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통신위원회(약칭 방통위) 최시중 위원장이 지난 20일 천안 지식경제공무원교육원에서 진행된 출범 1주년 기념 기자회견에서 1년간 업무 중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지상파 방송 실시간 중계협상을 중재한 일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했단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생각하는 것은 자유니 그렇다고 할 수도 있겠으나, 방통위의 행보와 최근 미디어 현안들을 생각하면 어딘지 모르게 울화가 치민다.

#1. 전국언론노동조합 YTN지부가 총파업 돌입

전국언론노동조합 YTN지부가 23일부로 총파업에 돌입했다. 교섭과정에서 사측은 한치도 물러섬이 없었다. YTN노조는 교섭과정에서 합리적인 임금 인상을 요구했으나 사측은 오히려 급감한 광고 매출을 이유로 임금삭감을 요구했다. 이밖에 YTN노조의 요구는 조직개편 무효화, 해직·정직자 복직 및 33명에 대한 징계 원천무효 등을 요구했으나 사측에서는 ‘임금 협상과 관련 없는 회사의 경영행위를 문제 삼는 것’이라고 했다. 그렇게 협상은 결렬됐고 YTN노조는 총파업을 선언했다.

▲ YTN노조가 23일 오전 10시 서울 남대문로 YTN타워 1층에서 노조원 25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총파업 출정식을 열고 있다. ⓒ송선영
그러나 문제는 다른 곳에서 터졌다. 총파업을 하루 앞둔 22일 오전 노종면 YTN 노조위원장, 현덕수 YTN 전 노조위원장, 임장혁 돌발영상팀장, 조승호 기자 등이 자택에서 체포되는 사건이 벌어졌다. 체포 이유가 더 어이없다. ‘정당한 이유 없이 출석 요구에 응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YTN노조는 경찰의 출석 요구에 100% 임했다며 이를 ‘표적수사’로 보고 있다.

그렇게 YTN노조의 투쟁은 오늘로써 249일째를 맞이하고 있다.

최시중 위원장의 입에서 WBC 중계권 중재가 아닌, “지난 1년 업무 중 YTN 구본홍 사장을 내리고 노조원들의 징계를 풀어 공정방송 YTN이 정상화를 이룬 것”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이야기했다면 좋았을 것을.

#2. 미디어발전국민위원회 회의 비공개 논란

지난 13일 첫 회의를 시작으로 ‘신문법’, ‘방송법’, ‘IPTV법’, ‘정보통신망법’ 등 언론관계법에 대한 사회적 논의기구인 미디어발전국민위원회가 가동에 들어갔다. 오는 6월15일이 활동 시한인데, 아직 회의를 공개할 건지 비공개로 할 건지 정하지도 못했다. 실질적인 논의에 들어가지도 못한 채 100일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 그렇게 13일까지 18일을 까먹었다.

▲ 20일 오전 10시15분경, 김우룡 공동위원장이 기자들에게 퇴장할 것을 요구하자 강상현 공동위원장이 급히 마이크를 빼앗아 회의공개를 주장하고 있다 ⓒ곽상아
논의되고 있는 법 개정에 대한 방통위의 입장은 이미 나와 있다. 최시중 위원장은 유럽 순방 때를 비롯해 지속적으로 “미디어를 산업으로 생각해야 한다”며 ‘미디어 빅뱅’을 선전했고, 방통위의 2009년 업무추진 10대 과제에 중점과제로 ‘다양한 매체간 겸영허용 추진’, ‘방송사업 소유제한 완화’ 등을 넣었다.

최시중 위원장의 입에서 WBC 중계권 중재가 아닌 “방송과 통신은 산업적 논리보다는 ‘공공성’의 측면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며 “지난 1년 업무 중 한나라당이 추진하는 언론관계법은 표현의 자유를 억압할 뿐만 아니라, 정권에 대한 비판을 억제하는 기능을 포함하고 있다며 반대입장을 표명한 것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이야기했으면 좋았을 것을.

#3. KBS가 이상하다? 이어 MBC까지

KBS의 뉴스 보도에 대한 비판이 많다. 문제는 KBS가 이병순 사장 체제로 변경되면서 정부정책에 대한 비판 기능이 사라지고 있다는 데 있다.

고흥길 국회 문방위원장이 언론관계법을 직권상정한 지난달 25일 <뉴스9>는 “여권, 기습 상정한 이유는?”이라는 제목으로 “집권 2년차에 접어들며 핵심 정책을 담은 법안들을 통과시키지 못한다면 더 이상 탄력 있는 국정운영이 어렵다는 판단이 당내 중진들을 강경파로 돌아서게 한 것”, “특히 연말연초의 파행국회 직후 법안홍보에 주력했는데도 야당이 아예 협상을 거부한 데서 여론도 유리하게 작용하고 있다고 판단한 것”이라고 한나라당 입장을 그대로 대변하는 보도를 했다. 당시 비판도 많이 받았다.

▲ 2월 25일 KBS '뉴스9' ⓒKBS
지난 3일은 KBS가 창립 36주년을 맞이하는 날이었다. 당일 KBS는 <뉴스9>에서 “(KBS의) 과거와 미래”를 통해 KBS의 현주소를 짚어봤지만 날카롭지 못했다. 이병순 사장이 취임하자 마자 ‘시사투나잇’은 ‘시사360’으로, ‘미디어포커스’는 ‘미디어비평’으로 바뀌어 방영되고 있다. 국민들은 이것이 단순히 이름만 바뀐 것이라고 생각지 않는다. 그 속에는 이미 이병순 사장의 KBS 장악이라는 대의가 숨어있음을 안다. KBS는 지난해 방송문화연구소가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공정성 분야 1위를 MBC에 내어주어야 했다.

그런데 이상한 이야기가 들려온다. MBC도 이상해지고 있다는 말이다. <미디어오늘>에 따르면 “MBC가 최근 보도국장을 비롯해 각 정치·경제·사회·문화 등 부장단과 기자들의 부서를 대폭 교체한 이후 일련의 경제정책에 대한 보도에서 정부비판을 줄이거나 빼고, 정부정책을 지지하거나 옹호하는 목소리를 적극 반영하는 등 이상기류가 점차 현실화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미디어오늘>은 다주택 소유자들에 대한 중과세 폐지 보도에서 “투기를 막기 위해 비정상적으로 운영됐던 세율이 바로 잡혔다는 측면에서는 긍정적이지만, 당장 효과가 날지는 미지수”라며 “일각에서는 이번 조치가 부자를 위한 감세정책이다, 부동산 투기를 다시 과열시킬 수 있다는 비판을 제기하고 있어서 논란이 예상된다”고 보도했다고 전했다. ‘일각’에서의 비판이라. 정말 이상해지고 있기는 한가 보다.

이런 와중에 방통위는 정권 홍보 프로그램을 추진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논란이 된 것은 ‘2009년도 방송콘텐츠제작지원 사업수행 지침’으로, 내용을 들여다보면, ‘공공분야 제작지원’에 “경제 활성화(경제위기 극복, 신성장 동력 확충, 녹생석장 관련) 등 공공분야의 콘텐츠에 대한 제작지원”이라고 되어 있다. 논란이 일자 방통위는 보도자료를 통해 ‘경제 활성화와 직접 관련이 되는 프로그램’으로 명시하고 있어 정부시책에 대한 내용으로 한정하고 있지 않다고 해명하고 있다. 사업공모에서 ‘예’로 든 것이 어떠한 힘을 가지고 있는지 모르는 소리를 하고 있다. 공모에 접수하는 것은 되기 위해 하는 거다.

최시중 위원장의 입에서 WBC 중계권 중재가 아닌 “방송제작에 있어서 어떠한 이해관계도 개입되어서는 안된다는 기조를 충실히 이행해왔다”며 “이로써 지난 1년 업무 중 대부분의 방송현업인들이 자유롭게 문제점을 취재하고 보도할 수 있도록 한 것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이야기했다면 이 또한 얼마나 좋았을까.

#4. 정권 창출 기여한 사람으로서 무한책임 느낀다는 최시중위원장

최시중 위원장은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국정원장설’과 ‘새만금대책특별위원장설’ 등 자리이동설에 대해 “나는 초대 방통위를 본궤도에 올려놓아야 할 책무가 있기 때문에 임명권자(대통령)가 다른 자리로 가겠느냐는 의사를 물어와도 당분간은 방통위원장을 계속하겠다”고 밝혔다고 한다.

▲ 3월 23일자 경향신문 29면 기사
또한 “정권 창출에 기여한 사람으로서 무한 책임이 있기 때문에 앞으로도 정부가 잘 되게 최선을 다하겠다”는 이야기도 남겼다고 한다. 여기에 덧붙여 최시중 위원장은 “다만 그것 때문에 방통위에 영향을 미치는 일은 없도록 하겠다”고 이야기했다.

이 발언과 관련해서도, “정권 창출에 기여한 사람으로서 무한 책임을 지고 방통위의 모든 사업을 이명박 정부의 ‘경제’논리에 맞춰왔으며 KBS를 비롯한 YTN, OBS의 낙하산 사장 투하 및 코드 맞추기로 논란을 빚은 바, 임명권자이면서 정신적 제자인 이명박 대통령이 앞으로 계속 방통위원장으로 남아있어 달라고 애원하더라도 그 직에서 물러날 것이다”라고 이야기했다면 방통위 출범 1주년을 맞아 크나큰 광영일 텐데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은 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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