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정부는 ‘마피아 정권’인가. 프레스 프렌들리를 자청했던 이명박 정부가 잇달아 언론인들을 구속하고 체포하고 기소하는 것을 보면서 언뜻 드는 생각이다. 경찰은 노종면 YTN노조위원장을 구속했고, 검찰은 지난해 미국산 쇠고기의 광우병 위험을 다룬 MBC <PD수첩>에 대한 수사를 재개하면서 이춘근 PD를 체포했다. 조능희 CP와 김보슬 PD, 작가들에 대해서도 강제 신병확보에 나섰다. 심지어 PD들의 집과 친구 집까지 압수수색했다. 특히 일요일 아침에 비판적인 언론인을 구속한 것은 영화에서나 볼 수 있는 마피아적 행태가 아닐 수 없다.

노종면 위원장은 일요일인 22일 오전 집에서 가족이 지켜보는 가운데 연행됐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이명박 대통령은 그 시간 예배를 보고 있었을 것이다. 언뜻 마피아를 소재로 다룬 영화 <대부>가 떠올랐다. 마피아 두목인 돈 콜레오네는 교회에서 미사를 보면서 하수인을 시켜 총을 난사하여 반대파를 제거한다. 그는 미사를 보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그렇다면 이명박 대통령은 22일 예배를 보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부디 제2의 ‘촛불’이 없게 해달라고 기도했을까.

독재를 꿈꾸는, 아니 이미 독재로 들어선 정권

이명박 정부가 30여년 전 독재정권 시절로 급격하게 역주행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 지 오래 되었다. 이번 언론인 구속사태를 보면서 이명박 정부가 독재를 꿈꾸고 있는 것이 아니라 이미 독재로 들어섰다는 지적을 받을 만하다. 자신에 비판적인 언론인을 구속하고 체포한 것은 언론자유를 짓밟는 상징적인 사건이기 때문이다. 자신에 반대하면 ‘좌파’로 몰아붙이는 것만이 아니라 철창에 가두는 정권을 누가 독재가 아니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인가.

노종면 위원장의 구속과 <PD수첩>에 대한 수사는 법을 남용해 엉뚱한 혐의를 뒤집어씌우려 한 것에 다름 아니다. 과거 독재정권이 저질렀던 짓거리를 그대로 원용하고 있다고나 할까. 노종면 위원장에게는 업무방해 혐의가 씌워졌다. 그러나 법원이 구본홍 사장의 업무방해 가처분 신청을 일부 받아들인 뒤에는 법에 허용된 범위 안에서 투쟁을 벌여왔다. 노 위원장에게 도주 우려와 증거 인멸을 덮어씌운 것은 ‘YTN노조의 총파업을 방해하려는 술책’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노 위원장의 구속은 언론인들에 대한 겁주기 효과(chilling effect)이다.

<PD수첩>에 대한 수사는 언론을 옥죄려는 속셈이 숨겨져 있다. 이제 정부에 비판적인 프로그램을 제작한 PD는 길거리에서 언제든 연행될 수 있다. 더구나 검찰은 <PD수첩>에 대한 수사가 부당하다는 이유로 수사검사가 사표를 제출한 이후 수사진을 다시 꾸려 재수사에 들어갔다. 이번 수사는 편파적이고 의도성을 갖고 무리하게 진행되고 있다. 체포영장까지 발부하면서 검찰이 오버액션을 하는 것은 <PD수첩>을 공격하고 MBC를 흠집내겠다는 의도가 들어 있다. <PD수첩>이 얼마나 미웠으면 이러한 괘씸죄까지 뒤집어 씌웠을까.

군사정권 ‘보도지침’이 따로 없다

이명박 정부는 언론인들은 양심도 없어야 하며 노동자의 권리를 누려서도 안 된다고 강요한다. 대통령 특보 출신이 사장으로 선임돼도 반발해선 안 된다. 사장이 사원들의 압도적인 표를 얻은 후보 대신 친한 인물을 보도국장으로 임명해도 부당하다고 주장해선 안 된다. 단체협상 결렬을 이유로 노조가 파업에 들어가도 노조위원장은 구속되므로 합법 파업도 안 된다. 정부가 정책추진의 잘못으로 치명적인 광우병에 걸릴 위험이 있어도 정부에 비판적인 보도를 해서는 안 된다. 정부는 도덕적 우위를 점하고 있으므로 언론은 오로지 정부 정책을 홍보하는 내용만 보도해야 한다. 군사정권의 보도지침이 따로 없다.

박정희와 전두환 독재정권은 다각도로 언론을 통제했다. 중앙정보부(안전기획부)는 언론인을 수시로 연행하여 폭행하거나 고문을 가했으며, 각종 법률 위반을 이유로 구속 기소했다. 또 매일 보도지침을 내려 보도내용을 시시콜콜하게 통제했다. 보도지침을 지키지 않으면 중앙정보부에 끌고가 고문을 가했다. 언론사를 폐간시키겠다고 협박하기도 했다. 이 보도지침은 필자가 민주언론운동협의회에 전달해 1986년 <말>지 특집호를 통해 비로소 세상에 알려졌다.

▲ 1986년 9월 한국일보 김주언 기자에 의해 월간 <말>지에 폭로된 1985년 10월19일~1986년 8월8에 시달된 584개 항의 보도지침 요약본.
필자는 당시 회사로 출근하던 길에 검은색 승용차에서 내린 형사들에게 붙잡혀 남영동 대공분실로 끌려갔다. 박종철군이 물고문으로 사망했던 곳이다. 김태홍·신홍범 선배는 이미 같은 곳에 끌려와 있었다. 형사들이 집에 들이닥쳐 압수수색을 했음은 물론이다. 영문 서적 몇 권을 가져갔다. 이적표현물을 소지했다며 국가보안법을 적용하려는 꼼수였다. 학생들이나 재야인사를 잡아들일 때는 반드시 집과 사무실을 압수수색해 이념서적을 찾아내는 것은 기본적인 수사기법이었다.

‘보도지침’ 폭로가 보안법 위반·기밀누설죄·집시법 위반·국가모독죄

경찰은 우리를 협박했다. “이재문이가 이곳에서 수사받고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참기 어려운 모멸감을 심어주려 했다. 물리적 폭력도 마다하지 않았다. 20여일 동안 밤잠을 재우지 않으면서 지리한 심문이 이어졌다. 태어나서 성장하기까지의 과정과 보도지침을 폭로하게 된 배경 등에 대한 자술서를 수차례 써야만 했다. 미국과 북한에 대한 견해, 전두환 정권에 대한 입장, 특정 정치인에 대한 호·불호에도 대답해야 했다. 사상범으로 다스리겠다는 의도였다. 결국 우리에게 뒤집어씌운 법률은 국가보안법 위반, 외교상 기밀누설죄,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위반, 국가 모독죄 등이었다.

▲ 1988년 민주언론운동협의회가 단행본으로 발행한 <보도지침>
보도지침 폭로를 통해 국가기밀을 누설하고 이적표현물을 소지했다는 것이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였다. 김태홍·신홍범 선배가 민주언론운동협의회 사무실에서 반정부 시위를 벌인 것은 집시법 위반이었다. 국가모독죄는 외신기자들을 상대로 정부를 비판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는 이유였다. ‘언론통제 실상이 낱낱이 드러난 문건을 폭로하여 국제적 망신을 시킨 나쁜 놈들’이라는 ‘괘씸죄’가 근본이유였겠지만, 온갖 죄목을 뒤집어씌운 것이다. 김지하 시인의 장시 ‘비어(蜚語)’에 나오는 ‘반국가적 내란음모 획책적 강력심정보유급 동사상포지 잠재적 가능성 확실명백 가능죄(反國家的 內亂陰謀劃策的 强力心情保有及 同思想抱持 潛在的 可能性確實明白可能罪)’라는 죄목이 있었다면 아마 이 법을 적용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검찰의 법 적용은 무리였다는 것이 재판과정에서 드러났다. 1심 재판관은 3명 모두 선고유예와 집행유예로 풀어주었지만, 대법원까지 이어진 9년여의 재판과정에서 3명 모두 무죄로 확정판결을 받았다. 그러나 9년여의 재판과정은 피고인들에게는 고문이나 진배없었다. 정상적인 사회활동에 많은 제약도 따랐다. 독재정권은 이러한 과정을 통해 일반인들을 옥죄는 것이다.

차라리 언론통제법을 제정하라

노종면 위원장과 <PD수첩> 제작진에 씌워진 혐의도 이와 다를 바 없다. 검찰은 업무방해죄와 명예훼손죄가 무소불위의 법이라고 착각하고 있는 것 같다. 이들 법을 무리하게 적용하여 언론인을 구속한 것은 언론을 통제하겠다는 속셈을 그대로 드러낸 것과 같다. 아예 전두환 정권의 ‘언론기본법’과 같은 ‘언론통제법’을 제정하는 편이 나을 것이다. 국회 의석을 과반수 이상 확보하고 있는데 무슨 문제가 있겠는가. 소크라테스도 ‘악법도 법’이라고 했지 않은가.

비판언론을 제거하고 비판적인 언론인의 입만 막으면 정권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은 착각이다. 모든 언론이 ‘명비어천가’를 불러 온 세상이 ‘위대하신 대통령 이∼대통령’이라는 찬양가로 뒤덮이더라도 역사의 심판은 막을 수 없다. 아니 이러한 전망은 국민에 대한 모독이 될 수도 있다. 국민은 권력자들보다 더욱 똑똑하다. 아무리 언론을 통제하더라도 모든 국민의 입을 틀어막을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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