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면은 잘못을 저지른 사람에게 직무나 직업을 그만두게 하는 처분을 말한다. 법률상의 징계 절차를 거쳐 임면권자의 일방적 의사에 의하여 공무원 관계를 소멸시키거나 관직을 박탈하는 행정 처분인 것이다. 일제고사 보는 날 다른 형태의 학습을 해도 좋다는 지도를 한 선생님들이 파면되고, 강남의 유흥업소 업주들로부터 상상 이상의 뇌물을 챙긴 경찰관들도 파면된다.

이에 더하여 ‘불온서적 지정’이라는 시대착오적 코미디에 대하여 자신이 속한 조직에 대하여 냉소하고 손가락질을 하는 데만 그쳐야 하나를 고민하다, 자신이 배운 가장 온건하고 현실적인 방법으로 헌법과 법률이 정한 바에 따라 헌법재판소에 위헌 여부에 대한 심판을 구한 군법무관들이 파면되었다. 필자에게서 처음 소식을 접한 사람들의 반응은 하나 같이 “설마 그럴 리가”였다. 그리고 말했다. “다른 이유가 있겠지, 설마 헌법소원 했다고 파면을 했겠어?”

할 말이 없었다. 너무 기가 막히고 어처구니가 없어서 논리 자체가 웃음거리가 될 때, 우리는 “할 말이 없다”고 한다. 아무리 이해하려 해도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을 때, 우리는 “할 말이 없다”고 한다.

세상이 미쳐 돌아간다는 사람도 있고, 인권시계가 거꾸로 간다며 안타까워하는 이들이 있다. 북이 미사일을 쏘겠다고 위협하며 우리 외교관이 탑승한 차량이 테러집단의 공격목표가 된 시기에 징계의 부당성을 운운하는 것은 시간 낭비라고 하기도 한다(조선일보 2009. 3. 24 칼럼 참조). 어떻게 군인의 신분에도 불구하고 수뇌부의 명령에 집단적으로 항명하냐며, 파면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라고 고개를 주억거리는 사람들도 있다. 짐짓 점잖은 모습으로 ‘문제제기 방식이 명령과 복종을 중시하는 군 조직이라는 특수성을 감안할 때 분명 도를 넘어선 행위라는 점에 대해서는 어느 누구도 부인하기 힘들 것’이라는 일방적 판단을 객관으로 가장하기도 한다. 급기야 좌익이 군내에까지 침투하여 준동하는 증거이므로 이번 기회에 뿌리를 뽑아야 한다며 다시 한번 소매를 걷어붙이는 사람도 있단다.

▲ 3월 24일자 조선일보 39면.
재판간섭은 ‘행정조치’…법에 의한 재판청구권엔 ‘파면’

같은 법조인인데도 판사에게 전화하거나 이메일로 재판에 관한 사항을 주문하고도 “행정조치”였다고 강변하는 이에겐 징계 이전에 윤리위원회 회부라는 신중하고 사려 깊은 조치가 내려지고, 본 대로 배운 대로 재판청구권을 행사한 사람들은 원형탈모증에 걸릴 정도로 동료 법조인들에게 시달리다 단박에 파면되는 세상이다. 법은 결국 강자의 도구라 했던가. 결국 기준은 누구의 이야기처럼 좌냐 우냐에 있는 것도 아니고, 오히려 얼마나 높은 사람인지에 있는 듯하다. 높은 사람은 지시를 할 수 있고, 어떤 지시를 하더라도 조직 내에 있는 사람은 그 지시에 이의를 제기하지 말고 고분고분하게 따라야 하며, 더욱이 그런 사정이 외부에 알려지면 절대 안 된다는 것이다. 그것이 자나 깨나 나라의 안위를 걱정하고 민족의 번영을 위해 노심초사하는 ‘어른’들에 대한 예의라는 건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되지 않는 게 있다. 법률가가 지닌 상상력의 한계에 대하여 늘 자조하는 입장에 있는 필자이지만, 도무지 알 수 없는 건 우리 사회에서 헌법과 법률이 지닌 가치에 대한 궁금증이다. 도대체 직위가 높으면 헌법과 법률의 규율에서 자유로워진다는 것인지, 좌우의 구분이 헌법질서에 우선한다는 것인지 헷갈리게 하는 언행들이 다반사로 분출되기 때문이다. 아무리 합리적이고 논리적인 접근을 시도하더라도 막무가내로 자기 고집만을 앞세우는 억지 앞에서 더 이상 할 말을 잊고 망연자실하게 되는 순간이 한두 번이 아니다. 이에 더하여 “군대는 특수한 곳이므로 일반사회의 가치를 대입하여서는 안 된다”는 주장에 나아가면 이미 합리적 논박을 위한 의지는 상실되고 만다. 도대체 군대이기에 헌법과 법률도 정지되어야 한다는 이론은 어디에 있었는가? 군 지휘관의 지휘권은 헌법과 법률을 초월할 수 있다는 발상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인가? 군대는 대한민국 헌법 너머에 존재하는 또 하나의 국가라는 말인가? 군도 엄연한 국가의 일부이자 헌법의 규율을 받는 국가기관이라는 점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더 이상의 토론은 논리를 가장한 감정싸움으로 비화할 뿐이다. 게다가 난데없이 안보논리까지 더해지면 또다시 좌익, 빨갱이 운운하는 단말마적 외침까지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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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물며 군법무관들의 헌법소원 이후 교육사령부를 방문하여 내린 장관의 지시에 따라, ‘군인화’를 강화하기 위해 앞으로 군법무관 훈련은 장교 훈련기관에서만 하지 않고 신병훈련소와 부사관학교에서 함께 하는 기간을 두어 ‘법률가’이기 전에 ‘충성’을 앞세우는 태도를 확립하겠다는 국방부의 방침에는 절로 고개가 숙여진다(경향신문 2009. 3. 21. 참조). 군인이 법을 앞세우면 충성심이 무뎌진다는 것인가? 진정 법은 멀고 주먹은 가까운 것인가?

▲ 3월 21일자 경향신문 9면 기사.
원고를 써달라는 부탁을 받고 많이 망설였다. 파면된 법무관들의 대리인인 필자의 글이 과연 얼마만큼의 객관성을 획득할 수 있을까? 괜한 글로 오히려 당사자들의 순수성을 훼손하는 것은 아닐까? 고민 끝에 나름대로 내린 결론은 사안에 대한 법리적 논쟁은 이어질 헌법재판과 행정소송에 맡기더라도, 일단 초유의 사태에 대한 궁금증을 해결할 수 있도록 기초적 사실관계의 일부만이라도 나열하여 소개하자는 것이었다. 그에 대한 필자 나름의 코멘트는 독자의 건전한 판단을 저해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사실관계를 보완하는 양념 정도로 추가하는데 그쳐야 한다고 다짐하면서 말이다.

국방부의 주장, 무엇을 말하는가

다음에서는 국방부가 정리하여 주장한 사실관계만을 그대로 인용하여 독자의 판단을 구하고자 한다. 물론 각자의 시각과 입장에 따라 해석을 내릴 수 있는 일이나, 적어도 필자가 보기에는 사실의 나열만으로도 많은 시사점을 제공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우선 이번 파면처분 등의 징계조치는 법무관들이 제기한 헌법소원이 그 발단이 되었다. 법무관들이 헌법소원을 제기한 대상은 익히 알려진 바와 같이 국방부의 불온서적 지정과 관련되어 있다.

먼저 따져 보아야 할 것은 소위《불온서적》의 판별 및 지정 경위이다. 국방부의 주장에 의하면, “국군기무사령부가 2008. 7.경 한총련(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의 약자)이 반정부·반미 의식화 사업을 2008. 7~8월 방학기간 중의 사업으로 추진(제16기 한총련 7~8월 방중사업계획서 참조)하면서 위 사업계획서상 교양도서로 추천된 도서들을 대상으로 ‘병영 내 도서보내기 운동’을 전개한다는 첩보를 입수하고, 같은 해 7. 15.경 병영 내 무단 반입시 장병 정신전력에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는 도서들을 검토·분류하여 23종의 도서목록을 선정한 다음, 같은 달 17. 이러한 사실을 국방부에 보고하였다.”[필자 주 - 이하 인용부호를 한 부분은 징계혐의사실 기재내용에서 발췌]

이어 “국방부는 같은 달 22. 사안의 심각성과 긴급성을 고려하여 위 도서들의 영내 반입을 차단하기 위한 이 사건 지시를 하달하였고, 같은 달 31.자 한겨레신문이 이를 비판적으로 보도한 것을 계기로 정기 국정감사에서 위 조치의 정당성여부가 쟁점화되었으나, 국방부는 국가안보를 담당하는 군 정신전력 유지·강화의 필요성에 의하여 이러한 조치를 계속 유지할 수밖에 없다는 점을 분명히 하였다. 국방부는 각 군에 위와 같은 지시를 하달하였던 같은 달 22.부터 정신교육 관련 전문가들로 구성된 정훈·문화자료심의위원회(정훈문화활동규정에 따라 위원장 국방교육정책관, 간사 정신전력과장, 위원으로 문화정책과장 등 7인으로 구성)를 소집하여 위 도서들의 세부적 내용을 검토한 결과, 같은 해 8. 15. 위 23종의 도서들 모두가 장병 정신전력을 저해할 수 있다고 재확인하는 한편 이를 구체적으로 친북성향 6종, 반정부·반미 14종, 반자본주의 3종으로 분류하였다.”

여기서 한총련이 등장하고 도서보내기 운동이 등장하는 이유는 “불온”의 개념 요건을 구성하기 위한 ‘이적표현물’과의 연계성을 위한 것이다. 한총련은 과거 대법원에서 수차 이적단체로 인정한 곳이니 그 곳에서 군대에 책을 보내려하는 만큼 긴급하게 차단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 문제의 불온서적 금서조치에 대한 국방부의 기본 전제이다. 그렇다면 만일 한총련이 이러한 도서들을 선정하여 군대에 보내기로 하는 사업을 전개한 적이 없다면 어떻게 되는 것인가?

군의 설명과는 달리 한총련은 이미 그러한 사업이나 운동을 전개한 적이 없다고 공표하였다. 위에서 제시한 16기 한총련의 사업계획서는 헌법재판소에도 이적단체의 선동적 도서보내기운동을 입증할 참고자료로 제출되었는바, 여기를 아무리 살펴 보아도 ‘군대나 군인에게 도서를 보내자’는 내용은 단 한 줄은커녕 군대의 ‘ㄱ’자조차도 등장하지 않는다. 이 문건은 A4용지로 무려 30페이지에 달하는 많은 내용을 담고 있다. 그런데 아무리 눈을 씻고 찾아보아도 군대의 ‘ㄱ’자조차도 등장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군인들은 다 한총련 조직원이란 말인가?

문제가 된 23권의 책 제목은 위 문건에서 군데군데 등장한다. 그런데 위 문건에 등장하는 책은 이 밖에도 많다. ‘일꾼’으로 표현된 한총련 내부 조직원들에게 교양자료로 여러 방송프로그램과 책들을 추천하고 있는데, 그렇게 추천한 책만도 무려 44권이다.

한총련인가 기무사인가

자, 그렇다면 이 가운데 23권을 추려낸 이는 한총련이 아니라 기무사가 된다. 이는 위에 기재된 국방부의 문건이 밝히고 있는 사실이다. 그렇게 추려낸 23권을 다시 전문가들이 심의해보아도 역시 불온하더라는 게 그 조치의 절차적 정당성을 입증하기 위한 논리이다. 그런데 여기서도 확인해야 할 문제가 있다. 위에서 말하는 전문가들의 전문성이 정체불명이다. 위원의 숫자가 보고서마다 달라지고 제출 자료마다 달라진다. 위원장은 동일하되 간사는 위원 명단에 포함되기도 하고, 위원의 숫자는 어느 자료에는 드러나지 않다가 5명이 되기도 하고, 7명이 되기도 한다. 급기야는 규정에도 없는 8명이 등장하기도 했다. 심의기간 또한 들쑥날쑥이다. 7. 22.부터 8. 15.까지로 되었다가 다시 8. 17.까지 심의했다고도 하며, 의결한 것은 8. 18.이라고도 한다. 안타깝게도 8. 17.이 일요일이었기 때문에 뒤늦게 찾아낸 착오를 정정한 것인지 모를 일이다. 결국 최종적으로 설명한 자료에는 8. 1.부터 8. 17.까지 심의했다고도 한다. 물론 심의내용과 자료가 정리된 회의록은 지금까지 전혀 확인된바 없다.

여러 정황을 종합하면 우리의 경험칙상 7. 31.자 한겨레신문의 보도 이후에 심의가 시작된 걸로 보는 게 맞을 것 같다. 그런데 여기에도 문제가 있다. 위 규정에 의하면 2~3일 전에 위원들에게 미리 심의자료를 보내 검토하도록 정하였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미리 검토하는 시간조차도 심의에 포함했다는 이야기가 된다. 더구나 최초에는 북한찬양 11권, 반정부·반미 10권, 반자본주의 2권으로 분류되었다가 나중에는 북한찬양 6권, 반정부·반미 14권, 반자본주의 3권으로 바뀐다. 왜 굳이 세 가지 범주로 나누기를 고집하는지에 대하여는 아무런 근거나 설명이 없다. 권리를 부여하는 규정은 포괄적이라도 상관없으나, 권리를 제약하는 규정은 한정적이고 명확하여야 한다는 것이 헌법과 행정법의 기본원리이다. 그러나 군이 제시하는 <군인복무규율>이나 <정신문화활동규정> 가운데 어디에도 세 가지 범주의 서적을 불온서적의 예로 열거하거나 분류한 조항은 찾을 수 없다. 장하준 교수의 유명한 저서 <나쁜 사마리아인들>은 처음엔 ‘정부·반미’로 분류되었다가 나중엔 ‘반자본주의’ 서적으로 분류된다. 한마디로 필자가 보기에 심의의 실체는 오리무중이거나 급조된 허구에 불과하다. 안타깝게도 이것은 국방부의 설명에서 발견되는 숱한 거짓과 모순의 아주 작은 한 자락일 뿐이다.

징계혐의사실로 기재된 내용과 법무관들이 위반했다는 내부규정은 더욱 기가 막힌다. 징계사유로 나열된 내용을 여기에 그대로 옮긴다. “징계혐의자들은 군에 유익하거나 정당한 의견이 있는 경우에는 소정의 절차를 밟아 상관에게 건의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국방부장관의 적법/정당한 명령(지시)을 따르지 않을 의사로 지휘계통을 통한 건의 절차를 경유하지 않은 채 헌법소원을 제기하였는바, 이는 군의 지휘계통을 문란하게 하고 군기와 단결을 저해한 것으로 각 법령준수의무를 위반한 것이다.”

여기에서 법무관들이 준수하지 않았다는 핵심적 법령의 내용을 소개한다. “군인복무규율 제24조(의견의 건의) ①부하는 군에 유익하거나 정당한 의견이 있는 경우 지휘계통에 따라 단독으로 상관에게 건의할 수 있다. 이 경우 상관이 자기와 의견을 달리하는 결정을 하더라도 항상 상관의 의도를 존중하고 기꺼이 이에 복종하여야 한다. ②상관은 부하의 건의를 경시하거나 소홀히 다루어서는 아니되며 부하의 의견이 유익하거나 정당하다고 인정될 때에는 이를 받아들여 필요한 조치를 하여야 한다.” 이는 상관에 대한 부하의 건의권을 규정한 권리조항이다. 그래서 ‘건의할 수 있다’고 표현되어 있다. 도대체 이 조항을 어떻게 해석하면 ‘건의하지 않으면 처벌한다’는 뜻으로 이해할 수 있을까? 상관의 조치가 헌법을 위반하였는지의 여부가 상관에 대한 건의로 해결되어야 할 문제라면, 과연 헌법재판소는 무엇을 하기 위해 존재하는가?

하나 더 소개한다. “청구인들 7인의 행위는 국방정책의 합헌성을 주장해야 할 군법무관들인 징계혐의자들이 사전에 허가없이 단체로 헌법소원을 청구하여 결과적으로 군의 지휘체계가 제대로 된 것인가에 대한 국민적 우려와 함께 군 지휘계통의 엄정함과 군무의 순수성을 훼손시킨 것으로 결국 징계혐의자들의 헌법소원 청구행위는 군법질서 확립 등 엄정한 군율·군기강 확립의 최후보루인 군법무관의 본분을 망각한 채, 개인의 권리행사를 빙자하여 군무 외의 일을 집단적으로 한 군기강 문란행위로 각 복종의무를 위반한 것이다.” 여기에 군법무관의 역할에 대한 군의 시각이 여과없이 드러난다. 군법무관은 “합헌성”만을 주장해야 하고 “엄정한 군율·군기강 확립”을 하는 것만이 본분이므로, 헌법소원을 청구하려면 사전에 “허가”를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헌법소원을 도중에 취하한 사람은 징계를 받지 않고, 취하하지 않은 사람은 파면부터 근신까지의 징계를 받았다. 도대체 이 차이는 어디에서 오는 것인가? 취하를 하면, 파면을 받아 마땅한 과거의 지휘계통 및 군기강 문란행위가 일거에 소멸된다는 뜻인가?

징계위원회의 출석요구서에 담긴 징계혐의 사실 중 ‘품위유지의무 위반’이라는 사유에는 다음의 사실도 기재되어 있었다. “조사과정에 대한 항의표시로 삭발하고 벙거지 모자를 착용한 상태로 근무에 임하는 등의 행위”를 했다는 것이다. 당사자는 군복에 벙거지 모자를 착용하고 근무한 사실이 없음을 밝혔다. 그리고 삭발은 계속되는 조사와 그 과정에서 이루어지는 각종 회유와 협박 때문에 스트레스로 인한 원형탈모증이 발병하였고, 조속한 치료를 위해 머리를 짧게 하는 게 좋겠다는 전문의의 권고를 받아들였다는 점을 밝혔다. 아무리 생각해도 너무 치졸했다 싶었는지 이 부분은 징계처분장에 기재된 징계사유에서는 빠져있다.

독일, 국가기관 진정·소송 방해하는 지휘관은 징역형

▲ 2008년 11월 22일자 경향신문 26면.
자, 이것이 세간에 알려진 군법무관 파면사태의 사실관계 가운데 일부이다. 글을 쓰는 내내 군이 제시한 모든 사실관계와 논리를 일일이 열거하며 반박하고 싶은 충동을 억누르느라 무척 힘들었다. 하지만 여기에 쓴 사실과 모순이 그 전부라 전제하더라도 여러분이라면 어떻게 하시겠는지 묻고 싶다. 지금이라도 헌법소원을 취하하고 자신의 경거망동을 뉘우치며 다시는 공직에 나아가지 않고 순종하는 마음으로 반성하며 살아가시겠는가? 아니면 법리와 논리를 가장한 거짓과 억지에 맞서 끝까지 싸우시겠는가?

굳이 1837년 독일에서 일어난 ‘괴팅겐 7교수 사건’의 내용과 경위를 재삼 장황하게 소개하지는 않겠다(경향신문 2008. 11. 22. 기사 참조). 하지만 오늘날의 독일에서는 부하가 국가기관에 진정하거나 소송을 제기하는 것을 방해하는 지휘관은 3년 이하의 징역(독일 군형법 제35조)에, 악의적으로 징계권을 남용하여 징계조치를 취한 상관은 5년 이하의 징역(독일 군형법 제39조)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러한 법은 독일에서나 가능한 것일 뿐, 우리에게는 전혀 참고할 수 없는 불순분자들의 억지에 불과한 것인가?

괴팅겐 7교수 사건과 같이 역사는 분명 오늘의 이 사태를 기억하고 기록할 것이다. 역사는 헌법소원을 제기한 사실과 불온서적 지정 및 파면을 행한 사실 가운데 어떤 것을 부끄러운 일로 기록할까? 헌법소원을 제기한 법무관과 그들을 징계위원회에 회부한 조사자들 및 파면 결정을 한 징계위원과 징계권자, 승인권자 가운데 누가 법을 남용한 것으로 기록할까? 역사는 헌법소원과 파면 결정 중 어떤 것을 정치적 의도가 개입된 꼼수로 평가할까? 그리고 이 모든 일련의 사태에 관련된 사람들이 역사 속에 남길 이름들은 어떤 향기를 품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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