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CEO들 취향도 참 독특하다. 경영전문지 월간 <현대경영>이 “국내 기업체 CEO 151명을 대상으로 ‘CEO명품 브랜드’를 조사한 결과 종합 일간지 부문에서 조선일보가 46.3%를 기록해 ‘CEO들이 읽는 일등신문’으로 선정됐다”는 것이 오늘자 조선일보 2면 기사다. CEO들도 읽는 일등신문 나도 한번 잘 읽어봤는데… 난 희한한 기사들을 봤을 뿐이고.

▲ 2월 6일자 조선일보 2면 기사
첫 번째 희한한 기사. “투쟁만 하면 정당이 아니라 총학생회”

조선일보의 이 기사에는 희망제작소 상임이사 박원순 변호사가 민주당의 민주정책연구원이 마련한 정책토론회에서 발언한 내용들이 다수 채워졌다. 그 중 눈에 띄는 것은 “야당이 늘 반대만 하면 국민은 피곤하다”는 박 변호사의 말이다. 박 변호사가 이런 말을? 믿을 수가 없었다. 나 그분 좀 안다. 내가 알고 있는 박원순 변호사는 절대 그렇게‘만’ 이야기할 분이 아니다.

아니나 다를까? 이상해서 다른 신문을 펼쳤더니 내용에 맥락이 있었다. 박원순 변호사 왈, “야당으로서 어쩔 수 없이 반대해야 할 일이 많겠지만 반대하는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며 “시위를 하더라도 창의적인 방법이 세상을 변화시킨다”였다. 이를 알려준 신문은 다름 아닌 <동아일보>다. 물론 동아일보 역시 제목은 “야당이 반대만 하면 국민 피곤”이지만.

▲ 2월 6일자 조선일보 5면 기사
동아일보를 통해 나타난 박 변호사는 “민주당 의원들이 내일부터 승용차를 버리고 한 달만 지하철을 타면서 국민과 소통하면 다양한 정책이 나오고 선거운동이 절로 될 것”이라며 “사람을 감동시키는 것은 큰 정치가 아니라 작은 정치”라고 강조했다고 한다. 이를 <한겨레>에서는 같은 토론회를 두고 “민주당은 현장으로 가라”라는 제목을 통해 “실질적인 정책 아이디어는 현장의 시민들이 가장 많이 가지고 있다”는 박 변호사의 말을 인용했다.

박 변호사의 말은 구구절절 감동 그 자체였다. 그의 강연을 듣고 김효석 민주당 정책연구원장은 “정신이 번쩍 든다”며 “투쟁만 하면 정당이 아니라 대학 총학생회나 다름없다”고 동조했다고 동아일보는 전했다. 그러나 조선일보는 김효석 원장의 “투쟁만 하면 정당이 아니라 대학 총학생회”라는 말만 인용해, 민주당 내에서도 자성의 목소리들이 있다고만 소개했다.

두 번째 희한한 기사. “물 뿌리던 용역, 진압 당시엔 철수”

용산 참사에 대해서 조선일보는 그다지 열심히 다루는 편이 아니었다. 그러나 오늘 조선일보는 이 사건에 성을 다했다. 그런데 이건 뭐 기사가 아니라 검찰 대변인 수준이다.

기사의 골자는 ‘이명박 정권 용산 철거민 살인진압 범국민대책위원회(이하 범대위)’가 ‘8대 의혹’을 발표하고 검찰이 이에 반박하는 등 편파수사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기사 내용은 대부분 ‘범대위의 A의혹에 대해서 검찰은 B라고 답했다’이다. 친절히 표로 정리까지 해주셨다.

▲ 2월 6일자 조선일보 8면 기사
그 표에는 이런 내용이 담겨있다. “변사체는 유족 동의 없이 부검할 수 있다(유족 동의 없이 이뤄진 부검에 대해)”. 그들이 변사체라고 주장했던 이들은 충분히 누구인지 확인이 가능했다. 망루에 있었던 대상이 분명하고 이는 몇 가지 절차만으로 알 수 있는 정보였다. 범대위의 8대 의혹에는 분명 “고 이상림씨의 유품에는 본인신원이 확인되는 공문이 불에 그슬린 채로 발견됐다”고 했다. 그러나 조선일보는 이에 대한 한마디의 언급도 없이 검찰의 입장만을 대변했다.

또한 “건물이 울퉁불퉁해 매트리스를 깔기 힘들었다(안전 장비 없이 진압한 이유)”. 웃으라는 건지. “현장에 가보기나 한 것인지, 가보지 않았으면 말을 하지 마세요.” 매트리스를 깔 수 없을 정도로 울퉁불퉁한 곳이 어딘지 한번 시원하게 이야기나 들어봤으면 좋겠다.

검찰은 김석기 경찰청장 내정자를 소환하지 않은 이유를 “진압작전을 실제로 지휘한 단서가 없다”고 했다고 밝혔지만 이에 비해 <경향신문>은 3면 기사에서 “경찰특공대 투입 당시 김석기 서울경찰청장의 무전기 청취 등 작전 지휘 여부도 논란이 되고 있다”며 “경찰은 검찰의 서면질의 답변서에서 ‘진압작전 당시 집무실에 무전기가 있었지만 켜놓지는 않았다’고 밝혔다”면서 ‘직무유기’논란이 되고 있다고 전했다.

세 번째 희한한 기사. “민노총 ‘현대차 파업’ 수출”

조선일보는 오늘 6일자 1면 하단에 “민노총 ‘현대차 파업’ 수출”이라는 기사를 실었다. 난 또 민주노총에서 ‘현대차 파업’을 널리 해외에 알리는 작업을 하는 줄로 착각했다. 그러나 조선일보 내용은? “민주노총 금속노조가 현대 및 기아차 국내공장과 해외공장 노조 및 전미자동차노조(UAW)와의 연대기구를 추진한다”였다.

▲ 2월 6일자 조선일보 1면 기사
민주노총이 다음달에 ‘자동차산업 글로벌 노동 네트워크 구축을 위한 국제 네트워크회의’를 연다고 밝혔으며 “현대·기아차의 해외진출이 국제적인 노노 경쟁을 유발, 근로자 처우가 갈수록 악화되고 있다”며 “현대 기아차 경영진에 국내노조가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해서는 국내노조가 해외 공장에 직접 개입할 필요가 있다”는 노조 관계자의 말을 인용했다.

얼마 전 세계경제포럼 ‘다보스 포럼’이 열렸다. 이 포럼은 세계 각국의 정·관·재계 인사들이 모여 정보를 교환하는 행사다. 그리고 조선일보는 지난달 16일자 신문에 한승수 총리도 참석한다는 기사를 실었다. 다보스포럼과 민주노총의 연대기구 추진을 위한 네트워크회의가 무엇이 다른가. 한승수 총리는 노동탄압을 해외에 수출한 건가?

네 번째 희한한 사설. “세계 ‘줄기세포 전쟁’에서 대한민국 살아남아야”

조선일보는 이 사설에서 ‘줄기세포 전쟁’, ‘치열’, ‘특허 빼앗기고 나면 그때까지의 연구는 물거품’이라며 특허를 위한 집념이 대단히 커 보인다. 마치 줄기세포를 통한 특허만이 우리나라 생명공학을 일으킬 수 있다는 듯하다.

▲ 2월 6일자 조선일보 사설
그러나 배아복제와 관련된 ‘윤리’ 논쟁은 여전히 진행 중에 있다. 그리고 황우석 박사는 그 ‘윤리’를 저버린 사람이기에 국민들의 우려는 더 크다. 생명윤리위가 밝힌 ‘윤리적 절차상의 미비점’ 역시 ▲난자 증여자들로부터 ‘연구목적으로만 난자를 제공한다’는 동의서를 다시 받으라는 것 ▲난자 1천개로 복제배아 줄기세포 5개를 확립하는 것인데 사용 난자수를 줄일 필요가 있다는 것 ▲병원 내에 설치한 ‘기관생명윤리심의위원회’에 윤리계를 대표하는 인물들이 참여하도록 하라는 것 등이다.

사설에서 가장 어이없는 대목은 “복제 줄기세포를 여러 장기 세포로 분화시킬 수 있다면 병들거나 손상된 장기를 기계부품처럼 바꿔 끼우는 게 가능하다”이다. 조선일보에게도 인간은 부품을 갈아끼울 수 있는 ‘기계’인가?

이제 알겠다. CEO들은 단지 희한한 기사 천국인 조선일보를 사랑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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