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하 <내 사랑에 노련한 사람이 어딨나요>

장기하의 노래를 생각한다. 그리고 '말'을 생각한다. 장기하는 지금 독보적으로 한국'말'을 가지고 좋은 노래를 만들고 있는 음악가다. 그는 늘 한국말로 노래한다는 것에 대해 고민해왔고, 그가 선망해온 선배들도 말의 맛을 알고 있는 음악가들이었다. 동시에 그는 밴드 '얼굴들'을 이끌고 있는 리더이기도 하다. 말과 사운드의 조화로 보면 지난 앨범 <사람의 마음>은 과도기에 가까웠다. 얼굴들의 사운드를 위해 장기하의 말을 어느 정도 놓은 부분도 있었다. 그런 점에서 <내 사랑에 노련한 사람이 어딨나요>는 괄목할 만한 성취다. 이 앨범은 장기하의 말만으로도 감탄스런 작품이지만 얼굴들이 만들어내는 사운드 역시 장기하의 말과 척척 맞아 떨어진다. 사랑에 서투른지는 몰라도 한국말에는 누구보다 노련한 사람이다.

넌 아만다 <열대야>

갑작스레 등장한 넌 아만다는 1990년대 후반의 홍대 앞으로 우리를 데려간다. 델리 스파이스가 떨리는 목소리로 '챠우챠우'를 부르고 마이 앤트 메리가 스팽글에서 '강릉에서'를 부르던 그 시절이다. 넌 아만다의 음악 역시 기타 팝 혹은 모던 록이라 불리는 음악으로 분류될 것이다. 넌 아만다는 일상의 이야기를 가지고 소년에서 청년으로 넘어가는 그 미묘한 시기의 고민이나 불안함, 설렘 같은 다양한 감정을 소년의 목소리로 노래한다. 마치 청춘만화를 보는 것 같은 이 음악은 앨범 제목처럼 지금 이 계절에 더 잘 어울리는 청춘의 노래들이다.

로 바이 페퍼스(Raw By Peppers) <Spaceship Out Of Bones>

"요즘 괜찮은 친구들 없어요?" 종종 사람들이 묻는 질문들이다. 그럴 때마다 요즘 난 두 번 생각할 것 없이 로 바이 페퍼스의 이름을 꺼낸다. 로 바이 페퍼스는 이제 막 걸음을 내딛었지만 압도적인 라이브 퍼포먼스로 많은 관계자들의 찬사를 얻고 있는 신인 밴드다. 데뷔 EP <Spaceship Out Of Bones>에도 사이키델릭한 기운을 가득 품고 있는 포스트 록 스타일의 좋은 음악이 마치 잼을 하는 것처럼 담겨 있지만 라이브 무대에서 보여주는 매력에 비하면 조금 아쉽다. 음반 녹음 역시 생동감을 위해 원테이크로 진행했다 하지만 라이브와 음원 사이의 거리감은 이들이 앞으로 고민해야 할 문제이다. 음반 소개 코너에서 이런 말은 그렇지만, 음원보다 먼저 라이브를 꼭 접해봐야 할 밴드다. 어쨌거나 걸출한 신인 밴드가 등장한 것만은 분명하다.

이선지 <Folksongs>

'Folksongs'란 제목이 앨범 성격을 말해주고 있다. 전작 <국경의 밤(The Night Of The Border)>에서 5인조 구성으로 폭 넓은 이미지의 음악을 들려줬던 재즈 피아니스트 이선지가 피아노와 베이스라는 단출한 구성으로 돌아왔다. 앨범 제목처럼 우리에게 익숙한 동요와 흑인 영가 등의 곡들을 새롭게 변주한다. 친숙한 곡들이니 만큼 쉽고 편하게 들을 수 있기도 하지만 그 안에서 들려주는 이선지의 라인은 여전히 회화적이며 아름답고 장진주의 베이스는 누구보다도 깊은 울림을 낸다. 어떤날의 '오후만 있던 일요일'을 연결해 연주한 동요 '섬집아기'가 가장 먼저 귀에 들어왔다.

Kent <Da Som Nu For Alltid>

해산을 선언한 켄트의 마지막 앨범이다. 켄트 특유의 쨍-한 사운드는 영어가 아니라 모국어인 스웨덴어로 노래했음에도 전 세계적으로 많은 인기를 얻었고 한국에서도 만만찮은 켄트 애호가들을 만들었지만 멤버들은 12장의 앨범을 끝으로 마지막을 알렸다. 마지막이라는 의미를 제외한다면 지금까지 켄트가 들려줘온 사운드와 크게 다르지 않다. 서정적이고 슬프지만 감정을 고양시키는 이들 특유의 사운드 풍경 안에서 이들이 들려주는 멜로디는 이들의 해산 이유가 창작력 고갈은 절대 아닐 거라는 생각이 절로 들 정도로 생생하게 전달된다. 그저 마지막 앨범을 들으며 각자의 길에 무운을 빌 수밖에.

Maxwell <black SUMMERS' night>

모두가 기다려온 블랙 뮤직의 (어느새) 거장 맥스웰의 7년 만의 새 앨범이다. 전작 <BLACK summers' night>의 뒤를 잇는 3부작의 두 번째 작품이기도 하다. 저 멀리 심연에서부터 울려오는 듯한 그루브와 맥스웰만이 들려줄 수 있는 팔세토를 기다려온 팬들에겐 여전한 만족감을 줄 수 있는 앨범이다. 여기에 더해 최신 대세인 일렉트로닉의 경향까지 앨범에 무리 없이 담아냈다. 관악 세션이 주도하는 사운드는 지금까지와의 맥스웰과는 또 다른 듣는 재미를 전해준다. 첫 싱글 'Lake By The Ocean'을 들으며 가졌던 기대는 앨범 발표와 함께 확신이 됐다. 7년의 기다림을 충족시켜주는 앨범이며 동시에 그가 여전히 블랙 뮤직 씬의 중요한 인물임을 확인케 해주는 앨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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