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일 오전, 한 농구전문 매체 기사가 발행된 지 얼마 되지 않아 삭제되는 해프닝이 빚어졌다.

한 여자프로농구 구단 소속의 신예 선수 몇 명이 구단에 은퇴하겠다는 의사를 전달해 구단 측에서 난감해 하고 있다는 내용의 보도였다. 그런데 발행된 지 얼마 되지 않아 해당 기사는 포털 사이트는 물론 해당 매체의 홈페이지에서도 볼 수 없게 됐다.

문제의 보도에 거론된 선수들은 모두 25세 이하의 젊은 선수들로, 구단에서 다가오는 2016-2017 시즌 요긴하게 활용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를 걸고 있는 선수들이었다. 상식적으로 은퇴를 결정할 이유가 전혀 없어 보이는 선수들이 구단 측에 농구를 그만 두겠다는 입장을 전달한 셈이다.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 해당 구단의 관계자에게 전화를 걸어 사정을 물어 봤다.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해당 구단 관계자로부터 돌아온 대답은 예상에서 전혀 벗어나지 않았다.

여자프로농구 춘천 우리은행 선수들 (연합뉴스 자료사진)

국내 여자프로농구는 3월 중하순에 시즌을 마치면 짧게는 4주 길게는 8주 정도의 휴가를 선수들에게 부여한 뒤 다시 팀으로 소집해 새 시즌에 대비한다. 이맘 때 쯤이 되면 구단별로 비교적 젊은 나이에 팀을 떠나는 선수들을 여럿 볼 수 있다.

구단과의 계약 기간 중에 있고, 자유계약선수(FA) 신분도 아닌 상황이라면 이런 선수들의 신분은 ‘임의탈퇴선수’가 되는데 부상 또는 질병으로 더 이상 신체적으로 농구를 할 수 없어 팀을 떠나는 선수도 있지만 개인적인 심경의 변화로 팀을 떠나는 선수들이 적지 않다.

이렇게 팀을 떠난 선수들은 아예 농구선수가 아닌 다른 직업에 도전, 조기에 제2의 인생설계에 도전하는 경우도 있지만, 일부 선수의 경우는 훈련량이나 경기수가 상대적으로 적은 아마추어 실업팀이나 대학팀에서 뛰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그런데 그렇게 제2의 인생에 도전하거나 현재와 다른 농구인생을 걷고자 하는 결심을 보통 시즌이 끝난 후 휴가기간에 하는 경우가 많고, 그러다 보니 새 시즌에 대비한 팀훈련 합류에 즈음해 구단에 임의탈퇴 의사를 밝히는 선수가 많다는 것이 농구계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여자프로농구 KB스타즈 선수들 (연합뉴스 자료사진)

특히 새로운 시즌에 대비해 엄청난 양의 훈련을 소화하지만 정작 시즌이 개막하면 1군 경기에 뛸 수 있는 기회가 제한적인 어린 선수들의 경우 이런저런 유혹에 마음이 약해질 수밖에 없다는 것.

언젠가 WKBL 구단에서 활약하고 있던 스타플레이어 출신 여성 코치에게 이런 현상이 벌어지는 상황에 대해 물었다. 그때 돌아온 대답은 “우리 때도 그랬어요”였다. 시즌만 끝나면 상당수의 선수들이 농구를 그만 둬야겠다는 생각을 한다고 했다.

팀의 주전급 선수가 받는 억대 연봉은 아니더라도 20대 초중반 여자프로농구선수들은 같은 또래의 여성들보다 상당히 높은 수준의 연봉을 받고, 연봉 외에도 직간접적으로 구단으로 부터 받는 지원들이 만만치 않은데 그런 좋은 조건의 직장을 1년마다 한 번씩 그만둘 생각을 한다는 것.

하지만 그런 결심을 했다가도 대부분은 마음을 돌려 다시 팀 훈련에 합류하게 되는 것이 일반적이고, 설령 최종적으로 임의탈퇴를 선택했다가도 1-2년 내에 다시 돌아오는 선수도 상당수라는 것이 구단관계자나 지도자들의 전언이다.

어쨌든 여자프로농구판에서는 이와 같은 갈등의 패턴이 매년 이맘때 반복되고 있는 셈이다.

여자프로농구 KEB하나은행 선수들 (연합뉴스 자료사진)

아직 사회생활에 미숙할 수밖에 없는 어린 선수들의 입장을 생각해 보면 충분히 그와 같은 행동을 이해하고도 남음이 있지만 ‘프로’라는 타이틀과 팬들에 대한 책임을 생각한다면 분명 아쉬움이 남는 행태다.

하지만 좀 다르게 보면 이런 현상이 벌어지고 있는 원인은 해당 선수들이 프로 구단에까지 입단한 수준급 기량의 선수들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농구에 대한 애착과 재미를 느끼지 못하고 있기 때문인 것으로도 보이고, 구단이 이들에게 충분한 동기 부여를 해주고 있지 못하기 때문인 것으로도 볼 수 있을 것이다.

가뜩이나 선수층이 앏은 한국여자농구계에서 전도유망한 선수들이 매년 코트를 떠나는 일이 반복된다면 이는 한국 여자농구에 있어 크나큰 손실이며, 한국 여자농구의 미래에 짙은 암운을 드리우는 일이다.

지금이야말로 여자프로농구를 관장하는 WKBL이나 구단들, 그리고 지도자들 모두 이 문제에 대해 고민하고 해법을 찾는 노력을 기울여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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