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지난해 9월 KBS 이사를 마치면서, 짧게는 이사 3년의 임기, 길게는 지금의 종합편성채널을 탄생시킨 2009년 7월의 언론법 날치기 통과 이후 6년을 돌아보며 스스로에게 물음을 던진 적이 있다. ‘현재 한국사회에서 KBS가 상징하는 공영방송은 과연 무엇이고 필요한가?’하는 것이었다. 다소 긴 감은 있지만 이렇게 자문한 이유는 이랬다.

“첫째, KBS의 <개그콘서트>나 일일 또는 주말드라마 등과 같은 연예오락 장르에서 공영방송이 시청자의 문화적 필요와 요구를 상당한 정도로 만족시키고 있는 것은 방송사들 간의 경쟁에 따라 자발적으로 하는 성격이 강하다. 굳이 ‘해야 한다’고 의무로 지우지 않아도 ‘알아서 한다’는 얘기다. 그러니 공영방송이라는 외양은 굳이 필요 없어도 되는 게 아닌가?

둘째, 월드컵이나 올림픽 등 국제 스포츠 행사의 무료 시청 가능성은 이제 거의 0%에 가까워졌다. 국제 스포츠중계권 가격이 치솟는 현상은 한국에 공영방송이 있는지와 상관이 없는, ‘알라 카르테’(패키지가 아닌 개별경기 중계권 확보)를 허용하지 않는 국제 스포츠중계권 공급 독점 시장에서 비롯한다. 설사 KBS가 중계권을 확보한다 해도 지상파를 통한 무료 시청 환경은 매우 열악하다. (2012년 기준 직접수신율 7.9%). ‘공영방송을 통해 국제 스포츠 행사에 대한 시청자의 보편적 접근권을 보장한다’는 주장은 겉과 속이 부합하지 않는 구호로 전락했다. 이걸 위해 수신료를 왕창 올려주지 않는 한 말이다.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는 것인가?

셋째, 보도여론 시장에서 왜곡과 편파, 침묵 등이 낳는 총체적인 불공정성이 지적되고 이에 맞선 대항 담론이 형성되고 의제가 설정되는 과정은 공영방송과 무관하게 일부 신문과 인터넷 언론, SNS 등에 주도돼 왔다는 지난 5~6년 간의 역사적 경험 때문이다. 굳이 공영방송이 없어도 주요한 사안을 평가하고 판단하는 데 아무런 지장이 없다는 것이다."

2.

‘여소야대’로 이어진 지난 4․13 총선의 결과는 그때의 이런 물음을 한층 더 강화시켰다. 역설적이게도, KBS가 상징하는 공영방송을 비롯한 기존의 주요 언론을 장악하고 종편 출범을 통해 언론 지형 자체를 보수적으로 재편했음에도 이를 주도한 장본인 정치세력들이 선거에서 졌기 때문이다. 이런 결과를 낳은 요인들에게 대해서는 많은 분석이 있으니 재론할 필요는 없겠다. 다만, ‘언론 장악에도 이런 결과가 나타난’ 분석의 필요성은 매우 중요하다는 점만 강조하고 싶다.

얼마 전, 우리나라 35살 미만 젊은층에서 뉴스를 신뢰한다고 응당한 비율은 10%뿐이라는 결과를 봤다. 신뢰하지 않는다가 41%, 나머지 49%도 찬성도 반대도 아니라는 태도였다. 35살 이상의 경우에도 뉴스를 신뢰한다는 답변은 28%에 그쳤다. 여기서 직관적인 결론이 나온다. ‘장악된 언론이 열심히 떠들어대도 사람들은 믿지 않는다’는 것이다.

언론이 장악돼서 그렇게 됐다고 한다면 이는 동어반복이다. 믿지 않게 된 과정을 추적해 봐야 하는데, 다른 이유도 있겠지만 내게는 조용히 장악되지 않았다는 점이 가장 크게 다가온다. 순순히 고분고분 손아귀에 들어간 게 아니라 시끄럽게 장악됐고, 장악되지 않는 다른 언론들의 대항담론과 의제설정으로 이어지며 확산돼 왔다는 얘기다.

다른 하나의 요인으론 여전히 현재진행형인 세월호 참사의 눈물이다. 이 눈물은 최근 이정현 당시 홍보수석의 KBS 보도국장에 대한 보도통제 전화내용의 공개를 통해 다시 떠오른 KBS와 청와대의 민낯을 만천하에 드러냈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언론지형의 보수적 재편을 위해 태어난 종편들 중 하나가 삐딱선을 타게 만들면서 지금에 이르고 있다.

3. 지난해 9월 스스로에게 내린 답은 ‘아직은 KBS가 상징하는 공영방송을 포기할 수 없다’는 거였다. 여기에는 2014년 방문했던 호주 공영방송 ABC의 영향이 컸다. 재원 기준에서 호주 ABC는 공영방송이 아니다. 거의 전액을 정부 예산을 통해 직접 지원받고 있다. 그러나 ABC 구성원들은 이를 인정하면서도 ‘공영방송’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데 전혀 주저하지 않았다. 정부 예산 삭감에 직면하여 ABC는 시사 프로그램의 축소나 폐지를 전혀 하지 않아 왔다. 보도여론에 대한 정부의 간섭에 굴복하지 않는다는 거였다. 그 핵심에는 역시 사장이 있었다.

지금의 고대영 KBS 사장을 보며 그때 내린 이런 잠정적인 결론은 다시 의문에 싸인다. 그는 여야가 합의해 만든 국회 인사청문회를 통과한 사장이다. 이런 측면에서 정당성은 그 어떤 사장보다도 높다. 그가 거칠게 없이 무리수를 두는 배경에는 이것도 크게 한 몫을 거드는 듯하다. 아마도, 그는 여당의 운명과 함께 하겠다고 마음먹고 있을 것이다. 반면, 공영방송 자율적인 거버넌스의 핵심인 이사회는 한층 더 무력해졌다. 빈껍데기라고 해야 할까 싶다.

어떻게 해야 할까? 공영방송 ‘재건’에 대한 논의는 그동안 많아 왔고 좋은 처방도 많았다. 하지만 해체의 요소가 빠져있는 재건은 내게는 충분하지도 않고 만족스럽지도 않다. 제대로 된 사장만 앉히면 된다, 이를 위해 이사회만 제대로 구성하면 된다, 그래서 제작 자율성만 제대로 보장하는 장치를 만들면 된다는 식의 논의로 흐르기 때문이다. 그 중요성을 무시하려는 게 아니다. 필요하다. 하지만 여소야대 국회 상황에서 좀 더 근본적인 물음을 던지면서 해법을 찾아볼 필요가 있다. ‘공영방송이 굳이 지상파일 필요가 있느냐?’는 물음이 그것이다. 이 물음을 던지지 않고서는 실타래처럼 얽힌 수많은 난제들의 해법을 찾아내기 어려워 보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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