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또 일본과의 야구경기가 벌어지고 있다. WBC에서만 벌써 4번째 경기다. 첫 번째 경기에서 콜드게임 패를 당했지만, 다행스럽게도 이후에 치러진 두 차례의 경기에서 이겼다. 지난 2006년에 이어 WBC 4강에 진출하는 쾌거를 이룬 것. 경기에 참가하고 있는 이대호 선수가 그랬던 것처럼 ‘일본과 장기전’을 치르는 느낌이다.

반일감정이 아주 충만한 스포츠 업계에서 조차 식상한 일본전이라는 푸념이 나오고 있다. 국가 대항전 가운데 가장 흥행성이 좋은 일본과의 경기임에도 불구하고, 너무 자주한다는 것이다. 2009년 WBC를 시작한 이래로 벌써 4번째 경기를 맞고 있고, 만약 우리나라 대표팀이 결승에 진출한다면 또다시 맞붙을 가능성도 있다. 한 번에 너무 많이 우려먹는다는 것이다.

한편에서는 ‘식상한 일본전’, ‘일본과의 장기전’에 대한 푸념이 터지는데, 언론매체서 일본 경기에 대한 ‘애국심 장사’는 매우 치열하다. 지상파 방송, 신문을 할 것 없이 ‘애국심 장사’에 여념이 없다. ‘애국심 장사’도 이제는 식상할 때가 됐다.

▲ 지난 18일 총33꼭지 중 19개를 WBC소식을 보도한 SBS뉴스ⓒSBS
지난 18일, 일본전 이후 WBC 4강 진출이 확정되면서 각 매체는 온통 ‘일본 침몰’ 보도로 도배가 됐다. 지상파 방송3사는 각각 10꼭지 이상의 보도를 쏟아내며, 연속 ‘4강 진출’과 일본전의 통쾌한 승리에 대해 역설했다. 특히 SBS는 ‘특집’이라고 이름을 붙이면서 전체 보도 기사의 33개 가운데 19개의 꼭지, 무려 57.6%를 WBC 관련 기사를 내보내는 어이없음을 보이기도 했다. WBC에 묻힌 숱한 현안들은 WBC와 일본이 미울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 같은 도를 넘는 보도 가운데 문제는 ‘애국심 장사’다. 다시 마운드에 태극기를 꼽고, 대단한 국위선양을 하신 WBC 대표팀을 폄훼하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각각의 보도를 살펴보면, 국가대항전(戰)을 말 그대로 전쟁(戰爭)으로 만들어 애국심 고취에 여념이 없는 방송 보도는 이미 식상함의 수준을 넘어섰다.

KBS는 “펫코 파크 마운드엔 3년전 그날처럼 태극기가 당당히 휘날렸습니다…우리나라의 4강이 확정되는 순간 경기장엔 태극 물결과 대한민국 함성이 넘치며 기쁨을 함께 나눴습니다”고 보도했고, MBC는 “4강에 올라가고 일본을 꺾은 기쁨이 겹치면서 모두가 환호했습니다”고 전했다. SBS는 머리기사에서 “월드베이스볼 클래식에 출전한 우리 대표팀이 숙적 일본을 물리치고 4강 신화를 다시 한 번 이뤄냈습니다”고 전하고, “봉중근 의사”에 환호했다.

이러한 방송3사의 보도에서 공통적으로 나오는 것은 ‘마운드 위의 태극기’와 숙적 일본을 물리친 ‘봉중근 의사의 의거’이다. 야구경기장에서 가장 높은 투수 마운드 위에 태극기를 꼽아서, 국기로 대표되는 애국심 이미지를 강조했다. 여기에 이토 히로부미를 암살한 안중근 의사를 이미지를 덧씌운 ‘봉중근 의사의 의거’는 반일(反日)과 일제에 항거한 애국지사를 형상화한다.

역대 일본전에 대한 방송3사의 보도를 살펴보면, 타국가 팀과의 경기 보도보다 많이 보도한다. 여기에는 공통적으로 애국심의 이미지가 항상 등장했다. 지난 2008년 올림픽 준결승전 일본과의 경기에서 이승엽의 홈런과 김광현이 역투도 애국심으로 포장됐다. 그만큼 기자들과 국민들이 느끼는 일본과의 경쟁의식이 치열하기 때문일 것이다.

일본경쟁 의식이든, 국가 간의 경기에서 의도된 애국심 코드든 어째든 한·일전에만 애국심 코드들이 무차별적으로 생산되고, 이것이 언론을 통해서 공론화는 되고 있다는 점은 모두가 숙려해 보아야 할 문제이다. 애국심 코드가 스포츠에서 횡행했던 것은 뿌리 깊은 3S의 우민화 정책에서 시작된다.

국가 간 스포츠 경기의 기원이라고 할 수 있는 올림픽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근대 올림픽의 이상은 스포츠에 의한 인간의 완성과 경기를 통한 국제평화의 증진에 있다. 올림픽의 표어도 라틴어인 “보다 빠르게, 보다 높게, 보다 강하게(citius, altius, fortius)”라고 하였다.

국가 간 스포츠 경기의 원래 목적은 서로 간의 교류를 늘려 국제 평화를 증진하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처럼 특정국가의 경기에서 횡행하는 애국심 고취에 있는 것이 아니라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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