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TN마니아 닷컴(http://www.ytnmania.com)에 올라온 <돌발영상> 임장혁 팀장의 글입니다. 현재 돌발영상은 대선 특보 구본홍 낙하산 사장에 반대했다는 이유로 지난해 10월초 33명에 대한 대규모 징계를 내릴 때 돌발영상팀 2명이 해직과 정직을 당해 현재 6개월 가까이 방송이 중단되고 있는 상태입니다.

한국 스포츠가 국제 대회에서 큰 승전보를 울렸을 때, 이 승전보가 한국 정치에 주는 영향은 이중적이면서도 모순된다.

정치인들은 우리 선수들의 쾌거를 자신들의 이미지와 연결시키면서 애국심을 계몽하고 국위가 선양됐음을 선전한다. “우리도 선수들처럼 하겠다”며 정치권에 대한 긍정적 여론을 꾀하기도 한다. 실제로 스포츠의 쾌거 때마다 집권층의 지지도가 (약∼간) 오르곤 했다.

반면 국민 대다수는 우리 선수들의 쾌거가 있을 때면 정치권에 대한 반감과 불신을 평소보다 더 표출한다. “우리 정치는 뭐하는 거냐” “선수들 반만큼만 해봐라”는 반응들이 줄을 잇는다. 실제로 한국 스포츠의 쾌거로 온 국민이 열광하고 있을 때 말실수를 한 정치인이, 평상시 비슷한 류의 말실수를 한 정치인보다 훨씬 큰 비난을 받는다.

▲ WBC 관련 보도로 구성된 다음의 특별 페이지 캡쳐

그렇다면 언론은 어떤가? 스포츠의 쾌거에 대한 이런 양면에 편승한다고 봐야 한다. 정치권의 애국심 부각과 국위선양 선전에 긍정적으로 발을 맞추고 정치에 대한 희망도 언급한다. 그러나 동시에, 스포츠와 비교해서 정치권을 욕하는 국민의 목소리도 적극 보도한다. 무엇보다 언론은 한국 선수들의 선전에 대한 국민의 응원 열기에 편승한다.

구독률과 시청률을 위해서… 그리고 돌발영상 또한 ‘편승’에서 자유롭지 않다.

바로 지금 소개하는 ‘오판’이 결국 스포츠에 대한 시청자의 열기에 ‘편승’한 것이 아닌가!

그러나 ‘오판’의 제작 의도에서 ‘편승’이 차지한 비율은 크지 않다고 변명해 본다.

구체적으로 변명해 보자면 다음과 같다.

누군가의 쓸데없는 권위를 뒤집고 부조리와 가식을 조롱하는 것이 돌발영상의 특성 중 하나다. 돌발영상을 보는 시청자는 뒤집기와 조롱의 대상을 보면서 킥킥 웃는다. 재밌다고 한다. 그러나 웃음 뒤에는 한국 정치에 대한 답답함과 짜증, 때로는 분노가 느껴진다는 시청자가 대다수다.

돌발영상의 피해자(?)인 등장인물(뒤집기와 조롱의 대상)들은 어떨까? 당연히 많이 불쾌할 게다. 많은 정치인들이 “돌발영상 때문에 국회의원들의 언행이 더욱 신중해지고, 국회 회의 분위기도 진지해졌다”며 겉으로는 돌발영상을 좋게 평가하지만 한번 주인공이 된 정치인은 내심 불쾌감을 느낄 테고, 때로는 돌발영상을 향해 분노를 느낄 수도 있을 것이다.

돌발영상을 만드는 제작자의 감정은 어떨까? 보는 이의 웃음과 등장인물의 불쾌함 사이를 줄타기해야 하기 때문에 항상 불안감을 갖고 있다.

웃음은 줘야 하지만 지나친 희화화가 ‘정치에 대한 환멸’로 이어지지 않도록 경계해야 하고, 쓸데없는 권위와 부조리, 가식을 조롱해야 하지만 개인의 인격까지 욕보이는 일은 없도록 조심해야 하기 때문이다.

보는 이는 답답함과 짜증이 생겨나고, 나오는 이는 불쾌함을 느끼고, 만드는 이는 항상 불안감을 갖고 있어야 하기 때문에 돌발영상은 웃음을 주긴 하지만 개인의 ‘순수한 즐거움’과는 거리가 멀다.

시청자도 진정한 즐거움을 느끼고, 등장인물들도 즐거움을 느끼며, 제작진도 즐겁게 만들 수 있는 돌발영상은 없을까?

아주 모처럼, 모두에게 순수한 즐거움을 안겨줄 만한 소재가 눈에 띄었다.

스포츠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도 상대적으로 약한 팀이 강한 팀들을 하나하나 격파해 나가는 국제대회라면(종목과 관계없이) 큰 흥미를 갖게 된다.

그 약한 팀이 우리나라라면 흥미는 열광으로 이어진다. 특히 우리에게 격파당하는 팀이 일본이나 미국일 경우 더할 나위 없다.

열광은 ‘일체감’을 밑거름으로 한 국민적 축제로 발전한다.

2006년 3월, 야구의 ‘메이저’, 미국에서 열린 WBC(세계야구선수권대회-처음엔 권투 챔피언전인 줄 알았다)가 그랬다.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던 한국 선수들이 세계의 강호들을 하나하나 격파해나가는 모습은 대한민국을 열광시키고 축제를 만들어내고 일체감을 일깨웠다. 경기를 보는 이들이 보였던 환호와 웃음은 ‘인간의 순수한 즐거움’이었다.

▲ YTN '돌발영상'ⓒYTN
어떠한 비판의식이나 정치적 판단 없이 그저 어떻게 하면 통쾌하게 순수한 웃음을 배가시킬 것인가만 고민하면 되는, 제작진으로서도 순수한 즐거움으로 일할 수 있는 돌발영상 제작에 들어갔다.

평소보다 ‘웃기는 자막’이 더 잘 씌어졌고, 짧은 영어 실력에도 한국팀에 놀라는 미국 중계 캐스터의 영어가 쏙쏙 귀에 들어왔다.

대회 전, 한국 팀의 실력에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던 사실은 이후 한국팀의 놀라운 성적에 대한 감동을 증폭시키기에 충분한 극적 요소였다.

이 극적 요소는 주요 참가국들을 소개한 미 ESPN사의 중계방송 타이틀에 한국팀이 빠져 있다는 사실로 표현했다. 그런데 ESPN의 타이틀은 ESPN의 경기 중계 화면 테이프를 앞뒤로 돌려보다 실수로 너무 많이 앞으로 돌리는 바람에 발견한 것이었다. 순수한 즐거움으로 제작했기 때문에 실수까지 도움을 준 것이라 본다.

아무런 불안감 없이 정말 즐겁게 제작했고, 보는 이들이나 등장한 이들 모두 즐거워할 수 있는 방송이었다. 즐거운 나머지 이런 판단도 했다.

“이렇게만 하면 앞으로 우리 정치권을 대상으로도 언제나 순수한 웃음을 주는 돌발영상만 제작할 수 있겠다!”

그러고는 바로 그 다음날, 모 정치인을 뒤집고 비꼬고 조롱하는 돌발영상을 제작할 수밖에 없었다.

‘오판’을 방송한 흥겨움에 겨워 하루 동안 우리 정치 현실을 ‘오판’한 것이다.

돌발영상 ‘오판’ (2006년 3월15일 방송분)
(http://www.ytn.co.kr/_comm/pop_mov.php?s_mcd=0302&s_hcd=01&key=200603151419517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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