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북의 대표적 낙후지역으로 꼽히는 중랑구 그린벨트 지역이 스파와 바비큐장 등을 갖춘 테마형 생태문화공원으로 다시 태어난”단다. 어제(10일) 서울시 푸른 도시국은 중랑구 망우동 일대 18만㎡ 중랑생태문화공원을 조성하여 내년 5월 개장한다고 밝혔다.

▲ 3월 11일 조선일보 23면 관련기사
난 청량리에서 태어났고, 강북의 대표적 낙후지역들을 쏘다니며 세상 대부분의 것들을 배웠다. 내게 세상에 대한 숱한 영감을 주었던 공간들이 이미 ‘강북의 강남화’란 요상한 슬로건에 휩쓸려 사라졌다. 쏘다니며 담배를 배웠던 골목도, 이틀쯤 자도 해가 뜨지 않던 친구의 반지하 자취방도, 영화에 나오는 대형 활극까지는 아니지만 색깔이 다른 교복 간의 팽팽한 긴장감으로 후끈하던 단관 극장도 사라졌다. 그리고 마지막 남은 망우리가 사라진다. 망우리는 내게 도시와 그 너머의 경계였다. 땀 깨나 빼며 잠자리를 쫒던 꿈동산이었다.

고백하건대, 난 도시 밖에 모른다. 그럼, 과연 ‘도시’란 무엇일까? 도시를 규명하기 이전에 그럼 대체 도시가 아닌 것은 또 무엇일까. 도시 밖에 모르면서도 난 솔직히 답을 모르겠다. 내게 도시가 아닌 것은 그 자체로 그냥 공포스러울 뿐이다. 난 줄곧 비웃곤 했다. 비도시적인 것에 대한 찬양과 경외는 이미 도시의 회로를 벗어나서는 생존이 어려운 개체들의 낭만적 판타지일 뿐이라고.

무엇이 도시를 안락하게 그리고 비도시를 공포스럽게 하는가? 그것은 소비이다. 소비는 도시적인 것과 비도시적인 것을 완전히 분리해낸다. 그리고 또한 소비는 비도시적인 것을 지속적으로 도시화 해낸다. 흰색 변기를 떠나는 것이 두려워 농활 기간 내내 화장실을 가지 못하던 친구들, 새벽 2시에 컵라면과 DVD를 구매하지 못하는 삶을 상상할 수 없는 나. 이 모든 것이 도시 공간의 소비 주름 안에서 길들여진 까닭이다.

도시 밖을 꿈꾸지만, 도시 밖에 알지 못하는 대다수 도시민들의 역설로 도시는 진화한다. 그 진화는 너무 거세고 가파른 것이어서 모든 변화를 흔하게 만든다. 망우리 그린밸트 지역이 생태테마파크로 변경된다는 사실을 보도한 언론은 많지 않았다. 맞다. 그런 흔해 빠진 개발, 식상한 뉴스이다. 미디어가 도시의 변화에 관심을 가지려면, 재산세 납부액의 정도를 따지는 경제, 만남의 광장에서 광화문 네거리까지 몇 분에 주파하는가를 계측하는 속도, 건물의 고도를 측정하는 수학, 분당 발생하는 미세먼지 농도와 평균 수명을 비교하는 과학 같은 것들 정도는 나와 줘야 한다. 아니면 연쇄 살인 사건과 같은 끔찍한 일이 벌어지거나.

이 쓸쓸함, 이기적인 것일 테지만 안타깝다. 도시는 나와 당신이 살며 기억하고 알고 있는 것들의 총체이다. 도시는 어떤 범주와 다른 범주의 교집합이 아니라 모든 범주의 합집합이다. 흔한 개발 따위가 뉴스조차 되지 못하는 사이, 도시란 합집합 안에는 어느새 비도시적인 것들까지 건설되기 시작했다. 그건 진화일까, 퇴행일까? 어쩔 수 없이 ‘도시 공간’의 움직임만 영위할 수 있지만, 도시 밖 존재의 취향과 스타일을 연민하는 이들에 대한 소비적 배려 혹은 개발적 탐구로 그렇게, 중랑구 그린벨트는 익숙한 생태문화공간으로의 탈바꿈을 눈앞에 두고 있다.

▲ 망우동 그린벨트 지역에 들어서게 될 생태문화공원 조감도
오세훈은 이명박에 비해 유약한가? 글쎄다. 분명한 것은 존재 자체로 어떤 이의 생존권에 심대한 위협이 됐던 이명박 서울시장이 떠난 이후에도 서울시의 행정은 여전히 누군가들의 삶에 위협을 던지고 있다는 점이다. 어쩜, 더 세밀하고 극악해졌는지도 모른다. 오늘자, 조선일보는 이렇게 전했다. “서울시가 생태문화공원으로 만들려는 망우동 241-20 일대 그린벨트 지역”은 “중랑구와 경기도 구리시 경계 지역에 있는곳으로, 1971년 개발제한구역으로 지정된 뒤 제대로 관리가 되지 않아 불법 건축물, 불법 분묘(墳墓·무덤), 무단 경작지가 어지럽게 얽혀 있”다고.

청계천 복원 과정에서 드러난 ‘파괴적 행위’는 선량한 생존권들을 낯선 곳으로 강제 이전시키고, 전통과 역사의 숨결들을 포크레인으로 무참히 짓밟은 것이었다. 몇 년의 시간이 지나 용산의 그것은 문자 그대로의 ‘죽음’이었다. 망우리는 어떨까? 조선일보에 의해 이미 불법으로 규정된 또 어떤 것들이 철거될 것인가? 기존의 것을 깡그리 부정하고 파괴하여 새로운 것을 짓는 방식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지만, 현실은 점점 잔혹해진다. 비단, 누군가가 죽었기 때문이 아니라 그 개발을 설명하는 언어들이 갈수록 근사해진다는 점에서 더욱더. 개발 사업을 담당하는 부서의 이름이 푸른 도시국이라지 않는가.

어찌되었건, 망우리 공동묘지가 테마형 생태문화공간이 된단다. 도시인의 욕망을 위무하는 그 세련됨, 아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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