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일 KSB <뉴스9>는 “KBS가 입수한 장자연씨 문건에 나온 이름은 7명”이라며 “이 가운데 유독 한 신문사 유력인사를 포함한 세 명의 실명만 지워져 있었다”고 보도했다. 또한 전 매니저 유장호씨는 “이름이 지워진 해당 신문사 기자에게 문건을 보여줬다”고도 전했다. ‘장자연 리스트’에 다시 ‘신문사 유력인사’가 거론되기 시작한 것이다.

▲ 3월 27일 KBS '뉴스9'ⓒKBS
물론 그 이전에도 ‘장자연리스트’에 관한 언론 보도는 있어왔다. KBS <뉴스9>가 문건을 공개한 것은 지난 13일. 그리고 <뉴스9>는 바로 다음날인 14일 추가로 입수된 문건을 공개하며 “기획사와 방송계 인사도 거론하며 자신이 아닌 다른 배우도 매번 접대를 위해 불려나갔다고 고백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리고 <뉴스9>는 15일 “문건에 실명이 거론된 사람들은 언론계 유력인사, 기획사 대표, 드라마 감독이나 PD 등 10명 안팎이다”며 “상당수는 이름 석 자만 대면 누구나 알 만한 사회지도층인사”라고 덧붙였다.

이때까지만 하더라도 ‘언론계 유력인사’, 이름 석 자만 대면 누구나 알 만한 사회지도층 인사‘였으며, ‘신문사’라는 말이 직접적으로 언급되지 않았다.

그러나 16일 <경향신문>은 “문건에 신문·방송 유력인사 ‘실명’”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탤런트 장자연씨가 숨지기 직전 작성한 문건에 모 신문사 고위인사, 방송사 PD, 제작사 대표, 기업체 간부 등 10여명의 실명이 거론된 것으로 확인돼, 경찰수사 결과에 따라선 상당한 파장이 예상된다”고 보도했다. 같은 날 저녁 <뉴스9> 역시 “신문사 유력인사 등으로 나와 있는 이들은 장씨와 업무적으로 연결돼있던 점이 인정되기 때문에 문건내용이 사실로 드러날 경우 배임수재 혐의를 피할 수 없다”고 전했다.

이렇듯 직접적으로 ‘신문사 유력인사’라는 표현이 등장하기 시작한 것은 16일부터다. 14일부터 ‘방송계 인사’가 등장했으나, 같은 문건 안에 들어 있는 ‘신문사 인사’가 이틀 뒤에야 거론되기 시작한 것은 의문이 가는 대목이다.

또 다른 한 가지의 의문 <조선일보>의 ‘모 인터넷 언론사대표’ 기사

그러나 ‘장자연리스트’ 보도에 있어서 정작 이상한 행보를 보이는 곳은 <조선일보>다.

▲ 3월 27일 조선일보 10면 기사
27일자 <조선일보>는 “모 인터넷 언론사대표 수사대상 포함”이라는 기사를 통해 “일명 ‘장자연 문건’에 직간접적으로 연관된 12명 외에 ‘술자리에서 부적절한 행위를 한 것으로 의심된다’고 경찰이 밝힌 13번째 인물은 모 인터넷언론사 대표로 26일 알려졌다”고 전했다.

이는 ‘장자연 리스트’에 관한 그동안 조선일보의 기사를 되짚어 봤을 때, 매우 이례적이다. ‘장자연 리스트’에 ‘신문사 유력인사’가 있다는 보도가 나오기 시작한 날짜는 16일이었지만 그동안 <조선일보>에서 ‘신문사 유력인사’라는 표현이 등장한 적은 없었기 때문이다.

▲ 3월 20일 조선일보 12면 기사
△3월 16일 : “‘장자연 문건’ 연예기획사 압수수색” 기사 | “이 문건엔 또 방송사와 대기업 관계자 실명들도 거론돼 있어 이들에 대한 조사가 이뤄질지 관심이 커지고 있다”

△3월 17일 : “장자연 휴대폰서 소속사와 갈등 확인” 기사 | “이 문건에는 ‘소속사 관계자에게 욕설과 구타를 당했고 술 접대와 성 상납을 강요받았다’는 내용과 언론사 간부, 방송사 PD, 기업체 임직원 등의 실명이 담겨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3월 20일 : “괴소문 키우는 답답한 수사” 기사 | “방송계와 재계, 언론계 인사 10여명의 실명이 '장자연 리스트 거론 인사'라는 명목으로 온라인과 오프라인에서 무차별 유포되고 있다”

△3월 21일 : “‘장자연 문건’ 장씨 사망전부터 외부에 알려져” | 문건에 이름이 올라온 것으로 알려진 드라마 PD A씨를 인터뷰, “장씨가 자살한 뒤 내 이름도 문건에 들어 있다는 언론보도를 보고, 나 때문에 피해를 입었다고 주장하면서 동시에 나를 만나 도움을 받으려 한 저의가 무엇인지 황당했다. 문건 작성 목적은 물론, 내용의 신빙성까지 모두 의심스럽다”

△3월 25일 : “‘자연 리스트’ 12명 경찰, 본격 조사 착수”기사 | “추가 수사 대상자 중 2명은 A씨 등 드라마 PD인 것으로 보인다”

이전의 기사들을 모두 살펴봐도 ‘신문사’란 말조차 등장하지 않는다. 그러다 27일 “모 인터넷 언론사 대표 수사대상 포함”라는 제목으로 인터넷 언론사 대표가 수사대상에 포함됐다고 보도했다. 이 정도의 열의였다면 이전에는 “모 신문사 고위인사 장자연 리스트에 포함”이란 제목의 기사가 나왔을 법도 한데 말이다.

인터넷상의 ‘장자연 리스트’ 한 순간에 사라졌는데…

이미 인터넷 상에서는 ‘장자연 리스트’가 하루아침에 사라졌다. 물론 그 이유는 장자연 리스트로 인해 있을지도 모르는 피해자들에 대한 경찰의 과도한 대처(?)에서 비롯됐다. 경찰은 지난 25일 네이버와 다음 등 포털업체에 공문을 보내 리스트를 유포한 네티즌들의 신원을 확보했다고 전했다. 장자연씨의 문건에 등장한 인물들에 대한 조사 속도와 비교해보면 굉장히 빠른 일처리다.

그렇다면 이들의 죄목은 무엇인가? ‘명예훼손’이겠거니 생각하겠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피해자의 요청이 없는 한 이들은 어떠한 죄목으로도 처벌이 불가능한 상황이다. 결국 명확한 피해자 없이 진행된 수사였고, 그 여파로 인해 인터넷 상에서 ‘장자연 리스트’는 일순간에 사라졌다. 인터넷 상의 표현의 자유를 침해받은 것이라고도 볼 수 있지 않을까?

물론 관계없는 피해자가 양산될 수 있다는 말에는 동감한다. 그러나 그동안 인터넷상의 글을 통해 자신의 명예가 훼손됐다고 생각하는 당사자는 해당 포털업체에 문제를 제기했었다. 포털은 대체적으로 블라인드라는 이름으로 글을 삭제했다. (물론 이 역시 포털이 일방적으로 삭제하는 것이어서 문제가 돼왔다.) 그런데 ‘장자연 리스트’는 달랐다. 피해자가 직접 문제를 제기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 3월 21일자 조선일보 8면기사
<조선일보>는 18일자 사설에서 “벌써부터 인터넷 포털 등에서 ‘증권가 소문’이라는 이름으로 수십명 인사들의 실명이 공공연히 오르내리고 있다”며 “경찰 수사가 늦어지면 늦어질수록 가장 중요한 당사자인 장씨가 사망했기 때문에 일부 세력들이 떠돌아다니는 문건에 어느 이름을 보태고 지우는 방식으로 그 루머를 조작해 특정인을 공격하는 음해와 모략의 소재로 이용할 위험이 커진다”며 신속한 수사를 주문했다.

경찰은 20일, ‘장자연 리스트’가 무차별적으로 살포되고 있는 사실을 확인하고 수사에 착수했다. 이후에도 <조선일보>는 21일 “인터넷의 무차별 루머 재생산 이젠 뿌리 뽑아야”라는 기사를 통해 포털의 책임을 거론했고, 포털은 ‘장자연 리스트’와의 전쟁을 시작했다. 경찰은 23일 사이버수사에 의해 발견된 60건의 ‘장자연 리스트’중 39건을 삭제했다고 밝혔다.

물론 ‘장자연 리스트’ 인터넷 확산 보도는 조선일보만 한 것이 아니니 오해는 하지 말자. 하지만 조선일보가 ‘장자연 리스트’가 일으킬 부작용을 걱정해 ‘신문사 유력인사’라는 표현을 ‘자제’해왔다고 보기에는 일관성에 문제가 있다. 비단 ‘인터넷 언론사 대표’를 대서특필해서만은 아니다.

경기서남부 용의자 강모씨의 얼굴공개와 전혀 다른 논리들

경기서남부 연쇄살인사건의 가해자 얼굴을 제일먼저 공개한 곳은 <조선일보>다. <조선일보>는 지난 1월 31일 가해자로 지목된 강모씨의 얼굴을 공개함에 있어서 “반 인륜범죄자들의 얼굴을 마땅히 공개해야 한다는 여론이 높아지고 있다”고 밝혔다.

그리고 2월 2일자 신문에서는 “연쇄살인범 강○○의 얼굴 사진이 공개되자 범죄자의 얼굴을 공개하는 것이 마땅한지에 대해 논란이 뜨거워지고 있다”면서 “<조선닷컴>에는 이틀 만에 300여건의 댓글이 올라왔다. 댓글의 90% 이상이 ‘얼굴공개를 환영한다’는 입장이었다”고 전했다. 물론 ‘범죄자 가족에게 돌아갈 피해를 고려해야 한다’는 의견도 일부 있었다고는 했다. 조선일보에서 강모씨의 얼굴을 공개한 것은 아직 범죄사실이 법적으로 확정되기 이전이었다.

그렇다면 다시 ‘장자연 리스트’로 돌아가 보면 어떨까?

아직 경찰은 장자연씨의 문건에 언급된 인사들에 대해서 발표한 적이 없고, 그들의 죄가 입증되지 않은 상황이다. 그리고 인터넷 상에서는 소위 ‘장자연 리스트’가 떠돌았다. 그렇다면 강모씨의 얼굴을 공개한 후 흉악범에 대한 얼굴을 공개해야 한다는 여론을 만들어간 <조선일보>라면 어떻게 보도해야 했을까? 어느 것이 진짜 조선일보의 가치인가? 항간의 소문이 진짜가 아니길 바라면서도, 이것이 진정 <조선일보>에게 묻고 싶은 점이다.

▲ 3월 16일 경향신문 10면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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