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아시다시피 지난해 8·15 경축사에서 대통령께서 ‘저탄소 녹색성장’을 향후 60년의 새로운 미래 비전으로 제시하셨습니다. (중략) 이와 관련하여 우리 방송통신 분야는 세계 최고 수준의 인프라와 서비스를 보유하고 있는 만큼, 이를 활용하여 각 분야의 녹색화를 가속화해 나갈 경우 한층 더 신속하고 효율적으로 녹색성장의 비전을 달성하는데 기여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최시중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은 지난 16일 오전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지상파 방송 KBS·MBC·SBS 사장과 KT·SKT 및 삼성전자 CEO, NHN·다음 대표 등 방송, 유무선 통신, 제조, 인터넷 업계 대표와 정보통신정책연구원을 포함한 정부 유관기관 대표 등 총 21명을 한자리에 모아 놓고, 이같은 인사말을 했다.

▲ 지난 16일 열린 제1차 녹색 방송통신 추진협의회에서 최시중 방통위원장이 발언하고 있다ⓒ방통위

이명박 대통령의 ‘저탄소 녹색 성장’ 주창 이후, 각 부처들은 저마다 ‘녹색 성장 정책’을 내놓았고, 지난달 중순에는 대통령 직속기구로 ‘녹색성장위원회’까지 등장했다. 방통위도 드디어 녹색성장 대열에 동참하고 나섰다. 방송통신분야의 민관 대표자가 유례없이 모두 모인 이날 행사의 제목은 ‘녹색 방송통신 추진협의회 제1차 회의’로, 방송통신 분야에서의 저탄소 녹색성장 추진을 위해 방통위가 구성한 민·관 협력기구이다.

2012년까지 4년동안 총 8236억원의 예산이 투입되는 ‘녹색 방송통신 추진 종합계획(안)’은, ‘방송통신의 녹색화’를 위해 △그린 네트워크로의 전환 △녹색 방송통신 기술개발 △녹색 방송통신 국민참여 및 ‘방송통신을 활용한 녹색성장’을 목표로 △녹색 방송통신 서비스 활성화 △녹색성장 기반 마련 △녹색 일자리 창출 등 총 6개 분야별로 19개 주요 추진과제를 선정했다. 이번 종합계획안은 3월말경 위원회 전체회의에서 확정되어 ‘녹색 방송통신 실무추진단’을 꾸려 실행해 나갈 예정이다.

방통위의 ‘녹색 방송통신’ 사업의 주요 추진과제들을 살펴보면, 녹색 성장과 방송통신을 결합한 다양하고 신기한(?) 아이디어 사업들이 상당하다. 막대한 예산 규모에 걸맞게 방대하게 구성되어 있어서인지, 실로 범국가적으로 불릴 만한 광범위한 내용들이 담겨 있다. 너무 방대한 탓일까. 추진계획 중에는 녹색과 연관된 사업인지 불분명한 내용들도 눈에 띈다. 오히려 성장 사업에만 방점이 찍힌 것은 아닌지 의심되는(?) 사업들도 있다.

‘녹색 방송통신 서비스 활성화’ 부문의 경우는 ‘녹색 성장’의 개념이 ‘물리적 움직임의 최소화’로 구현돼 있다. 이를 위해 ‘융합서비스 사업 확대’로 구현돼 있다. 즉 방통서비스를 이용해 사람들의 물리적인 움직임을 최소화시켜서 탄소 배출을 줄이는 내용이 핵심이다. 세부 내용을 보면 IPTV 및 디지털케이블TV를 통한 민원 서비스·의료서비스 등의 보급 및 영상전화 통화·회의 서비스 확산(2010년부터 독거노인, 농어촌주민 등 대상으로 영상전화 서비스 보급), 이메일과 핸드폰 등을 통한 전자결제 확산 유도 등을 포괄하고 있다.

▲ 지난 16일 열린 제1차 녹색 방송통신 추진협의회에서 최시중 방통위원장과 방송·통신·통신기기·인터넷 업계 대표자들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방통위

면면을 볼 때 이 분야는 저탄소 친환경이라기 보다는 오히려 융합미디어 서비스산업의 확장이 주요 내용으로 보인다. 사람의 물리적 움직임을 최소화하기 위해 원격서비스를 강화하고 영상전화 서비스를 확산시키는 것은, 결국 공장에서 뉴미디어 서비스 기기들의 생산을 늘려야 하는 방향으로 진행되는 것 아닐까. 이러한 확장 사업으로 또 얼마만큼의 탄소량 배출이 늘어날지, 이것이 얼마만큼 환경오염에 기여하는 지를 먼저 따져봐야 하는 게 순서일 텐데, 이에 대한 내용은 찾아볼 수 없다. 오히려 고탄소 배출 사업이 되는 것은 아닐지 궁금하지만, 이 사업의 목표도 역시 ‘녹색 성장’이다. 4년동안 총 105억원이 투여될 전망이다.

이번 방통위의 녹색 방송통신의 사업에서 가장 핵심적인 분야는 ‘녹색 일자리 창출’로 보인다. 방통위는 2012년까지 총 4541억원의 예산을 들여 1만5632개의 일자리를 만들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이 중 ‘녹색 교육’이라는 사업은 ‘녹색’으로 대표되는 저탄소 배출 사업의 범주에 넣어야할지가 의문이다. 이 사업은 초중고생을 대상으로 ‘청정 인터넷’ 사용을 교육하는 인력을 지원하겠다는 계획이다.

하지만 ‘청정 인터넷 교육’은 무엇을 지칭하는지, 이것과 ‘저탄소 배출 녹색 일자리’가 과연 어떤 상관관계인지에 대한 의문은 여전히 남는다. 청정 인터넷 교육을 담당하는 인력의 명칭이 왜 ‘녹색 인재’인 것인지, 추진계획안에는 설명이 없다. 녹색 교육에서 녹색을 떼고 인터넷 교육으로 바꾸더라도 어색하지 않을 법한 사업인 셈이다. 그렇다면 청소년들이 게임이나 음란물에 접촉할 시간을 줄여주는 사교육 시장을 녹색 시장이라고 부르지 못할 법도 없지 않은가?

또 다른 녹색 일자리라는 ‘녹색 창업’의 경우도 아리송하다. 사업 내용은 IPTV 서비스를 기반으로 하는 광고 콘텐츠와 스마트폰 응용 프로그램을 제작하는 인력을 양성하는 한편, ‘1인 기업’ 등으로 뉴미디어관련 소규모 창업을 유도하겠다는 것이다.

이 역시 IPTV 광고 콘텐츠와 스마트폰 응용 프로그램 제작 분야의 고용인원 늘리기가 골자인데, 이를 녹색 사업으로 간주해야 하는 것인지? 이는 오히려 뉴미디어 사업 성장과 연관된 내용은 아닌지? 의문이다.

그러나 방통위는 녹색 대유행을 계기로 방송통신관련 사업 추진에 박차를 가할 것으로 보인다. 방통위는 민관 협력기구인 ‘녹색방송통신 추진협의회’ 구성에 그치지 않고, 앞으로 범국가적인 녹색방송통신 추진 전략을 위해 ‘녹색 방송통신 실무추진단’ 및 ‘녹색 방송통신 자문단’ 등을 운영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소요 예산 8236억원은 기획예산처를 통해 일반회계 및 정보통신진흥기금으로 충당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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