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노조 총파업에 적극 나서지 않고 있는 KBS노동조합에 대한 안팎의 비판이 거세다. 특히 KBS 내부에서는 PD들이 자체 제작거부에 들어가는 등 지도부를 투쟁으로 이끌기 위한 움직임이 활발히 일어나고 있다. 현상윤 KBS PD가 최근 사내 게시판을 통해 강동구 노조위원장에게 투쟁에 나설 것을 촉구하는 공개편지를 보냈다. 현 PD의 동의를 얻어 편지 전문을 싣는다. <편집자>

지난 25일 한나라당은 결국 문방위에서 미디어관련 22개 법안을 날치기 상정시킴으로써 2차 입법전쟁을 선포했습니다. 오후 4시 국회 문방위에서 고흥길 위원장이 날치기 상정하고 퇴장할 시간, 국회 앞에 집결해 있던 MBC를 주축으로 YTN, SBS, 지역민방, EBS, CBS, OBS 등 언론노조의 1000여 조합원들은 26일 오전 6시부터 즉각적인 총파업 투쟁을 선언하고 지역 MBC와 지역 민방 지부장들은 총파업 조직을 위해 속속 해당 지역으로 발길을 돌렸습니다.

▲ 25일 오후 3시 서울 여의도 산업은행 옆에서 열린 언론관련법 저지를 위한 ‘언론노조 총파업 5차대회' ⓒ송선영
이에 앞서 24일 오후 3시, 방송악법 저지를 위한 KBS 노조 2차 비대위에서는 악법저지를 위한 총파업 찬반투표 실시안건을 울산 지부장이 제안한 후 상당한 논란 끝에 표결에 들어갔다고 합니다.

42명의 참석자 중에 9명의 노조 집행부가 반대표를 던졌고 최재훈 부위원장 등 3명의 집행부는 기권했고 대전에서 올라온 공방위 실장 1명만이 찬성표를 던졌다고 합니다. 또 9명의 시도지부장 중 7명의 지부장과 일부 을지 지부장 및 본사의 몇몇 중앙위원들이 파업찬반 투표 실시에 찬성하였으나 결과는 16 : 23으로 부결되어 KBS는 파업은커녕 찬반 투표조차 하지 못하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KBS 비대위 투표 결과와 한나라당의 문방위 법안 상정 강행

일부에서는 KBS 비대위 투표 결과가 그날 밤 청와대와 한나라당에 알려지면서 상임위 강행처리가 결정됐다는 의혹도 제기되고 있습니다. 25일 오후 3시경 언론노조의 국회 앞 2차 악법저지를 위한 결의대회에 참석한 최재훈 부위원장은 <미디어오늘>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미디어 관계법이 국회 본회의에 상정되더라도 최종 통과 시점까지는 상당한 시일이 걸릴 것이다. KBS노조는 미디어 법안이 국회 본회의에 상정되면 그 때가서 파업찬반 투표 실시여부를 결정할 것이다” 라는 취지의 입장을 밝혔다 합니다.

KBS노동조합이 어쩌다 이 지경에까지 이르게 되었습니까? 재벌과 조중동 방송법이 통과되면 어느 누가 제일 큰 타격을 받게 됩니까? MBC인가요? 그래서 MBC노조는 자기 밥그릇을 지키기 위해 지난 연말부터 13일간의 총파업투쟁을 강행했고 또 오늘부터 2차 총파업 투쟁에 돌입하는 겁니까?

제가 보기에 법안이 통과되었을 때 MBC에 생기는 변화는 새로운 오너가 생기는 것 외엔 큰 변화가 없습니다. 오히려 MBC가 민영화되면 총자산의 10%(최소 1조원)를 우리사주로 전환하면서 3000명의 MBC 사원들은 1인당 3억원 이상의 주식을 나누어 갖게 됩니다. 또 KBS의 광고가 총재원의 20% 미만으로 제한되는 공영방송법안까지 통과된다면 최악의 경제난 시기에 상당한 추가 광고수입까지 기대할 수 있게 됩니다. 결국 사사건건 간섭할 주인하나 생기는 것 외에는 손해볼 것이 없는 게 MBC 입장입니다.

그러면 KBS는 어떻습니까? KBS는 미디어법과 별 관계가 없습니까? 제 판단으로는 허울좋은 공영방송법의 테두리에 갇혀 예능과 오락 및 드라마 부분은 MBC와 SBS 및 새로운 상업방송들에게 그 영역을 물려주고 국정철학과 국민계도 기능을 주 역할로 하면서 국가기간방송, 심하게 표현하면 국영방송내지는 관영방송으로 전락하게 되지는 않을까요? (2TV의 오락기능은 대중문화의 주요한 선도적 견인매체로서 21세기 문화시대를 견인할 공영방송의 매우 중요한 기능입니다.)

또 우리 모두가 목매고 있는 수신료를 집권당이 5000원 이상으로 올려줄 수 있을까요? 설령 5000원으로 수신료를 올려주더라도 광고가 20% 미만으로 축소되면 KBS 예산은 1조3000억원 이하로 작년보다 줄게 됩니다.(수신료 1조500억 + 기타수입 2천억 - EBS 추가지원금 500억 - 한전 추가 수수료 500억 - 기초생활수급자 증가 등에 따른 수신료 면제액 500억 + 광고료 수입 2000억)

▲ 27일 낮 12시 서울 여의도 KBS본관 민주광장에서 열린 KBS노조 주최 '한나라당 미디어법 날치기 상정 규탄 결의대회'도중 강동구 위원장이 대회장을 박차고 나가고 있다.ⓒ송선영
투쟁 선봉 MBC 구성원들, 법 바뀌이도 손해 없어

수입은 지금보다 줄어들고 디지털 전환을 위한 막대한 전환비용까지 부담하고 나면 수신료를 2배나 올려 받아도 방송의 질은 더 나빠지기 십상이죠. 그러면 돈내는 국민들이 좋다고 하겠습니까? 그렇지 않아도 관영방송이다, 뭐가 잘못됐다, 말이 많은 판에 5000원 올려 받는 데 별 저항이 없을까요?

헌법에서 좋다고 한 거니까 그거는 별 문제 없다고 보고, 근데 한나라당은 정말 수신료를 5000원 이상으로 올려 줄 수 있을까요? 저는 개인적으로 불가능이라고 봅니다. 화장실 들어갈 때와 나올 때의 생각이 다른 게 오히려 더 현실적이라고 봐야죠.

비근한 예를 하나 들어보죠. 얼마 전 사측의 정책팀 책임자는 1월부터 본방송을 개시한 KT의 IPTV에 프로그램을 선 제공하면서 콘텐츠료는 후 정산하기로 하고 대신 250억원 상당의 콘텐츠 개발 펀드를 제공받기로 합의했다면서 결코 손해나는 장사가 아니라는 해명을 한 바 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됐습니까?

선 제공 후 정산의 대가로 받기로 한 250억원 상당의 제작기금은 KT가 이사회에 상정조차 하지 않고 있습니다. 결국 공짜로 프로그램만 제공하고 있는 결과가 됐습니다. 쉽게 얘기하면 KBS가 KT에 물건만 주고 물건값은 언제 어떻게 받을지도 모르는 처지라는 것이죠. (정권핵심과 가까운 곳에서 압력이 세게 오니까 알면서 당한 것이라 생각됩니다만 정확한 내용은 진상조사위를 구성해 해사행위를 한 책임자가 있다면 합당한 책임을 물어야겠지요.)

누차 얘기했듯이 최악의 경제 위기 상황과 극심한 양극화 현상으로 빈곤층이 급속히 증가하는 속에서 5000원으로 두 배 올리는 것이 가뜩이나 인기없는 현 정권에게는 상당한 정치적 부담이 될 것입니다. 경제난과 국민적 조세저항을 핑계로 또 KBS의 상당한 자구노력으로 구조조정을 요구하면서 인상시기는 상당히 늦춰지면서 인상액수도 경제가 나아질 후일을 다시 기약하면서 1000원 전후의 소폭에 그칠 가능성도 있습니다.

아니면 아예 배째라 식으로 안면몰수하고 KBS의 극심한 재정난을 조장해 재벌이나 신문사 컨소시엄에 헐값에 매각하고 떡고물도 챙길 수 있다면 미디어 빅뱅을 컨트롤하는 입장에선 그게 제일 탐나는 해법이 되지 않을까요? 법 통과 이후의 수신료 인상 약속이 뻥이 안된다고 누가 장담할 수 있을까요?

수신료 인상 약속해도 과연 지켜질까?

작년 7월 어느 날 새벽 북악산에 올라 긴 밤 지새우고 새벽이슬 맞으며 뼛속 깊이 촛불의 의미를 새기며 사과하던 어느 분의 말씀을 뻥이 아니라고 믿고 계신 분이 아직도 있습니까? 자고 일어나 눈만 뜨면 거짓말을 해대는 이 정권 주요 인사들의 거짓 DNA가 KBS에는 해당되지 않는다는 어떤 보장이 있습니까?

미디어법과 공영방송법으로 가장 큰 타격을 입게 되는 곳은 MBC가 아닌 바로 KBS입니다. 그런데도 KBS는 남의 집 불구경하듯 여전히 방관만 하고 있습니다. MBC를 비롯한 언론노조 조합원들은 개개인의 사적 이익을 따지기에 앞서 ‘방송의 공공성을 지키는 것’이 독재로 치닫고 있는 MB정권으로부터 유린되고 있는 ‘민주적 가치와 정의를 지키는 것’이라는 시대사적 소명과 역사적 책무를 자각하며 오늘부터 또 다시 총파업 투쟁에 나서고 있습니다.

강동구 위원장께 묻습니다. 우리 노조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뒷구멍으로 한나라당과 접촉하면서 수신료를 보장받으면 그것으로 족한 것입니까? 그것이 한낱 휴지조각임을 왜 모르십니까? 연대와 투쟁의 정신을 상실한 노조는 사측의 합의 약속조차 담보해내기 어려운 것이 우리의 현실인데 하물며 정권의 사탕발림을 철석처럼 믿으십니까?

그러다 뻥이 되면 그 책임은 누가 지는 겁니까? 연대하지 않고 투쟁하지 않는 무력한 노조에겐 그 어떤 약속과 합의문서도 한낱 휴지조각임은 이 시대의 진실입니다. 아무리 역주행의 시대라 하더라도 KBS의 이익을 권력이 지켜주는 시대는 끝났습니다. 의로운 국민들과 함께 하는 길만이 KBS가 진정으로 사는 길입니다.

강동구 위원장과 집행부 동지들께 마지막으로 호소 드립니다. 더 늦기 전에 5000 조합원의 선두에 서서 연대의 전선으로 달려 나가십시오. 민주와 정의의 깃발을 치켜들고 투쟁의 현장으로 복귀하십시오. 그것이 우리 KBS를 살리고 우리의 밥그릇을 지키는 길이며 이 나라의 민주주의 지키는 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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