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노동조합은 ‘한나라당의 언론악법은 누구를 위한 법인가?’ 연속 기획토론회를 주최한 당사자임에도 불구하고 17일에 이어 18일 열린 토론회에서도 한층 더 높은 강도로 학계, 시민사회 등으로부터 집중 포화를 맞았다.

이는 지난해 ‘대통령의 공영방송 사장 해임’이라는 해괴한 일이 벌어졌음에도 KBS 노동조합이 침묵했고, 절차와 원칙을 무시한 이사회를 통해 선임된 이병순 사장에 대해 “낙하산 사장이 아니다”라며 별 문제제기 없이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이후 이병순 체제에서 비판적 시사 프로그램이 폐지되고, 사원행동이 중징계를 받고, 뉴스와 프로그램이 공영방송의 역할을 하지 못한 채 정권을 비호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을 때도 중심에는 내부 견제 기능을 전혀 하지 못하고 있는 KBS노조가 있었다. KBS노조는 지난해 12월, 신문·대기업의 방송진출을 주요 골자로 하는 한나라당 미디어관련법 저지를 위해 언론노조가 총파업에 들어갔을 때도 내내 침묵하다 비판에 못이겨 막판에 합류했을 뿐이었다.

▲ 18일 오후 2시, 서울 여의도 KBS신관에서 ‘공영방송의 정체성 확립을 위한 올바른 방향’ 토론회가 열렸다 ⓒ곽상아

최영묵 교수 “수신료 인상만이 목적이라면, 뉴라이트와 토론하라”

18일 오후 2시, 서울 여의도 KBS신관에서 열린 ‘공영방송의 정체성 확립을 위한 올바른 방향’ 토론회에서 최영묵 성공회대 신방과 교수는 “오늘 이 자리에 오고 싶지 않았다. 지난주 친박연대가 주최한 방송법 특강에 초청됐을 때도 오늘 같진 않았다. 그 이유는 ‘친박’에 대해 호불호를 말할 수 있지만 그들이 친박이라는 사실에 대해서는 이견이 없기 때문이다. 조직 자체는 진정성이 있다. 내가 말하는 건 일관성”이라며 “KBS노조에게 ‘수신료 인상’만이 가장 큰 고민이라면, 오늘 토론회는 언개연이 아닌 뉴라이트와 함께 토론하는 것이 훨씬 효율적이었을 것”이라고 꼬집었다.

최 교수는 “KBS노조는 노동자의 권리에 대해 이야기하면서도 외부에서 보면 도대체 무엇을 하는 조직인지 알 수 없다. KBS는 진정성을 가지고 국민을 설득해가야지 ‘수신료 인상’이라는 손쉬운 방식으로 재정 안정화만 추구한다면 필패로 귀결될 수밖에 없고 끝내 붕괴의 수순을 밟을 것”이라며 “KBS가 공영방송으로서 가치를 지키기 위해 지금까지 한 것이 무엇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이것에 대한 답이 안 나오면 ‘공영방송을 우리가 지켜야 한다’는 명제가 무너진다”고 우려했다.

강혜란 한국여성민우회 미디어운동본부 소장 역시 “나도 오늘 오고 싶지 않았다. 곤혹스러운 자리다. 여러분도 비슷할 것”이라며 “우리가 보기엔 더할 수 없는 강도로 KBS에 대한 압박과 굴절이 일어나고 있는데 ‘이제는 움직이겠지’라고 기대해도, 언제나 절망만 보았다. 지금 KBS에 대해 시민사회에서 얼마나 참담해하고 있는지 잘 느껴보셨으면 좋겠다”며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졌다.

“여러분, 편안하신가요? 지금 뉴스를 보시면서 견딜 만하신가요? 시사교양프로그램 연성아이템으로 다 넘어가고 있는데, 그래도 이 직장이 지켜지면, 견딜 만하신건가요?”

양문석 언론연대 총장은 “한나라당의 공영방송법은 지난 20년간 쌓아온 모든 것들을 한번에 무너뜨릴 수 있다. 예산을 정부 여당이 추천·선임하는 공영방송위원회가 승인하고 국회에 보고하도록 해 정부 여당이 공영방송 KBS를 실질적으로 지배할 수 있다. 너무 수신료에만 목매지 마라. 일본의 NHK가 왜 정치 사회적 의제를 다룰 수 없는지 모르느냐”고 되물으며 “이런 상태로 국민들한테 사랑을 받을 수 있겠나. 오히려 수신료 제도 자체가 무너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한두번 집회 나가는 걸로 끝낼 것인가” “‘수신료 거부’ 자주 거론돼 두렵다”

이같은 지적은 내부에서도 나왔다. 방청석에 있던 현상윤 KBS PD는 토론자로 참석한 최재훈 KBS노동조합 부위원장에 대해 “집권 여당이 다음주 월요일(23일)부터 미디어악법을 본격적으로 추진할 가능성이 높은데 노조는 지난번처럼 한두번 집회에 나가서 성토하는 걸로 끝낼 것인가. 지금도 빠른 게 아니다”라며 “다음주 초까지는 KBS 내에서 파업 찬반투표를 끝내야 내부 동력을 모을 수 있지 않느냐”라고 질문했다.

김호석 KBS 수신료 프로젝트팀 연구원은 “‘수신료 거부’라는 단어가 이렇게 자주 거론되는 것이 두렵다. 이 운동이 실제로 시작되면 수년 뒤 KBS는 심각한 상황을 맞을 것이다. 노조와 경영진이 외부의 지적을 굉장히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문제를 빨리 해결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 18일 오후 2시, 서울 여의도 KBS신관에서 ‘공영방송의 정체성 확립을 위한 올바른 방향’ 토론회가 열렸다 ⓒ곽상아

KBS노조 “지적·비판 겸허히 수용…투쟁방법 논의 중”

이에 대해 최재훈 KBS노조 부위원장은 곤혹스러운 표정으로 “이틀 연속 매 맞으니까 어질어질하다”며 말문을 열었다.

최 부위원장은 “오늘 참석자들은 KBS 입장이 ‘수신료 올인’에 불과하지 않느냐고 했는데, KBS 조직원들에게 수신료는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현재 KBS는 5년 연속 적자다. 좋은 프로그램을 위해 적자편성을 할 수 있다고 하지만, 적자폭이 늘어나면 조직원들의 불안이 커질 수밖에 없다”며 한나라당 공영방송법에 대해 “KBS의 독립성과 자율성에 심대한 타격을 주는 공영방송법을 결코 받아들일 수 없다”고 밝혔다.

최 부위원장은 “여러분의 지적과 비판을 겸허히 수용하고 있다. KBS노조는 재벌방송 탄생을 예고하는 한나라당의 미디어 관련법을 반드시 막는다는 입장이다. 그리고 구체적인 투쟁 방법에 대해 공영방송사수특위와 비대위에서 파업까지 염두에 두고 논의하고 있다”며 “KBS 용산참사 보도에 대해서도 심각하게 생각하고 있다. 노조도 공방위에서 국가권력의 인권침해 사안에 대해 인권적 접근을 최우선으로 하는 보도준칙을 만들자고 제안했으나 사측의 반대로 결렬됐다. 내부에서 바로잡기 위한 노력을 끊임없이 해나가겠다”고 밝혔다.

최 부위원장은 “KBS 저널리즘 회복을 위해 시민단체와의 조직적인 모니터 활동도 적극적으로 검토해서 추진하는 방향으로 하겠다”고 덧붙였다.

“3월말 되도 논의중이라고 할 것인가”

하지만 이같은 입장 표명에도 KBS노조는 “법안 통과 뒤에도 논의만 할 것인가” “이제는 결과물을 말하라” 등의 핀잔을 들어야 했다.

이남표 MBC 정책협력팀 전문연구위원은 “어제도 최재훈 부위원장은 ‘논의 중’이라고 하더니 오늘도 ‘논의 중’이라고 한다. 아마 다음주말까지 논의하고 계시지 않을까? 3월말에 법안 통과되어도 논의한다고 하실 것인가”라고 의문을 제기했다.

이어 이남표 위원은 “현 상황을 볼 때 수신료가 인상될 가능성은 없다. 정권에 의지가 없을 뿐더러 수신료를 인상한다고 하면 국민이 수신료 거부 운동에 들어갈 것이다. 용산참사 관련 <PD수첩> 보도 나왔을 때 네티즌들은 ‘KBS는 뭐 하느냐’ ‘2500원(수신료) 아까워 미치겠다’ ‘MBC 도울 방법 없느냐’고 반응했다”며 “수신료 인상 추진시 오히려 정부 여당이 그토록 싫어하는 대규모 촛불시위를 스스로 조직해주는 셈이 될 것”이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최영묵 교수는 “미디어 악법을 저지하기 위해 KBS노동조합은 구체적으로 어떻게 할 것인지 분명하게 말하라. 아니면 다른 방법으로 KBS를 지키기 위한 방안을 제시하라”고 촉구했다.

양문석 총장은 “싸움방법을 논의 중이라고 얘기했는데 이제는 결과물들을 이야기하라. 이번주 시점 놓치면 KBS노조는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널 수 있다. 이미 침탈이 구체적으로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며 “노조 집행부끼리만 이야기하지 말고 KBS 조합원들과 전체적으로 논의할 수 있는 자리를 빨리 만들라”고 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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