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보훈처(처장 박승춘)가 ‘임을 위한 행진곡’을 5·18민주화운동 기념식의 기념곡으로 지정하지 않기로 했다. 보훈처는 16일 입장자료를 내고 오는 18일 치러지는 제 36주년 기념식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을 공식식순에 포함하고, 합창단의 합창에 따라 원하는 사람들이 따라부를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2016년 현재까지도 ‘임을 위한 행진곡’ 기념곡 지정·제창과 관련하여 찬성과 반대 논란이 해소되지 않고 있어 정부입장을 정하는 것이 어려운 상황”이라는 것이 보훈처의 공식입장이다.

‘임을 위한 행진곡’은 5·18 민주화운동이 정부기념일로 제정된 1997년부터 2008년까지 기념식에서 ‘제창’ 돼 왔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 들어 보수단체들이 “대한민국을 부정하는 노래를 주먹을 흔들며 부르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문제제기해 기념식에서 밀려났다. 2009년과 2010년은 본행사에서 제외돼 식전행사에서 합창으로 이 노래를 불렀고, 2011년부터는 본 행사의 식순에 포함됐으나 제창이 아닌 합창으로 불러졌다.

대다수 언론이 제창 가능성을 거론했으나 보훈처는 정반대의 결정을 내렸다. 문제는 이것이 박근혜 대통령의 의지라는 점이다. 지난 13일 우상호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등 야당 지도부는 박근혜 대통령을 만나 “‘임을 위한 행진곡’을 기념곡으로 지정해 달라”고 요청했고, 박 대통령은 “국론 분열을 일으키지 않는 차원에서 지혜를 모아 좋은 방안을 찾아보도록 국가보훈처에 지시하겠다”고 화답했다. 조선일보에 따르면, 새누리당 정진석 원내대표 또한 박승춘 보훈처장에게 “보훈처가 전향적 검토를 해달라”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중앙일보 5월 16일자 사설

이 때문에 언론은 기념곡 지정은 어렵겠지만 대통령이 협치와 소통을 중시한 만큼 과거처럼 제창으로 결정되지 않겠나 전망했다. 심지어 보수언론인 중앙일보는 기념곡 제정을 주장했다. 중앙일보는 16일자 신문에 <‘임을 위한 행진곡’ 논란 끝낼 때 됐다>라는 제목의 사설을 싣고 “(이 노래는) 80년대 민주화운동을 거치며 시민들의 가슴속에 살아 숨쉬고 있는 문화유산이요, 역사다. 이 노래에 이념적 잣대를 대거나 ‘종북’ 논란의 소재로 삼는 건 민주화정신을 욕보이는 것 아닌가. 지난 4·13 총선에서 나타났듯 통합과 협치는 우리가 가야 할 길이다. 정부는 공식 기념곡 지정과 제창을 통해 소모적인 논쟁을 끝내야 한다”고 촉구했다.

박근혜 대통령의 결정은 그가 여전히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 여부를 정치적인 문제로 인식하고 있다는 것을 드러낸다. 또 보수층의 여론을 감안한 정치적 결정으로 해석할 수 있다. 그러나 박 대통령이 한걸음도 내딛지 못한 탓에 국론은 더 분열될 지경이다. 박 대통령의 정치적 결정은 새누리당마저 통합하지 못했다. 정진석 원내대표는 보훈처 결정 직후 “재고를 요청키로” 한다는 반응을 보였다. 여소야대의 총선 결과를 받아들고 소통과 협치를 하겠다고 나선 대통령의 첫 작품이 이렇다. 박 대통령은 협치(協治, 협력의 정치)를 말하고 협치(狹治, 좁은 정치)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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