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17일 박원순 서울시장이 무악제2구역 주택재개발사업지를 전격적으로 방문했다. 원래 이 날 오후에 재개발에 반대하는 주민들, 대책위 관계자들과 만나기로 했던 날이다. 현장을 찾은 박원순 시장은 ‘서울시가 할 수 있는 수단을 동원해서라도 더 이상의 철거는 없다, 나에게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하라'며 목소리를 높였고 자리에 함께 했던 반대 주민들은 격앙된 목소리로 환호성을 질렀다. 하지만 시장이 방문을 마치고 돌아간 자리, 은근슬쩍 공사는 재개되었고 이에 종로구청 관계자는 ‘아직 서울시에서 공사중단 공문이 오지 않았다'며 눙쳤다. 사실상 철거는 저녁 때까지 이어졌다.

이런 일련의 사건을 바라보는 시각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눠진다. 하나는 박원순 시장답다는 평가로, 관료들의 행정적 무능을 정치적으로 해소했다는 평가다. 다른 하나는 사실상 떠난 버스에 손흔들기로, 진작에 할 수 있었던 일을 뒤늦게 와서 정치적 성과만 챙겼다는 평가가 그렇다. 하지만 이 두 가지 시각 역시 담지 못한 부분이 있는데, 왜 박원순 시장이 재선을 했는데도 불구하고 강제 철거가 일어나고 있는가 라는 점이다. 그리고 행정의 무능으로 말했던 그 지점은 ‘정말로 무능인가'라는 점이다.

개인적으로 여전히 진행되고 있는 전면철거 방식의 재개발은 박원순 식 정치가 행정에 의해 포위되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징표라고 본다. 그리고 이를 집행한 행정은 무능이 아니라 정치의 의도를 뛰어넘을 정도로 강력하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라 평가한다. 그러니까, 옥바라지 골목에서 버럭 분노를 표한 이면에는 ‘박원순 시장도 재개발에 있어서는 할 수 있는 것이 없다’는 기득권 측의 안도감이 있는 것이고 이를 보장하는 행정의 절차가 있으며, 이를 수행하는 행정관료들의 집행이 있다는 뜻이다.

지난 3월 서울시는 종로구청에 건물철거 유예요청을 했다. 하지만 그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철거가 이루어졌다. 그것은 5월 17일 시장이 현장을 방문한 후에도 마찬가지였다.

재개발은, 무악제2구역은, 과거 시장의 유물일 뿐인가

이제까지 뉴타운재개발 등과 관련해 박원순 서울시의 일관된 입장은, 과거 이명박-오세훈으로 이어지는 이전 시정의 잔유물이며 이를 벗어나는 것이 도시정책의 목표였다는 것이다. 실제로 그런가. 무악제2구역은 2004년 9월 추진위원회가 설립되면서 시작된 곳이다. 그러던 것이 지방선거를 앞둔 2006년 3월에 정구역지정 고시가 난다. 한마디로 이명박 뉴타운의 마지막 물결인 셈이다. 그리고 2010년에 조합을 설립되었다. 이 때까지가 오세훈 시장 때까지의 일이다. 그리고 2011년 10월 정비구역계획이 변경된다. 소규모 공원을 만드는 대신 용적률 10%의 인센티브를 받아서 기존 세대수가 176에서 185로 늘어났다. 2년이 지난 후, 2013년 11월에 사업시행인가(종로구 고시 제2013-85호)가 난다. 이 때 계획건설 세대는 195개가 된다. 전용면적 60제곱미터 이하가 55세대, 85제곱미터 이하가 114세대, 85제곱미터 이상이 26세대다. 그러던 것이 1년 만에 사업시행인가 변경이 이뤄진다(종로구 공고 제2014-831호). 여기서 재미있는 현상이 벌어지는데, 바뀐 것이라곤 세대구분형 12세대가 추가된 것이다. 즉 대형 평형수의 세대를 쪼개서 사실상 2개로 만든 것인데 이를 세대구분형으로 만들었다.

통상적으로 기존 195세대에서 12개를 추가해 207세대로 변경할 수 있었는데도 이를 세대 구분형으로 표기하면서 사업시행인가를 변경한데는 임대주택이라는 이유가 있다. 전체 세대수가 200세대를 넘으면 임대주택을 지어야 하는 규정 탓이다. 이런 꼼수를 사업인가 기관인 종로구청이 몰랐을까? 그렇지 않았을 것이다. 늘 그래왔듯이 사업시행자인 조합의 편의를 최대한 봐준다는 명목으로 오히려 ‘그렇게 하시라'며 권장했을 수도 있다. 시장의 의지와 상관없이 재개발 관련 부서의 행정은 그런 경로의존성이 만들어져 있기 때문이다.

무악제2구역 관리처분검토보고서 상의 건설계획. 이에 따르면 아파트 2동이 들어서는 이 사업의 총사업비는 1,031억원에 달하고, 예상수입은 1,370억원에 달한다. 한 번의 사업으로 300억원 이상의 수익을 기대하는 사업인 셈이다.

임대주택을 회피하기 위해 세대 구분형 주택이라는 꼼수를 부린 것 뿐만 아니라 각종 인허가 과정에서도 모호한 부분이 있는 부분도 있다. 실제로 관리처분계획서에 대한 종로구청의 검토보고서를 보면, 2015년 5월 23일 개최된 총회는 85명의 정족수에 70명의 조합원이 참석해 82.35%의 참석률을 보였고 동의율은 77.64%로 나타났다. 법적 요건에서 보자면 총회의 개의는 조합원 과반수이상이 참석해야 하고 이 중에서 직접참여 비율이 20%여야 하고 의결요건은 참석자의 2/3을 넘어서야 한다. 위의 자료에서 가장 눈이 가는 부분은 직접참여 비율에 대한 사항이다.. 직접참여자는 총 39명으로 보이는데 현장참석자는 5명에 불과하고 절대 다수는 서면제출참석으로 34명이다. 이 둘의 차이는 무엇일까? 앞서 34명은 당일 총회에 오긴 했으나 의결에 참여하지 않고 퇴장한 인원을 의미한다. 그러니까, 서면동의서를 들고 와서 제출하고 가도 직접참여가 되는 것이다. 통상 서면동의서는 총회 개최통지서에 첨부된 서면동의서를 반송하는 방식으로 제출하지만 이런 저런 사정으로 이를 내지 못한 조합원들은 당일 서면동의서를 직접 제출해야 한다.

따라서 이렇게 당일 서면동의서를 제출하기 위해서만 총회장에 ‘들른’ 사람도 현장 참석인원으로 계산했다. 엄밀하게 도정법 상의 직접 참석비율을 강제하고 있는 이유는 서면동의서를 통해서 진행하는 조합의 회의가 많은 문제를 일으키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서면 동의서 제출을 위해 잠시 온 인원까지 직접 참석 비율로 계산한다면 사실상 법 개정 취지가 무색해진 것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종로구청이 검토한 어떤 내용에도 이와 같은 점은 언급되어 있지 않다. 사실상 구의 행정은 어떻게 해서든 ‘법을 직접적으로 위반하지 않는 전제라면’ 사업을 진행하는 방향으로 유도하고 지원하려는 유인이 있는 셈이다. 그리고 이런 재개발행정의 문제점은 단순히 누가 시장이냐의 문제를 넘어서서 지방행정 자체의 편향성으로 봐야 한다. 현재 박원순 시장이 직접 나선 상황에서도 옥바라지 골목의 해법이 어려운 것은 이런 맥락 탓이다. 지금까지만 놓고 보자면 행정의 편향성은 시장의 정치적 의도를 앞선다. 행정은 자신의 의도에 대해서는 ‘위법하지 않는 편법’을 용인하는 반면 자신이 동의하지 않는 방식에 대해서는 ‘쓰여진 문자 그대로의 해석’ 이상을 용인하지 않음으로서 자신의 자의적 권위를 유지한다. 이것을 ‘현행 법령의 테두리’를 통해서 해결한다는 것은 가능하지 않다.

제2의 옥바리지를 막기 위해서는 ‘행정의 유리벽’을 깨야

건물 철거가 진행 중인 무역제2구역 주택재개발사업은 너무 많이 진도가 나갔다. 실제로 대부분의 건물이 철거 되었고, 이미 각종 대여금이나 대출로 600억원 정도의 비용이 사용되었으며 시공비만 450억원에 달한다고 한다. 대개의 사업이 그렇듯 제 손에 든 것이라고는 현금화되지 않은 땅떼기 밖에는 없는 조합원들이 추진하는 사업이란 것이 빚을 끌어와 하는 신기루같은 사업일 수 밖에 없다. 결국 시간이 돈인 상황이다. 그래서 일까, 2014년 사업시행인가 변경과 2015년 관리처분인가는 너무 빠르고 그 탓에 인허가 과정에 대한 의혹이 제기된다. 앞서 본 바대로, 종로구청은 조합 측이 무리하게 세대수를 늘려가는 과정에서 최대한의 협조를 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최근 법원의 판결로 보건데, 설사 절차상의 하자가 사후적으로 발견되더라도 이를 회복함으로서 얻을 수 있는 실익이 없다면 별다른 법적 처분을 받기도 어려울 것이다. 그래서 철거를 서두르는 것일 테다. 당장은 이런 저런 욕을 먹더라도 실질적으로 철거가 마무리되면 ‘법도 행정도’ 별 도리가 없는 상황이 된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막무가내 개발의 핵심에는 종로구청장과 해당 구청의 주택과가 있다는 것은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공사의 관리감독권자인 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준공검사의 담당기관인 구청은, 모든 재개발 사업의 ‘갑 중에 갑’일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하루라도 임시 준공검사를 통해서 가입주를 하는 것이 필요한 조합이나 시공사 입장에선 자치구청의 입김이 가장 무섭다. 이번 사건에서 보인 종로구청의 수준이 어느 정도냐면, 지난 3월 15일 서울시가 공식적으로 집행한 ‘철거 유예 및 주민사전협의체 진행’에 따른 후속조치 내용을 보면 된다. 서울시의 철거유예 요청에 대해 종로구청 주택과는 ‘법적 구속력이 있는 것도 아니고 공문 수령 후 15일간 철거를 진행하지 않았으니 유예한 셈'이라는 창의적인 대답을 내놓는다. 애당초 서울시의 철거유예 공문을 수용할 뜻이 없었던 종로구청은 서울시의 요청을 이행하지 않더라도 ‘법적으로’ 서울시가 할 수 있는 조치가 별로 없다는 것을 이용했다.

같은 날인 3월 15일 종로구청을 방문했던 민원인을 대하는 주택과장의 태도를 보자. 역사문제연구소의 후지이 다케시 선생에 대한 ‘내정간섭' 운운하며 모욕을 하는 것이 구청 사무실에서 일어났다. 그럼에도 이 관계자는 여전히 공무원으로 공직을 수행한다(관련영상). 곰곰히 생각해보면 재개발 행정을 담당하는 공무원의 권한이란 법에 의한 위임일 뿐, 그 자체가 뛰어난 인간성이나 도시에 대한 고민 무엇보다 공직에 대한 깊은 이해를 하고 있다 보기 힘들다. 그럼에도 현행 법률은 이런 한 직업인일 뿐인 공무원에게 너무 많은 권한을 부여한다. 무엇보다 다른 행정과는 다르게 도시개발이나 교통정책 등 기술직으로 분류되는 공무원 직렬은 구청을 바꿔가며 같은 업무를 담당한다. 필연적으로 개발 위주의 시각을 가질 수 밖에 없다 ‘자신은 잘 안다’는 교만을 내면화할 수 밖에 없다. 이것은 그들의 인간성 탓이 아니라 법적 권한 자체가 그렇고, 같은 행정계열에서만 순환하는 체계가 그렇다.

실제로 박원순 시장이 들어서고 시작한 뉴타운 출구조사의 과정에 보인 지역간 편차는 대개가 자치구청장의 의지나 해당 부서의 인식이 관건임을 확인할 수 있다. 개인적으로도 3개 자치구에서 실태조사를 지켜볼 수 있었으며, 서울시의 동일한 의지에도 불구하고 자치구 담당부서가 어떤 생각이냐에 따라 달라지는 경험을 할 수 있었다. 비슷하다. 옥바라지 골목의 해법은 일차적으로 도시계획적 측면에서 마련되어야 하지만, 좀더 근본적으로는 해당 부서 일부 공무원에게 부여된 ‘독점적인 권한’을 해체하는 것을 고민해야 한다. 서울시가 아무리 도시재생이니 해도 결국 현장에서 잡음이 일어나고 제대로된 성과가 나지 않는 것은 그 실행과정의 주체가 과거 뉴타운재개발에 익숙해진 행정이기 때문이다.

각종 거버넌스에 참여한 많은 민간 전문가들은 2~3년만 지나면 공무원 조직은 민간의 누구보다도 시장이나 구청장의 변화에 완벽하게 적응한다고 한다. 그래서 이를 민간의 게으름을, 다른 한편 관료 조직의 우수함을 보여주는 증거로 삼는다. 하지만 변화의 철학이 없는 기술적인 적응은 오히려 행정의 본질적인 변화를 가로 막는다. 대표적인 것이 ‘피로감’이다. 많은 시간 참여해도 실제 변화하는 것이 없다는 참여의 피로감은 대부분, 공무원 조직의 무지에 의해서가 아니라 ‘더 잘안다’고 생각하는 공무원 조직에 의해 발생한다. 참여는 ‘더 안다’는 전문성의 영역이 아니라, 간섭과 개입을 통한 갈등, 그리고 숙의와 합의가 가진 실효성 때문에 중요하다. 최소한의 합의를 전제로 한 행정은 그 과정까지 사회적 비용을 사용하지만 집행 과정의 갈등은 최소화할 수 있다.

행정에 포위된 ‘박원순의 정치’를 우려한다

공무원을 지역의 작은 영주로 만드는 권한은 지나치게 공무원의 상식과 인간성을 전제로 만들어졌다. 과거 군사독재 시기 처럼 강력한 인센티브에 상응하는 패널티를 부가할 수 있다면 가능했겠지만 지금 공직사회는, 적어도 지방행정의 공무원들은 맡고 있는 권한에 비해 신뢰할 수 있는 책임감을 찾기 힘들다. 즉, 한 명의 공무원 고시 합격생에 불과한 시민에게 지나친 권한을 부여하는 것은 시대에 떨어진다. 일례로 소위 ‘김영란 법'의 지방정부 버전으로 각광을 받았던 ‘박원순 법'의 적용 사례를 보자. 누가 봐도 부적절한 뇌물이지만 법원의 판단에 의해 직무 연관성이 ‘입증' 되지 않는 순간 도덕적 흡결따윈 의미 없어 진다. 그런 ‘입증'을 가리는 법원의 판단은 일반적인 시민이 생각하는 최소한의 도덕성을 무장해제 시킬 뿐만 아니라 해당 당사자 역시 별로 거리낌 없이 공무를 수행한다. 이것이 지금 공무원 구조이고, 관료 체계다.

정치권의 민주화에도 불구하고 권력의 집행 과정에 나아진 바가 없다면 그것의 일정 부분은 공직사회, 즉 관료 체계의 문제일 개연성이 크다. 단순한 시험 합격자인 공무원에게 법은 지나친 권한을 부여한다. 따라서 인사과정에서 주민참여 방안을 비롯해, 시민이 직접참여하는 행정평가 방안이 도입될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 이해관계가 첨예한 재개발 사업의 경우에는 각종 인허가에 대한 사후 평가를 실시할 필요가 있다. 이것이 개발독재 이후 별로 변화하지 않는 관료 체계를 바꾸는 방시이다. 그래서 지난 5월 17일 박원순 시장의 현장 방문과 거기서 한 말에 대해 곰곰히 생각했다. 개인적으론 박원순 시장의 이 분노가 ‘민주화 이후의 관료체계’에 대한 고민으로 이어졌으면 한다. 오세훈 시장 식의 현장추진단이 ‘삼청교육대’ 방식의 변형이었다면, 박원순 시장의 방식은 행정 과정의 다원성을 살리는 방식의 개혁을 기대한다.

이것이 옥바라지 골목 문제의 해결과정에서 가시적인 도시계획적 해법 외에 재개발 행정과정에 대한 개선방안이 포함되길 바라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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