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 이재오 전 의원이 28일 저녁 김포공항을 통해 귀국했다. 지난해 총선에서 낙선한 뒤 5월26일 미국으로 향했던 이 전 의원의 귀국은 10개월만이다. 언제 어떻게 귀국하느냐가 세인의 관심거리였고, 이재오 전 의원은 여러 차례 ‘조용한’ 귀국을 언론에 흘렸다.

정동영 전 장관이 귀국하면서 한껏 세력을 과시하여 2천명에 가까운 환영객들로 떠들썩했던 귀국과 차별화한 ‘귀국전술’이다. 정치적 의미를 탈색하고, 소박한 모습으로 돌아오는 이재오라는 이미지를 구성하려고 한 모양이다. 하지만 정치인이 정치적 의미를 탈색할 수 있을까.

▲ 경향신문 3월28일자 5면

이재오 전 의원의 ‘귀국전술’을 정치적으로 몇 가지 포인트를 중심으로 읽어볼 필요가 있다.

왜냐면, 청와대뿐만 아니라 한나라당의 친박계가 심한 거부감을 드러내왔던 귀국이다. 심지어 친이계 일부마저 조기귀국을 불편하게 여겨왔다. 이재오 전 의원의 귀국 자체가 현재의 이명박 정권 내 권력구도에 변화를 불러올 수밖에 없기 때문. 대통령의 형 이상득 의원에 의해서 완벽하게 장악된 권력구도는 이재오 전 의원의 등장으로 다원적 권력분할 양상을 예고하기 때문이다. 이재오계가 아니면 누구든지 껄끄러운 귀국이 아닐 수 없는 상황에서, 사실상 ‘단독결정에 따른 일방적인 귀국’이라는 평가를 등에 지고 들어오는 이재오 전 의원. 귀국 자체가 전술적 차원에서 고려될 수밖에 없었을 터.

먼저, ‘의인義人 컨셉’이다.

일본 도쿄를 경유하는 비행기를 탔다. 일본에서 1박하는 동안, 2001년 일본 유학중 지하철 선로에 떨어진 취객을 구하고 숨진 고(故) 이수현씨를 참배했다. ‘의인 이수현’의 이미지를 염두에 둔 이재오 전 의원의 정치적 행보로 읽힌다. 귀국전술이 ‘언론플레이’를 염두에 둔, 언론사가 읽어주기를 바라는 귀국 경로로서 ‘의인 이수현 참배’는 ‘이재오’라는 다층적 이미지에 괜찮은 의미 하나를 쌓을 수 있는 요소이다.

‘희생’의 이미지는 이수현의 희생에서 정치적 희생양으로서, 귀국도 마음대로 하지 못하는 정치인 이재오로 이미지 전이를 기대한 대목이다.

연합뉴스의 친절한 보도를 눈여겨봐야 한다. 귀국관련 기사 마지막 문단을 이렇게 장식한다. “한편 이 전 의원은 귀국길에 경유한 도쿄에서 지난 2001년 일본 유학중 지하철 선로에 떨어진 취객을 구하고 숨진 고(故) 이수현씨를 참배한 것으로 전해졌다.”

둘째, ‘극비귀국 컨셉’이다.

연합뉴스는 극비귀국을 이렇게 설명한다. “이 전 의원은 거창한 귀국행사를 피하기 위해 가족을 비롯한 일부 극소수 인사 외에 누구에게도 귀국 일정, 귀국 경로 등을 자세히 알리지 않은 채 ‘극비귀국’했다… 이날 공항에는 이 전 의원의 팬클럽 회원, 취재진 등이 모습을 나타내지 않았다… 이 전 의원은 진수희 의원 등과의 전화통화에서 “생각했던 대로 조용히 들어올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극비귀국’이라는 컨셉은 일단 눈길을 끌 수 있는 표현이지만, 부정적 의미를 제거하면서 목표로 하는 의미를 끌어내야 하는 ‘의미 해석’이 관건인 컨셉이기도 하다. 하지만 연합뉴스는 의미해석을 깔끔하게 정리해 준다. 연합뉴스는 ‘극비귀국’에 대해서 이런 해설을 붙여준다.

“한 관계자는 이 전 의원이 극비리에 귀국한 배경에 대해 ‘경제가 어려운데 행여 공항에 많은 사람들이 마중 나와 국민에게 불편을 끼쳐드릴까 염려한 때문이 아니겠느냐… 앞으로도 당분간은 조용한 행보를 이어나갈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연합뉴스가 극비귀국에 대해 이렇게 의미를 부여했으니, 극비귀국이란 표현이 가진 부정적인 이미지, 즉 죄지은 사람이 도망갔다가 들어온 것처럼 비쳐질 수 있는 이미지는 사라지고, 단박에 ‘어려운 경제를 염려한 이재오의 국민에 대한 배려’라는 의미로 극비귀국이 재구성된다.

셋째, ‘효자孝子컨셉’이다.

또 하나의 관심가는 행보는 ‘은평구’가 아니라 ‘고향 경북 영양’이 첫 방문지라는 점이다. 연합뉴스를 좀 더 보자.

“이 전 의원은 귀국 직후 서울 은평구 자택이 아닌 선산이 위치한 자신의 고향 경북 영양으로 향했다. 진수희 의원은 ‘이 전 의원이 부모님 묘소 등을 참배하기 위해 경북 영양의 선산으로 떠났으며, 그곳에서 1박을 한 뒤 서울 은평구 자택에 올 예정인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이재오 전 의원의 대변인격인 한나라당 진수희 의원의 말을 인용한 연합뉴스의 보도는 ‘효자孝子 이미지’를 염두에 둔 귀국 후 첫 방문지로서의 포석이라고 볼 수 있다. ‘동작동 국립현충원’이 아니라서 국민적 거부감을 최소화시켰다. 또 오랜 여행 끝에 귀국이나 또 경북 영양의 ‘선산’을 첫 방문지로 정한 것은 이재오라는 이미지 구성에 중요한 요소이다. 즉 거칠고 투박하며 싸움닭 이미지가 강한 이재오 전 의원에게 ‘착한 이미지’를 쌓아가는 전술로 읽을 수 있다.

어쨌든 이재오 전 의원도 돌아왔다. 치열한 권력투쟁의 새로운 장이 열렸다. 이후 관전포인트는 서울에 올라서 일주일 동안 누굴 만나느냐가 될 것이다.

하지만 항상 그렇듯이, 이재오 전 의원이 지금의 'MB 대 반MB 전선'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으며, 뭘 할 것인가에 대한 괜찮은 발언과 의미 있는 행동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이것이 이재오 전 의원의 이미지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명심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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