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와 한나라당이 추진 중인 방송법 개정 등 방송구조 변화의 목적이 ‘정치적 의도’에 있음을 보여주는 방송통신위원회의 용역보고서가 공개돼 논란이 일고 있다.

최문순 민주당 국회의원은 23일 국회 방통위 업무보고에서 방통위가 의뢰한 ‘보도전문채널 및 종합편성채널 제도 연구’라는 용역보고서를 공개하면서 “한나라당의 방송법은 일자리 창출 등 정책의 문제가 아니라 정치적 의도를 가진 문제”라며 “정부는 결국 방송사 2~3개를 더 허용하는 것이 목표”라고 주장했다. 이번에 최 의원이 공개한 보고서는 방송법의 고용효과 부풀리기 의혹 등에 휘말려온 정보통신정책연구원(KISDI·원장 방석호)에서 작성한 것으로, 천정배 의원실이 요약본을 입수한 것으로 전해졌다.

최 의원은 “7페이지에 보면 종편채널 허가 이유에 대해 ‘특히 최근 보도 및 시사프로그램의 편향성에 대한 사회적 우려가 제기되면서 방송보도채널의 다양성 및 전문성에 대한 사회적 요구가 증대하고 있음’이라고 적혀 있다”며 “정치적 의도가 명백하다”고 밝혔다. 그동안 미디어 산업발전 등의 논리로 방송법 개정안을 주장했던 한나라당과 정부의 입장이 허구라는 것을 드러내준다는 지적이다.

특히 이 보고서는 프로그램 ‘편향성’의 예로 대통령 탄핵 사태와 황우석 사태, 광우병 파동 등을 언급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해당보고서는 “다양한 관점의 보도 콘텐츠를 제작·편성함으로써 한국사회 내 지상파방송의 막강한 여론 독점력을 견제하고, 여론의 다양성을 제고하며, 국민의 알 권리를 충족시킬 수 있는 경쟁력 있는 유료방송 보도전문채널의 도입이 필요하다”고 밝힌 데 이어 “지상파방송과 경쟁할 수 있는 채널 브랜드를 갖는 종합편성채널과 보도전문채널에 대한 대기업, 신문사, 뉴스통신사의 진입 및 소유제한 규정으로 인해 유료방송 콘텐츠 산업을 활성화하는 데 필요한 대규모 자본과 보도채널 제작의 전문성을 유료방송 시장 내로 인입하는 데 제약이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최시중 방통위원장은 “그런 보고서를 보고 받지 못했다”고 해명했고 방통위 황부군 방송정책국장은 “KISDI에 연구 의뢰한 것은 맞지만 아직 보고서가 완성되지 않았다”고 답했다.

▲ 23일 방송통신위원회 업무보고를 위해 열린 국회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최문순 민주당 의원이 제기한 정보통신정책연구원(KISDI)의 '보도전문채널 및 종합편성채널 제도 연구' 보고서 관련 의혹에 대해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이 답변하기 전 굳은 표정을 짓고 있다. ⓒ여의도통신
방통위가 의뢰한 이번 KISDI 종편채널 도입 보고서가 주목받는 이유는 ‘한나라당의 언론법 개정 목표가 지상파 견제를 위한 종편채널 도입 등으로 바뀌고 있다’는 주장을 그대로 뒷받침하는 논리이기 때문이다. 일각에서 제기되어 온 ‘한나라당이 MBC 민영화 등을 어렵다고 판단하고 우회로를 모색하고 있다’는 전망이 힘을 얻게 됐다.

지난 17일 서울 여의도 KBS에서 열린 ‘한나라당 방송재편의 실체와 KBS’ 토론회에서 조준상 공공미디어연구소장은 “과거 글로벌 미디어그룹 육성과 일자리 창출이라는 주장이 ‘과장’으로 드러나자 한나라당의 언론법 개정 목표가 선회하고 있다”면서 “지난 3일 방송학회 토론회에서 정병국 의원이 발언한 ‘여론 다양성 확장’과 지난 5일 토론회에서 황근 선문대 교수가 주장한 ‘공익적 진입장벽 해체’ 등으로 변했다”고 지적한 바 있는데, 이러한 내용이 이번 KISDI 보고서에서 밝혀진 셈이다.

당시 조 소장은 최근 정병국 의원이 ‘MBC와 KBS-2TV 소유구조에 손대지 않을 것’이라고 발언한 것과 관련해 “정 의원의 발언은 거짓말이고, 설령 한나라당이 재벌·신문의 지상파소유를 철회하더라도 종합편성채널 소유가 가능해지면 지상파 방송은 고사하고 말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또 그는 “황근 교수는 지상파방송이 의견과 내용의 다양성을 독점하고 있다는 논리를 펴고 있지만 같은 논리를 신문 산업에 적용하진 않고 있다”면서 “그는 3개 신문의 장악에 대한 문제의식도 없다”고 강조했다.

그러니까 이번 KISDI 종편 보고서가 향후 미디어법 개정 국면에서 중요한 길잡이가 된 셈이다. 지난 5일 한나라당 미디어산업발전특별위원회의 공영방송법 토론회에서 정병국 특위위원장은 “한나라당이 생각하는 것은 재벌과 대기업에 서울, 수도권 방송을 허용하는 것은 아니다”면서 “IPTV 등과 경쟁해야 하는 지역 지상파방송의 생존방안으로 재벌이 지역방송에 투자할 기회를 부여함으로써 지역방송을 살리고자 한다”고 발언하기도 했고, 최근 언론과의 인터뷰 등에서 “무분별하게 설립됐던 중소·지역 방송사들이 정보ㆍ취재력을 갖춘 일부 신문사와 인수·합병(M&A)을 통해 경쟁력을 갖추는 산업구조 재편이 이뤄질 것”이라고 개정 이후를 내다보기도 했다.

이같은 정 의원의 발언과 KISDI의 종편도입 보고서로 미루어보면 한나라당의 관점에서 ‘지상파 여론 독과점’ 견제 수단은 다양해질 것으로 보인다. 지역민방의 경우 오너를 2~3개로 압축한 뒤 사실상 전국 채널화 하는 방안이나, IPTV나 종합편성채널 등에 대형 통신사나 재벌급 SO가 진출하는 식 등 어떤 경우라도 지상파TV에 맞먹는 덩치의 방송사가 탄생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최근 OBS의 MB특보 사장 임명건도 이런 맥락에서 본다면 한나라당의 미디어법 개정과 맞물려 커다란 변수로 작용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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