두렵기보다 오히려 측은하다.

‘쇠고기’나 ‘낙하산’이나 검찰청이나 법원으로 불러들일 사안이 전혀 못된다. 어느 쪽의 과오인지는 세상이 다 안다. 그러고도 외신에 큰소리치는가. 그래도 억울하다면 행정부가 직접 나서라. 청와대 행정관이라도 나서라. 이제라도 대중이 모이는 광장에 나와서 국민과, 언론인과 당당하고 떳떳하게 토론할 때 지구촌에서의 창피는 면할 수 있다.

만에 하나, 언론인 수사를 통해 뭔가-장자연 리스트 등-급한 불부터 끄고자 하는 시도가 행여 있다면 빨리 거두는 편이 온 국민과 정권의 건강 유지에 이로울 것이다.

끝으로, 백범 김구 선생의 말씀을 선물로 전한다. “작은 꾀로 자주 건드리면 이익보다도 해가 많다. 개인생활에 너무 잘게 간섭하는 것은 결코 좋은 정치가 아니다. 국민은 군대의 병정도 아니요, 감옥의 죄수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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