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29일 개봉한 <굿바이 싱글>이 7월 9일 영화진흥위원회 집계 기준 누적관객수 158만명을 기록하며 손익분기점 150만명을 넘겼다. 2016년 상반기 한국영화 흥행작이 6편에 불과한 반면 손익분기점을 넘기지 못한 영화가 무려 27편에 이르는 가운데 주목받는 대작이 아니고서는 대중의 선택을 받을 기회조차 여의치 않은 상황에서 그다지 큰 규모가 아닌 <굿바이 싱글>의 손익분기점 돌파는 고무적이다.

김혜수에 의한 <굿바이 싱글>
제목은 <굿바이 싱글>이라고 했지만 이 영화의 홍보 단계에서부터 시작하여 실제 영화 전편을 지배하는 것은 김혜수라는 배우의 독보적 존재감이다. 2012년 <도둑들>의 파워풀하면서도 애틋했던 펩시에서부터 2014년 <차이나타운>에서 거친 얼굴로 차이나타운을 지배한 '엄마' 그리고 2013년 <직장의 신>의 미스김, 2016년 <시그널>에서 순수한 매력이 돋보였던 차수현까지, 최근 몇 년간 김혜수의 필모그래프와 그 필모그래프를 뛰어넘는 연기는 '종횡무진'이란 말이 부족할 정도로 폭과 깊이에 있어 압도적이다. 여배우 더구나 나이가 들어가는 여배우의 입지가 좁다는 지점에 공감했음에도 최근 몇 년 사이 배우 김혜수는 마치 그 한계를 스스로 돌파하겠다는 듯이 다양한 장르와 캐릭터의 좌표축을 오간다.

영화 <굿바이 싱글> 스틸 이미지

그리고 그런 김혜수의 '가열찬' 도전의 도정에서 이제 김혜수는 김혜수이기에 가능해진 영화를 만들어내는 지점에 이르렀다. <굿바이 싱글>의 주연은 가진 것이 섹시한 몸매 밖에 없고 '백치미'가 철철 넘치는 발연기를 하는 그다지 새롭지 않은 캐릭터다. 하지만 이 '진상' 캐릭터가 최근 몇 년 간 다양한 필모그래프에 도전하고 있는 김혜수와 만나는 순간 그녀의 입에서 튀어나온 '불알친구'란 말조차 미소를 짓게 만들 정도로 '사랑스러운' 캐릭터가 된다. 영화의 서사를 놓고 보면 싱글 노처녀 스타의 임신 스캔들을 둘러싼 해프닝과 대안가족으로서의 귀결이라는 그다지 새로울 것이 없는 방식이지만 내 편을 만들기 위해 '임신'을 하겠다는 얼토당토않은 주연의 결정이라든가 대회장 입장을 가로막는 학부모들을 상대로 한 뜻밖의 장황한 '개념 연설' 장면은 김혜수라는 배우에 의존한 바가 절대적이다. 즉 코미디 영화로서 <굿바이 싱글>이 가지는 생뚱맞은 파격을 내공 깊은 김혜수를 통해 온전히 설득해내고 있는 것이다. 아마도 김혜수라는 자타공인 매력적인 배우가 아니었다면 <굿바이 싱글>은 그럴듯하지만 꽤나 썰렁한 영화가 됐을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굿바이 싱글>을 온전히 김혜수라는 배우에 대한 찬사로만 귀결시키는 것은 온당치 않다. 왜냐하면 바로 이 작품의 감독이 2013년 젊은이들에게 회자되었던 화제작 <족구왕>의 감독 김태곤이기 때문이다. 김태곤 감독은 그에 앞서 2012년 <1999, 면회>를 통해 2013 데살로니키 국제영화제 각본상을 수상한 바 있다.

<족구왕>을 이어받은 <굿바이 싱글>
그러기에 <굿바이 싱글>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는 김태곤 감독의 전작 <1999, 면회>와 <족구왕>의 정서, 주제의식에 대한 점검이 필요하다. <1999, 면회>는 제목에서부터 알 수 있듯이 90년대 젊은이들의 정서와 추억을 두 청년의 군대에 면회 간 친구를 통해 풀어냈다. 1박2일의 면회, 거기서 한 여성을 통해 빚어지는 해프닝은 있을 법한 이야기지만 그를 통해 당시 젊은이들의 정서를 풀어내는데 있어 김태곤 감독은 각별했다. 그의 젊은이에 대한 각별한 정서는 <1999, 면회>에 출연한 적 있는 안재홍과 다시 한번 만난 <족구왕>을 통해 빛난다. 모두가 '성공'을 위한 디딤돌로 대학을 이용하고 있는 현실에서 '족구'에 빠진 복학생이라는 신선한 설정은 그 설정이 가진 '성공 사회에 대한 파열음과 유쾌한 해학으로 동시대 젊은이들로부터 찬사를 받는다.

영화 <굿바이 싱글> 스틸 이미지

<굿바이 싱글>은 그런 <족구왕>의 성공적 전략을 고스란히 이어받는다. '성공'이라는 고정 관념에 사로잡힌 대학 그리고 그런 대학의 확장판인 양 '스타'의 생사여탈권이 대중과 매스미디어를 통해 결정되는 사회, 그 사회에서 <족구왕>의 24세 복학생 홍만섭(안재홍 분)이나 <굿바이 싱글>의 노처녀 스타 주연은 다르지만 다르지 않다. 두 사람은 모두 현대사회의 시스템 안에 놓여 있지만 애초에 토익 점수라고는 받아본 적이 없는 만섭과 이젠 주모 역할이나 들어오는 주연은 그저 이 사회의 '루저'들이다.

그렇게 우리 사회가 정해놓은 시스템 속에서 '조롱'의 대상이 되는 이들, 하지만 이들은 그렇게 밀려나는 자신을 위해 생뚱맞은 선택을 하고 바로 이 지점이 김태곤식 코미디의 변곡점이 된다. 토익 점수조차 없는 만섭은 자신이 즐기는 족구를 하기 시작하고 연하남과의 사랑(?)마저 배신으로 귀결된 주연은 자기 편을 만들기 위해 '아이'를 가지려고 한다. 단지 그 아이를 만들기 위한 방식이 '급진적'(?)일 뿐.

그의 매니저인지 스타일리스트인지 모를 평구(마동석 분)의 지적처럼 마치 새 구두를 사재던 그 모습과 같이 주연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아이를 가지려 한다. 결국 가장 위험한 방식인 '계약'을 통해 어린 미혼모 단지(김현수 분)와 동거를 하기 시작한다. 모두가 취직을 위해 매진하는 대학에서 할 것이 없어 족구에 매달리던 만섭이 성공 사회의 비수가 되듯 그저 내 편을 만들겠다던 주연의 소박한 해프닝은 그녀를 때론 미디어의 성녀로 때론 탕녀로 롤러코스터를 타게 만든다. 결국 '대안가족'을 통한 내 편 만들기라는 이상적 구도로 귀착된다.

영화 <굿바이 싱글> 스틸 이미지

주구장창 족구를 해대던 <족구왕>처럼 <굿바이 싱글>의 서사는 임신 스캔들을 차치하고 보면 그다지 새로울 것이 없다. 하지만 안재홍이라는 배우와 그 주변 배우들이 빚어내는 '역설적인 공기'가 <족구왕>의 정서를 지배하듯 <굿바이 싱글> 역시 김혜수라는 매력적인 배우와 마동석을 비롯한 주변 사람들과의 호흡에서 빚어지는 해프닝이 이 영화의 정서를 지배한다. 단지 아쉬운 것은 그 정서에 천착하려 하다 보니 주인공을 비롯한 인물들의 공기에 집중하게 되고 그런 것들이 '족구'라는 다이내믹한 액션이 없는 <굿바이 싱글>의 구동력을 종종 느슨하게 만들곤 했다는 점이다.

족구를 열심히 하다 보니 성공 괴물이 되어가던 대학 사회를 휘저어 놓게 된 족구왕처럼 대중과 미디어가 생사여탈권을 가졌던 섹시 스타는 때론 '복수'를 위해 그를 이용하다 철저하게 그에게 내쳐지는 상태가 되어버리지만 오히려 그를 통해 진정 자신이 원하던 바를 찾아간다. 늘 대중의 시선에 의해 살아왔던 스타를 넘어 자기 편을 만들기 위한 무모한 도전이 주연이라는 한 인물의 삶에 주체성과 주도성을 되살려낸 것이다. 여기서 아이러니한 것은 그토록 오랜 시간 그녀를 소비했던 대중과 미디어, 그 누구도 그녀의 편에 남아있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결국 그녀에게 남은 것은 이제는 '가족'이란 이름으로 돌아온 '스탭'들 그리고 생면부지의 한 소녀다. 영화는 코믹하게 그리고 긍정적으로 섹시 스타 주연의 앞날을 해피엔딩으로 그려내지만 그 왁자지껄한 웃음 뒤에 남은 것은 운동장에 홀로 남은 만섭에게서 느껴지는 대중사회의 '페이소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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