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심히 공부하는 한국 학생들을 본받아야 한다”는 오바마 미국 대통령. 과연 오바마는 시험 못봐서 자살하는 학생들의 소식이 더이상 새롭지 않게 돼버린 기형적인 한국의 교육 현실을 알고도 그런 발언을 한 것일까?

국내 언론들은 오바마 발언에 대해 “(한국은) 미 대통령까지 교육열과 산업 경쟁력을 부러워하는 나라” “미국이 21세기형 경쟁력의 해답을 한국 교육열에서 찾는다”는 식으로 한껏 뿌듯한 자부심을 한자락 깔고 주요기사로 보도했다.

오바마 “미국 아이들, 한국 아이들보다 학교에서 보내는 시간 1개월 적어”

언론보도에 따르면, 오바마 대통령은 10일(현지시간) 워싱턴 히스패닉 상공회의소에서 “미국의 어린이들은 한국의 어린이들보다 매년 학교에서 보내는 시간이 1개월이나 적다. 그래선 21세기 경제에 대비할 수 없다. 앞으로는 학생들이 더 많은 시간을 교실에서 보내야 한다”며 “한국이 할 수 있다면 미국에서도 가능하다. 효율적인 방과후 프로그램 확대 뿐만 아니라 수업 일자를 늘리는 걸 생각해보자. 내 두딸을 포함해 다들 반가워하지 않겠지만, 새로운 시대의 도전은 더 많은 수업을 요구한다”고 말했다.

오바마는 “많은 민주당 지지자들이 학업성취도를 올린 교사들에게 성과급을 지불하는 것이 교실에서 다른 결과를 낳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이에 반대해왔다. 학생들의 학업성취도에 따라 뛰어난 성과를 낸 교사들에게는 더 많은 보수로 보상할 것”이라고 말했다.(서울신문, 한국일보, 동아일보, 조선일보, 중앙일보, MBC, 한겨레 등 참조)

▲ 조선일보 3월 12일자 5면
이에 대해 언론들은 “오바마의 발언은 미국에서 가장 열악한 것으로 악명높던 워싱턴 공교육 시스템의 개혁을 주도한 한국계 미셸 리 교육감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개방화시대에 경쟁력있는 교육을 해야 한다는 취지다. 경쟁력있는 교육에 관한 한, 한국은 오바마 대통령에게 본받을 만한 모델로 인식돼있다”고 평가했다.

오바마 교육정책, 어떤 변화가 있었나?

하지만 선뜻 이해가 되지 않는다. 언론보도만 보면 마치 오바마가 방과후 학교 찬성, 교사 성과급제 도입 등 경쟁 위주의 교육에 적극 찬성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나. 혹시 오바마 대통령이 약이라도 먹은 것일까? 오바마는 부시 전 대통령과 각종 정책에서 뚜렷한 대비점을 보여주었기 때문에 당선된 것이 아니었던가. 오바마의 교육 정책에는 어떤 변화가 있었던 것일까?

듣는 한국 학생들이 기가 막힐 오바마 발언에 대한 궁금증은 언론보도만으로는 풀리지 않았다. 과연 오바마 교육정책의 진실은 무엇일까? 구글 검색을 활용해 보았다.

오바마 정권인수팀이 공식홈페이지(http://www.change.gov)에서 제시한 교육공약은 조기교육 확대, 낙제방지법(NCLB) 개혁, 대학등록금 지원확대 등 3가지로 요약된다. 이중 핵심은 낙제방지법 개혁.

NCLB는 미국 학생들의 기초학력 저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국가적 차원의 책무성을 강조하고, 이를 위해 가장 먼저 연방정부와 주정부 차원의 학업성취도 평가를 의무화한 것으로 부시의 신자유주의 교육정책의 정수다. 대한민국 일제고사가 이 법에서 영향을 받아 부활됐으므로, ‘원조 일제고사’ 쯤으로 보면 되겠다.

이에 대한 오바마의 입장은 “학생들로 하여금 일년 내내 규격화된 시험을 보도록 강요해서는 안 된다. 우선 재정 지원부터 하여 NCLB를 바꾸겠다. 평가방식 또한 결과중심에서 과정중심으로 바꾸고 수업방식도 개별화 맞춤형으로 개혁하겠다”는 것.

즉 성적 올리기 교육이 되어버린 NCLB를 근본적으로 수정해 창의적 사고와 문제해결력을 기르기 위한 교육으로 변화시키겠다는 것으로, 전국단위 일제 고사를 강조한 부시의 교육정책과 정반대라고 할 수 있겠다.

지난 1월, 이상복 강남대 교수는 “오바마의 교육정책은 경쟁과 평가가 중심이 되는 교육정책은 성공하지 못한다는 진단에서 출발한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언론들, 오바마 교육정책 구체적 맥락 안 짚고 호들갑만

그렇다면, “한국 학생을 본받아야 한다”는 오바마의 갑작스러운 ‘돌변’은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오바마의 발언은 미국에서 가장 열악한 것으로 악명높던 워싱턴 공교육 시스템의 개혁을 주도한 한국계 미셸 리 교육감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는 단 한 줄의 해석만으로는 도저히 ‘상황 파악’이 되지 않는다. 언론들의 오바마 보도에서 알 수 있는 것은 오바마 교육정책에 대한 구체적인 맥락보다 “한국 아이들의 장시간 공부에 놀란 미국 대통령” 정도의 인상평뿐이니 말이다.

오히려 지난해 11월 송경원 진보신당 정책연구위원이 레디앙에 기고한 <오바마와 이명박의 차이, 교육 정책>을 참조하는 게 상황을 이해하는 데 더 도움이 될 것 같다.

송 위원은 오바마 교육 정책을 지켜보는 관전 포인트로 △‘NCLB지지자’ 워싱턴 DC의 미셀 리 교육감에 대한 지지 여부 △오바마 자녀의 전학 등을 꼽았다.

송 위원은 “일국의 대통령과 한 지역의 교육감의 관계가 뭐 그리 중요할 수 있는가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오바마의 두 딸들이 다니는 지역의 교육감이 미셸 리라는 점, 마지막 대선후보 TV 토론에서 오바마가 미셸 리를 두고 ‘훌륭한 새 교육감이 교육개혁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라고 발언하였다는 점, 미셸 리의 교원 정년 포기 정책이 주목받고 있는 점 등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며 “오바마가 미셸 리의 정책을 지지할지, 아니면 반대의 입장을 취할지 지켜봐야 한다”고 밝혔다.

‘속기사’와 ‘기자’의 다른 점은 무엇일까?

송 위원은 오바마의 두 딸이 유명 사립학교로 전학한 것에 대해서도 “공립학교로 전학하는 것은 공교육 개혁에 대한 오바마의 의지를 보여주는 것이지만, 사립학교로 전학하는 것은 부시의 NCLB나 미셸 리 교육감의 정책에 대한 지지로 확대해석될 수 있다”며 “앞으로 오바마의 교육정책이 어떻게 될지, 정말 NCLB를 대대적으로 개혁하여 일제고사와 경쟁 위주 교육을 바꿀지, 그래서 이명박 정부의 교육정책와 다른 모습을 보여줄지 좀 더 지켜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지난 1년간 한국 사회에서는 일제고사 부활, 성적 공개 등 이명박 정부의 교육정책으로 인해 심각한 갈등이 빚어졌고, 이는 아직도 뜨거운 현재진행형이다. 취임 1주년을 맞이해 각종 언론사들이 발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국민 10명 중 6명은 이명박 정부의 교육 정책에 대해 ‘잘못했다’고 평가했으며 ‘정부 정책이 공교육 정상화에 기여했느냐’는 물음에도 부정적으로 응답했다.

그런데, 언론들은 이러한 한국 독자들의 관심은 아랑곳 않고 그저 미국 대통령이 한국을 띄워주니 신나서 써댄 것처럼 비칠 뿐이다. 오바마가 말하는 ‘본받고 싶은 한국교육’이 일제고사, 학업성적 공개 등 MB정부의 경쟁 위주 정책을 의미하는 것인지, 아니면 3불정책 등 MB 이전의 것들까지 아우르는 것인지도 기사엔 전혀 언급되지 않았다.

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 한국일보 등은 직접 워싱턴 특파원이 기사를 작성했던데 오바마의 돌발적인 변화에 대해 전혀 의구심이 들지 않았던 것일까? 한국과 관련한 외국 소식에서 한국인으로서 궁금한 점들을 한국 언론만 보고 알고자 하는 건 지나친 욕심일까? ‘속기사’와 ‘기자’의 다른 점이 무엇인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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