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일 아침, 새로 이사간 집으로 인터넷-케이블 설치기사가 와서 이것저것 TV를 만지작거리는데 YTN에서 정부의 재개발 제도개선 대책을 발표하는 장면이 방송되고 있었다. 열심히 듣고 있다가 케이블 설치기사와 동시에 ‘핏’하고 웃었다. 상가세입자의 휴업보상비 지급기준을 3개월에서 4개월로 확대한다는 대목에서였다. 나머지 대책 안에도 ‘대책’ 없는 단어들이 가득했다. 정부의 재개발 제도개선이 과연 실효성이 있을까 싶었다.

정부의 재개발 제도개선 대책에서 세입자를 위한 정책은 총 5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먼저 상가세입자들을 위한 정책으로 ▲휴업보상비 지급기준을 기존의 3개월에서 4개월로 확대 ▲조합원에게 분양하고 남는 재개발 상가 우선분양권 제공이 들어 있다. 또한 주거세입자들을 위한 정책으로는 ▲가급적 순환개발 방식 추진 ▲이주할 주거지를 확보한 이후 재개발 ▲SH공사는 임대주택 중심으로 사업을 추진해 세입자들에게 우선 공급하는 것 등이다.

▲ 2월 10일자 문화일보 10면.
‘실효성 0%’ ‘세입자 놀리기 100%’. 용산참사로 인해 세입자 문제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이 높아진 과정에서 나온 개선 대책이 이 수준이다.

먼저 휴업 보상비를 ‘3개월’ 지급에서 ‘4개월’ 지급으로 확대한단다. 한 달 보상을 늘린다고 해서 재개발로 인한 세입자들의 피해를 보상할 수 있나? 석 달 뒤에 죽으라던 세입자들에게 한 달만 더 살려주겠다고 하는 것 그 이상 이하도 아니다. 정부는 오히려 휴업 보상비를 실질적으로 책정할 수 있는 장치들이 필요하지는 않은지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정부의 재개발 개선안 중 휴업 보상비는 ‘달랑’ 1개월 확대하겠다는 거였다.

세입자들에게 정부는 ‘남는’ 재개발 상가 우선분양권을 제공한다고 했다. 어디까지나 조합원에게 분양하고 ‘남는’ 것에 한해서다. 그러나 전문가들의 말은 ‘남지 않는다’고 한다. 도심의 경우 조합원들에게도 우선분양권이 다 돌아가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설사’ 남는다고 치자. 남는다고 해서 세입자들이 들어갈 수 있을까? 그렇지도 않다. 최예륜 빈곤사회연대 사무처장은 “가질 수도 없는 분양권 딱지를 주겠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분양권이 주어지더라도 땅값과 점포가격이 올라가기 때문에 재입주할 수 있는 조건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주거세입자에 대해서 요약하면 ‘가급적’이다. 재개발 이전에 세입자 등이 이주할 주거지를 먼저 확보하도록 하고 이를 위해 SH공사는 임대주택을 중심으로 사업을 추진해 세입자들에게 우선 공급하며, 주거세입자 보호를 위해 ‘가급적’이면 순환개발 방식을 취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가급적’이란 말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형편이 되지 않으면 그렇게 하지 않아도 무방하다는 것이다. 여기저기 다 재개발로 묶여 있는 상황에서 ‘가급적’ 형편이 되는 곳이 얼마나 될까. 그것도 훨씬 더 많은 비용을 치르면서 말이다.

민주노동당은 이러한 주거세입자 정책에 대해 신뢰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민주노동당은 “(정부정책은) 해당 지역이 본격적으로 공사에 들어가기 전에 세입자들을 이주시킬 임시수용시설로서 지역 내외에 임대아파트를 우선 확보하는 방안”이라며 “사실 이러한 조항은 현재 도정법 36조에도 명시되어 있는 것으로 그동안 건설사와 행정관청이 법을 지키지 않았던 것이 문제”라는 것이다. 도대체 법을 살펴보기나 한 것인지. 이미 있는 법은 ‘가급적’ 끼워 팔지 않았으면 한다.

이번 정부정책안에는 ‘권리금’ 문제는 포함되지 못했다. ‘용산 화재사고 관련 재개발 추진 경과’ 중 세입자보상 현황 및 갈등의 원인으로 “상가 세입자는 기 투입한 권리금 및 시설투자비를 인정받을 수 없고, 대체 업종을 구하기 힘든 만큼 재개발에 반대”하고 있다는 것을 명시했음에도 불구하고 재개발 개선 대책에는 전혀 포함되지 않았다. 이번 대책안이 면피용이었다는 것을 스스로 드러낸 셈이다. 갈등 원인에 대한 대책을 내놓지 못했으니 말이다.

권리금과 관련해서 최예륜 사무처장은 “권리금이 인정되어야 한다는 판례가 있었다”며 “이러한 권리금에 대한 대책 없이 마치 대안을 제시한 것처럼 정부가 이야기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또한 그는 정부에서 제시한 분쟁조정위원회 역시 “아직도 전철연이나 세입자대책위원회 등을 대화상대로 인정하지 않으면서 분쟁조정위원회를 언급하는 태도 자체가 문제”라며 “전반적으로 용산사태를 무마하기 위해 급하게 포장해서 내놓은 것으로밖에는 보이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정부가 재개발 개선 대책을 밝힌 것은 앞으로 용산사태가 발생하지 않도록 하겠다는 의지였다. 그러나 그 대책이란 것은 휴업보상비 ‘1개월’만 연장해줘도 되고, 우선 분양권 ‘남는’ 것은 주어도 되고, ‘가급적’이면 순환개발방식의 택해 가수용 주택도 해주고였다. 이런 ‘대책’없는 단어들의 등장은 뭐라 설명 가능한지. 과연 이 재개발 개선 대책을 보고 세입자들은 무어라고 할까. ‘되고’ or ‘안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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