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코패스 열풍이다. 경기 서남부 지역 연쇄살인사건 피의자 강아무개씨가 범죄에 대해 죄의식을 느끼지 못하는 사이코패스( psychopath 반사회적 인격장애) 진단을 받은 직후, 언론들은 집중적으로 사이코패스에 대해 보도하기 시작했다.

과거 유영철, 정남규 사건을 다시 꺼내면서까지 사이코패스의 위험성을 강조하고 나선 언론때문인지, 사람들도 서서히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이후 인터넷에서는 사이코패스 자가진단, 동영상 테스트 등이 네티즌들의 큰 반응을 얻었으며, 심지어 KBS 2TV <꽃보다남자>를 패러디한 ‘꽃남사이코패스’ 동영상까지 만들어졌다.

피의자 강아무개씨로부터 시작된 사이코패스 논란은 그 자체로 그치지 않고 언론, 나아가 정치권까지 이어졌다. 서로를 ‘사이코패스’에 비유하며 비판적 시선을 드러내는가 하면, 이를 다시 반박하고 나서는 등 사이코패스 비난 양상이 도드라졌다. 이명박 대통령과 정부도 사이코패스 논쟁에 있어선 예외가 아니었다.

▲ 중앙일보 2월3일치 30면(오피니언).
◇ 언론의 사이코패스 활용법

언론은 사건 초기만 해도 강씨의 범죄 행적을 소개하며 사이코패스의 의미, 성격, 재발 방지 대책 등 사건과 관련된 범위 내에서 보도를 했다. 언론 가운데 이에 한발 더 나아가 사이코패스 논쟁을 사람에 빗대 ‘비난 열풍’을 처음 일으킨 것은 <중앙일보>였다.

중앙일보 이훈범 기자는 지난3일 ‘당신 곁에도 사이코패스가 있다’를 통해 공기업 경영진, 공기업 노조 간부 등을 언급한 뒤 “억대 연봉을 위협할 경쟁자를 막겠다고 진입 장벽 사수 불법 파업을 벌이는 방송사 노조 간부들, 모두 사이코패스 감정을 받아 봐야 할 대상”이라고 비난했다.

그는 “이들 반사회적 인격 소유자들은 사회 곳곳에 똬리를 틀고 앉아 오늘도 흉기 대신 달콤한 거짓말과 속임수를 무기로 묵묵히 일하는 동료들을 절벽으로 밀어내고 있는 것”이라며 “그들의 달콤한 유혹에 말려들지 말아야 한다. 자칫 조직 전체, 나라 전체가 결딴날 수 있어 하는 말”이라고 강조했다.

중앙일보는 사이코패스 감정을 받아야 할 ‘방송사 노조 간부’라고만 명시했지만, 이는 언론노조 MBC본부(본부장 박성제)를 지칭한 것이었다. 이에 박성제 본부장은 지난 3일 <미디어오늘>에 기고한 ‘어느 사이코패스 우두머리의 변명’을 통해 “기사나 칼럼을 쓸 때에도 상식과 정도라는 게 있는 법”이라며 “누가 봐도 악의적인 표현과 논리비약을 동원해 동료 언론인들을 ‘반사회적 인격장애자’로 매도하는 것은 결코 상식과 정도가 아닐 것”이라고 일갈했다. 그러나 박 본부장은 중앙일보에 대해 ‘사이코패스’라는 표현을 쓰지는 않는 ‘놀라운’ 자제력을 보였다.

한겨레도 동참하고 나섰다.

지난 11일 한겨레 곽병찬 논설위원은 칼럼 ‘사이코패스의 연인’을 통해 용산 참사와 관련한 이명박 정권 태도를 비판한 뒤, 이명박 정권과 사이코패스의 닮은 점을 언급했다.

“사이코패스 강아무개 덕분에 이 정권은 한숨을 돌렸다. 그러나 좋아할 일만은 아니었다. 위선과 폭력성 등 이 정권의 본성을 성찰하는 데 그만큼 기여한 자도 없다. 강씨가 국민에게 학습시킨 사이코패스의 특징과 이 정부의 닮은 점은 이렇다. …사이코패스는 잘하면 피할 수 있다. 그러나 사이코패스 권력은 안 된다. 언제나 엿듣고 엿보고 뒤따르고, 공갈·협박·강압으로 영혼과 육체를 파괴한다. 혼자로는 막지 못한다. 그가 두려워하는 건 연대다.”

이 글이 올라간 직후 일부 언론에서 “대통령을 사이코패스에 빗댔다”고 지적하며 “논란이 일고 있다”고 보도했으나, 정작 해당 기사에 달린 80개의 댓글을 보면 “속이 시원하다”는 의견이 더욱 많다.

▲ 한겨레 2월11일치 27면(오피니언).
◇ 정치인의 사이코패스 활용법

정치인 가운데 가장 먼저 사이코패스를 언급하고 나선 사람은 전여옥 한나라당 의원이다.

▲ 전여옥 한나라당 의원. ⓒ여의도통신
그는 지난달 30일 자신의 홈페이지에 올린 글에서 민주당 의원들을 “신성한 민의의 전당인 국회에 해머질을 하고 동료의원의 명패를 내던지고 그것도 모자라 짓밟기까지 하는 사이코패스 정치인들”이라며 “무엇이 옳은 것인지 잘 알면서도 자신이 하는 행동과는 너무나 큰 차이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사이코패스라고 불려도 할 말 없을 것”이라고 비난했다.

이에 민주당은 이날 ‘문하우젠증후군까지 겹친 사이코패스성 전여옥 의원’이라는 제목의 논평을 내어 즉각 반박했다. 문하우젠증후군은 부모나 간병인 등이 주변 사람의 이목을 끌기 위해 자신이 돌보고 있는 간병 대상에게 상처를 입히는 정신질환이다.

민주당은 “국민에게 고통을 가하면서도 뻔뻔스럽게 국익과 경제를 이야기하는 한나라당과 전여옥 의원이야말로 사이코패스 아닌가”라면서 “이목을 끌기 위해서라면 자해와 공격을 마다않는 걸 보면 전여옥 의원은 ‘문하우젠 증후군’도 의심된다”고 강하게 비난했다.

장세환 민주당 의원도 이명박 정권을 ‘사이코패스 정권’으로 규정하며 열풍에 동참했다.

그는 지난 11일 국회에서 진행된 용산참사 긴급 현안질문을 통해 “사이코패스 정권은 국민에게 고통과 희생만 강요할 뿐”이라며 “당장 정상정권으로 돌려놓지 않으면 급기야 대통령마저 사이코패스 대통령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고 여러 언론이 보도했다.

▲ 장세환 민주당 의원. ⓒ여의도통신
‘사이코패스 열풍’을 이용한 것은 정부도 마찬가지였다. 더 정확하게 하자면, 용산 참사에 대한 비판 여론을 잠재우기 위해 사이코패스 열풍을 몰고 온 강씨를 활용하도록 지시했다는 것이다.

김유정 민주당 의원은 지난 11일 국회에서 “청와대가 용산 참사에 대한 비판여론을 막기 위해 연쇄살인 사건을 활용할 것을 경찰에 지시했다”며 “청와대 국민소통비서실에서 경찰청 홍보 담당관실로 보낸 문건이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오마이뉴스>도 김 의원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이메일 문건을 공개했다.

사이코패스 열풍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현재로서는 단순하게 사이코패스 판정을 받은 강씨로 인해 시작된 열풍이라고 할 수 있는 범위는 이미 지난 듯하다. 사이코패스 열풍은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무수히 일어나고 있는 2009년의 비상식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가 아닐까 싶다.

중앙일보는 MBC노조를 향해 비난을 퍼부으면서 “그들의 달콤한 유혹에 말려들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고, 전여옥 의원은 민주당 의원들을 향해 “무엇이 옳은 것인지 잘 알면서도 자신이 하는 행동과는 너무나 큰 차이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사이코패스’”라고 강조했다.

사이코패스 열풍에 기대어 무조건적으로 상대를 비난하는 것은 되레 역효과를 불러일으킨다는 것을 이들은 모르는 것일까? 진짜 사이코패스를 걱정하는 것인지, 아니면 그들의 속마음을 감춘 채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꼼수를 부리고 있는 것은 아닌지, 그간 그들의 행보를 보았을 때 너무 속이 훤하게 드러나는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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