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희태 한나라당 대표가 보궐선거 출마포기를 선언했다. 일각에서 당내 수장이 전쟁터에 가기 싫다고 하는 것은 청와대와 한나라당을 어렵게 하는 ‘장고 끝에 악수’라는 평이 있다. 하지만 청와대와 한나라당의 입장에서 보면, ‘출마 끝에 낙선’보다는 ‘장고 끝에 포기’가 훨씬 남는 결정이다.

박희태 대표의 출마 자체는 곧장 ‘이명박 정권 중간평가’의 상징을 갖는다. 하지만 당 대표의 출전 포기는 ‘보궐선거는 보궐선거일 뿐’으로 의미를 아주 축소시킬 수 있다. 지난 1년 동안 청와대와 한나라당의 실정失政으로 인해 승리할 가능성이 높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과, 실정으로 인해 실제 ‘패배’하는 것과는 천지차이.

▲ 박희태 한나라당 대표가 16일 여의도 당사에서 “4·29 재보선에 출마하지 않겠다”고 밝힌 뒤 기자들의 질문을 받고 있다. ⓒ여의도통신
당대표가 보궐선거에 나섰다가 패배하면, 이는 개인적으로는 ‘정계은퇴’의 수순을 밟으며 쓸쓸히 사라져야 한다. 그리고 청와대는 중간평가에서 국민들로부터 불신임 당함으로써, 정권 2년차에 권력누수가 본격화되는 ‘조기권력상실시대’로 곧장 돌입하게 된다. 또한 한나라당은 소위 ‘MB청부입법’에 대한 정당성을 상실함으로써 언론관련법 등의 개정 동력을 사실상 상실하게 될 뿐만 아니라, 주도권 자체를 야당인 민주당에게 헌상하게 된다.

결국 ‘출마 끝에 낙선’보다 ‘장고 끝에 포기’가 훨씬 낫다는 판단을 한 것이다.

문제는, 박희태 대표의 보궐선거 출마 포기 선언이, 과연 박희태 대표 혼자서 내린 결정인지, 아니면, 비밀리에 수행한 다양한 여론조사와 각종 정치컨설팅을 바탕으로 권력핵심부의 사퇴권고에 따른 ‘타의에 의한 결정’인지는 두고 볼 일이다. 시간이 지나면 각종 사실들은 밝혀지기 마련이지만, 이런 결정을 과연 박희태 대표 혼자서 내릴 수 있는 사안이냐는 따져 봐야 한다.

왜냐면, 박희태 대표의 출마 포기 선언는, 승리를 장담할 만한 곳이 없다는 청와대와 한나라당의 고민이 고스란히 묻어 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승리하지 못해도, 완전패배를 비킬 수 있는 길이 열렸기 때문이기도 하다. 두 가지 노림수가 있다.

▲ 지난해 3월 서울 동작을 지역에 출마한 정동영 통합민주당 후보가 유세차량에 올라 지지를 호소하는 연설을 하고 있다. ⓒ여의도통신
먼저, 제1야당인 민주당이 ‘정동영 전 의원의 전주덕진 출마선언’으로 ‘내전상황’으로 급하게 빨려들고 있는 상황을 주목하지 않았을 리 없다. 자중지란. 비록 전주덕진은 민주당 공천자 또는 범민주당 계열의 후보가 금배지를 달겠지만, 민주당은 치유할 수 없을 정도의 상처를 입을 수밖에 없는 대목.

솔솔 삐져 나오는 ‘노무현당’과 ‘김대중당’ 창당설은, 민주당의 분당을 전제로 하는 ‘설’로서, 정동영 전 의원의 출마 강행 ‘동기’가 아니라 출마 강행의 ‘결과’가 될 것이 뻔하기 때문.

이런 밑그림을 두고 본다면, 박희태 대표의 출마로 인해 카메라의 초점이 분산되기보다는, 박희태 대표는 완전 빠지고, 민주당 당권파와 정동영 지지파 간의 집단난투극을 집중조명함으로써, 국민들을 야당분열극劇 관람에 몰입시킬 수 있겠다는 판단을 했을 터.

다음으로, 중간평가 의미 축소와 보궐선거 의미 부각이다. ‘MB정권 중간평가’의 장으로서 보궐선거 결과는 ‘MB청부입법’을 추진하고 있는 한나라당의 추진동력과 직접적으로 연결된다. 단순히 의석수 1개의 문제가 아니다. 국민들로부터 불신임을 받느냐 신임을 받느냐의 문제는 곧 청와대와 한나라당의 기존 정책과 법안이 불신임을 받느냐 신임을 받느냐의 문제로 직결된다.

한데 ‘보궐선거는 보궐선거일 뿐’이라는 의미 축소는 한나라당이 선거기간 내내 집중적으로 선전할 것이고, 정동영 전 의원의 전주덕진 출마는 ‘MB정권 중간평가’가 아닌 ‘단순 보궐선거’일 뿐이라는 한나라당의 선전에 좋은 사례가 될 터. ‘민주당 대선후보 정동영도 중간평가로 보지 않고, 보궐선거로 보기 때문에 전주덕진에 출마한 것이 아니냐’고.

이미 박희태의 출마 포기는 정동영의 출마 강행보다 훨씬 고단수로 평가될 수 있으며, 출마 포기한 박희태가 출마 강행한 정동영을 이기고, 청와대와 한나라당의 당대표 출마 포기 카드는 민주당 공천경쟁에 뛰어든 정동영 전 의원의 출마 강행 카드를 밟아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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