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엄 촘스키의 대담집 ‘촘스키, 변화의 길목에서 미국을 말하다’를 읽었습니다. 미국 책 제목은 ‘What we say goes’인데 “우리는 한다면 한다.”,랍니다. 조지 부시 1세가 대통령이던 1991년 2월 당시 첫 걸프전이 끝날 무렵 새로운 세계질서의 원칙으로 내세웠답니다.

▲ 노엄 촘스키의 대담집 ‘촘스키, 변화의 길목에서 미국을 말하다’책 표지.

무시무시하지요? 이 책은 미국이 세계 전역에서 얼마나 많이 얼마나 심하게 깡패짓을 하고 있는지를 생생하게 일러줍니다. 아울러 미국에서 어떤 방식으로 민주주의가 제대로 되지 않고 있는지도 보여줍니다.

물론 미디어들에 대한 언급도 곳곳에 있는데, 어떤 방식으로 사실(또는 진실)이 드러나지 않도록 하는지를 일러줍니다. 제가 미국이 아니고 엄청나게 떨어진 대한민국 한 귀퉁이 경남에서 기자 노릇을 할 뿐이지만, 촘스키의 따끔한 지적에 저는 내내 불편했습니다.

미국뿐 아니라 우리나라 매체들도 늘 겪는 문제이고, 우리 기자들이 일상으로 겪는 국면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많은 부분 기자 개인에게만 책임을 묻기는 어려운 것이었습니다. 한편으로는 우리 사회 또는 보도 매체 전체의 문제라 할 수 있는 것들입니다.

흥밋거리만 좇는 풍토가 우리나라에만 있는 줄 알았는데 아니더군요. 그런 보도로 말미암아 정작 중요한 다른 무엇은 가려지고 만다는 것도 똑같았습니다. 그런 보기가 여기 있습니다. 이런 태도가 결국 지배집단의 이익에만 보탬을 주지요.

77쪽입니다. “(차베스는 유엔 총회 연설에서) 국제관계에서의 무력 사용이나 무력을 통한 협박에 대해 제약을 가해야 하는 중요성을 되풀이해서 강조했습니다. 이와 관련해 무력 협박, 도발, 일방적 약속 위반 등을 다룰 유엔 고위급 조정위원회를 설치하자고 제안했습니다. 그의 연설은 진지한 것이었어요. 그러나 내가 아는 한 거의 보도되지 않았습니다.”

반면 79쪽에는 무엇이 많이 보도됐는지를 다뤘습니다. “부시를 ‘악마’라 부르고 ‘유황 독소’라 비난했던 최근의 연설에 대해서는 그리 건설적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 차베스의 최근 연설에 관한 논란에서 내용에 대한 논의는 모두 조직적으로 누락되었습니다. 그저 말꼬투리에 대해서만 난리를 치고 있어요. ……<뉴욕 타임스>의 뉴스 해설이라는 것은 고작 가십이나 다루고, 연설을 조롱하는 쓰레기로 가득차 있어요.”

우리가, ‘여겨진다’거나 ‘보인다’거나 그리고 심지어는 ‘보아진다’는 따위 문법도 맞지 않는 말글을 쓰는 데 대해서도 똑같이 적용될 꼬집음도 있었습니다. 122쪽입니다. “수동태 문장으로 쓰는 것은 언론의 전형적인 수법입니다. 언론은 ‘미국이 사람들을 죽였다’는 말 대신에 ‘민간인이 사살되었다’고 씁니다. 또 ‘미국이 그들을 살해했다. 미국이 그들을 고문했다’는 말 대신 ‘그들이 죽었다’라고 하죠.”

이른바 ‘국익’에 매이거나 또는 어떤 편향에 따른 글쓰기를 꼬집는 부분도 있었습니다. 이 부분은 논의가 좀더 필요할 듯하지만, 공사(公私)를 불문하고 이런 현상을 찾아내어 짚어볼 필요는 충분하겠다 싶습니다.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자기 또는 자기가 포함된 집단에 불리하다 싶으면 축소하는 그런 경향 말입니다.

“1970년 12월에 있었던 닉슨과 키신저의 폭격 명령이 그러한 예가 될 것입니다. 이들은 ‘날아다니는 것은 무엇이든 이용해서 움직이는 모든 것에 폭격을 감행’하게 함으로써 ‘캄보디아에서 무차별 대규모 폭격 작전을 명령’했어요. 독재자 밀로세비치에 관한 세르비아의 아카이브를 뒤지다가 이러한 구절을 발견했다면, 아마도 신문에 헤드라인으로 보도되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뉴욕타임스>에는 아무런 해설 없이 간단히 학살이 있었다고만 보도되었어요.”(165쪽)

▲ 노엄 촘스키의 대담집 ‘촘스키, 변화의 길목에서 미국을 말하다’165쪽.

행정기관에 치우친 보도 관행도 도마에 올랐습니다. 그런 보도 관행이 반민주적이라는 얘기도 빠지지 않았습니다. 예산 편성이 실제로는 국민 대다수가 바라는 방향과 완전히 어긋나 있는데도 미디어들이 다루지 않는다는 얘기였습니다.

“미국국제문제조사연구소는 미국의 예산이 어떠해야 하는가에 관한 광범위한 여론조사를 했어요. 결과는 실제 예산안과 정반대로 나타났어요. 연방자금이 높아진 부문에서 절대 다수는 오히려 낮아져야 한다고 답했습니다. 전반적으로 군사비 지출의 증액,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 쏟아 붓는 재정 지출의 증액에도 반대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부분에 대한 지출은 지금까지도 증가일로에 있어요. 이와는 반대로 예산을 삭감한 사회지출, 의료보장, 재생 에너지, 군인연금, 유엔분담금 등에 대해서 일반 여론은 지출이 늘어나기를 원했어요.

나는 친구에게 부탁해 몇 개의 신문들이 이 문제를 보도했는지 조사하도록 했어요. 그런데 단 하나의 신문도 이 문제를 보도하지 않았더군요. 아시다시피 이 문제는 너무나 중요한 뉴스거리임에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대다수 국민은 정부의 정책을 근본적으로 반대하고 있어요. 민주주의 사회에서 이것만큼 중요한 뉴스가 또 있을까요. 이러한 상황이 바로 미국의 민주주의 상태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어요.”(90쪽)

촘스키 책을 읽으면서, 제 몸과 마음에 배여 있고 그래서 제도 마찬가지 자유롭지 못한 그런 관행이나 무의식 또는 선입견이 눈에 띄어 많이 아팠습니다. 머리를 이리저리 굴려 어떻게 하면 그런 데서 벗어날 수 있을지 궁리해 봤지만 뾰족한 수가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물론, 이런 생각도 들기는 했습니다. 잘 나간다는 미국에서도 저런 정도밖에 안 되는데, 언론 자유라든지 언론 전통이 우리보다 낫다는 미국 매체도 저리 제대로 못하는데 하는, 식민지 3류 인생 같은 덜 떨어진 위안 같잖은 위안이 말입니다. 이래저래 착잡했습니다.

저는 1963년 8월 경남 창녕에서 났습니다. 함양과 창녕과 부산과 대구와 서울을 돌며 자랐고 1986년 경남 마산과 창원에 발 붙였습니다. 경남도민일보에는 1999년 들어왔습니다. 대학 다닐 때는 학생운동을 했고 졸업한 뒤에는 노동조합운동과 진보정당운동을 일삼아 했습니다. 2007년 1월부터 2008년 12월 9일까지 전국언론노동조합 경남도민일보지부 지부장을 했으며 2009년 1월 기자 직분으로 돌아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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