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안했던 사회적 합의기구의 구성은 실패했다. 대신에 아주 불만스러운 사회적 논의기구가 국회 내에 마련되었다. 여야 동수라고 하지만, 사실상 11대 9로 한나라당 쪽으로 쏠리는 구성이다. 그래서 더욱 불안한 것도 사실이다. 앞으로의 일정, 마지막 결론은 한치 예측이 어렵다. 모든 것이 불확실하며, 모든 게 앞으로 누가 어떻게 하는지 여부에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일정도 100일로 못박히고, 역할도 ‘자문’기구로 정해지고 해서, 어떤 이들은 이 기구를 ‘들러리’라고 단정해버린다. 여당의 ‘겁박’에 의해 구성된 기구일 뿐이고, 그런 말도 안되는 곳에 참여한 이들 또한 민주당의 추천을 받았다치더라도 사실은 ‘알리바이’로 동원된 셈이다. 뭐 그렇게 볼 수 있겠다. 그렇게 욕하는 것도 자유다. 단호하게 부정했으니, 앞으로 바깥에서 맹렬하게 싸우시길.

한나라당 쪽 참여 인사들에 대해서도 그쪽 진영의 평가가 반드시 우호적이지는 않은 모양이다. <데일리 서프라이즈>에 따르면, 한 유력한 보수논객은 자신의 홈페이지에 “한나라당이 미디어 위원들로 노년층 교수 두 사람하고 뉴라이트 등을 임명하는 것을 보고 웃었다”고 한다. “침몰하는 배에 이마에 주홍글씨 그리고 탈 사람이 없다”고 덧붙였다고 한다. 재미있다. 그렇지만 그쪽 동네의 내부 소란에 내가 크게 관심둘 것은 아니고.

▲ 13일 국회에서 열린 '미디어발전 국민위원회' 첫 전체회의에서 김우룡, 강상현 위원장이을 비롯한 고흥길 문화체육관광방송위원회 위원장, 나경원 한나라당 간사, 전병헌 민주당 간사, 이용경 선진과창조모임 간사가 대화를 나누고 있다ⓒ여의도통신
사회적 논의기구에 대해 새로 할 이야기는 없다. 민주당과 창조한국당 추천 인사들에게도 새삼 무슨 특별한 이야기가 있겠나? 결코 유리하지 않은 조건 하에서, 전혀 만족할 수 없는 기구이기는 하지만, 기왕 참여해 싸우는 것이 맞다고 판단했으니, 말 그대로 열심히 공부하고 협력해 분투해주시길. 합리적 사고와 민주적 태도로 대화의 모범을 보여주고, 대중여론과 보편상식을 무기로 삼아 무리한 드라이브에 브레이크를 걸어주시라.

다만 나는 이 기구에 참여하는 언론학자들에게 몇 마디 하고자 한다. 강상현, 이창현, 최영묵 교수가 민주당의 추천을 받았다. 나는 이 세 사람을 잘 안다. 나는 이들이 ‘들러리’ 서기를, ‘알리바이’로 쓰이는 것을 단호히 거부할 거라고 확신한다. 그런 말 자체가 모욕이다. 강상현 교수도 그런 자신의 분명한 의지를 밝혔다. 약점 많은 기구이긴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분들이 앞으로 해야 할 너무나 중대한 역할을 인정한다.

동료 언론학자로서, 자유언론과 미디어 공공성을 고민하는 후배이자 친구로서 나는 세 사람이 위임된 책무와 여론의 요구를 성실하게 짊어져 줄 것이라 믿는다. 그렇게 언론 민주주의 보호를 위해 파이팅하고, 그래도 쪽수에 밀려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지 못한다면, 그때 누가 당신들에게 비난할 수 있겠는가? 양심에 따라 판단하고, 양식에 따라 행동하면 된다. 여러분에게 많은 이들이 전폭적인 신뢰와 무한한 지지, 뜨거운 성원을 보낸다.

광폭한 신자유/신자유주의시대, 언론학자들은 무엇하는 존재로 살 것인가? 학계에 숨고, 학교에만 머물 것인가? 논문쓰기에 열중하면 되는가? 현실이 이렇게 미친듯이 돌아가고, 엉터리 같은 모사꾼들이 준동하고, 도저히 사리분별이 되지 않는 궤변이 난무하는데도? 공적영역이 쑥대밭이 되다시피 했고, 언론자유가 구조적으로 침탈당하고 있으며, 미디어 공공성의 토대가 붕괴될 상황인데도?

이 시대 최대 논쟁의 한복판으로 과감히 뛰어들었다. 어려운 조건을 탓하지 않고, 힘든 현실로부터 도망치려 하지 않았다. 정도를 택했다. 비겁한 언론학자들, 침묵하는 커뮤니케이션 연구자들, 눈치보는 미디어 전문가들에게 정신 번뜩 들 수 있는 실천의 모범, 판단의 전형을 보여주시라. 후학과 제자들에게 왜 언론을 공부해야 하는지, 그리고 언론학자들은 어떻게 현실의 언론/언론의 현실을 책임져야 하는지 훌륭한 표상이 되어 주시라.

한나라당의 추천을 받은 세 명의 미디어/언론학자들 중에서는, 황근 교수만 좀 안다. 유학을 끝마치고 귀국 해 방송개발원에 같이 다닐 때는 얼마나 자주 어울려 술 마시고 그랬던가? 그때 황근 교수의 우직함, 호탕함이 선한 이미지로 남아있다. 요즘은 텔레비전을 통해서나 볼 수 있을 뿐. 물론 황 교수의 이념적 지향을 인정하고, 정치적 입장을 존중한다. 나와 다르다고 해서 부정하거나 욕할 자격이 내게는 없다.

이번 논의기구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담당할 모양이다. 예상대로다. 나는 황 교수가 하는 주장에 별로 동의하지 않는다. 반대되는 생각이 많다. 그러기에 기대할 것이 솔직히 없다. 할 말도 별로 없다. 그렇지만 이렇게 한번 물어보고 싶다. 최근 언론/미디어법 개정을 요구하는 ‘지식인’ 선언에 참여했던 데, 과연 지식인은 뭐라고 생각하나? 70퍼센트 반대여론이 엄연히 존재하는 상황에서, 사회적 논의기구에 참여하는 지식인의 책무는 대체 무엇일까?

지금의 논의기구를 많은 사람들이 원하는 대로 여론수렴의 사회적 숙의기구로 바꿀 책임이 참여한 언론학자 모두에게 있다. 그럼으로써 언론학자로서의 명예를 유지하고, 지식인에게 부여된 역사적 책임을 다해야 한다. 자신을 추천한 정당이나 자신을 후원하는 권력을 쳐다보면, 그때는 정말 ‘들러리’라는 오명을 피할 수 없다. 오직 진실의 요구과 여론의 명령에 따라 주도적으로 사회적 토론을 이끌어가라. 그래서 사회적 합의를 만들어내라. 반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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