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광주 양림동 철거민들의 눈물

“30~40년 살아온 정든 마을을 난데없이 뜨라고 하면 어떡하겠는가. 재개발 지구 한쪽에 모여 살게 해주는 것도 어렵단 말인가.”

지난 2005년 겨울, 광주 남구 양림동의 이른바 '푸른길' (녹지로 조성된 폐선부지)구간에 비닐하우스가 쳐졌다. 이른바 양림동 주거환경개선사업으로 떠밀려나간 '철거민'들이었다. 살 대책을 마련해주기 전까지 남아있겠다는 그들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남아있는 집들은 강제철거됐다. 주민들은 저항했지만 철거를 막을 수 없었다.

양림동은 광주에서 가장 먼저 근대화가 시작된 곳. 그만큼 오랜 세월을 품고 있던 곳이다. 주민들도 대부분 그곳에서 일생의 대부분을 보낸 이들. 바로 그 원주민들이 한 겨울 엄동설한에 비닐하우스를 칠 수 밖에 없었던 이유다. 추운 겨울 천막안에서 겨울을 났다.

▲ 양림동 주민들은 공사현장 옆에 천막을 치고 싸웠지만 결국 밀려날 수 밖에 없었다.ⓒ광주드림
주민들은 주거권을 걸고 싸웠다. 입주권을 받은 상태지만 보상금으로는 입주가 절대 불가능하다고 했다. 평생 살아온 곳을 떠나 다른 곳에 정착하기도 힘들다고 했다. 그래서 그들은 다른 것은 다 필요없으니 재개발 지구 한 쪽에 모여서 살 수 있도록 해달라고 요구했다. “여태 기찻길 바로 옆에 살았다. 이제야 선로가 폐쇄되고 푸른길이 깔려서 좀 살만해졌는데, 돈 몇 푼에 쫓겨 가는 신세가 됐다"고 하소연했다.

시 앞에서 시위도 해보고 시행사인 주택공사에 항의하기도 했다. 이들은 너무 억울해서 시청사 앞에서 일인시위를 했다. 자치단체의 장은 그들을 상대로 접근금지가처분신청을 냈다. 시하고는 상관없는 일이라고 했다. 보상문제는 시행사하고 알아서 해결하라고 했다.

그들은 결국 쫓겨갔다. 2002년 주거환경개선사업지구로 지정된 후 벌어진 일이다.

그리고 그들을 밀어낸 그 자리엔 이제 고층 아파트들이 서 있다. 그 아파트의 벽면엔 사람을 먼저 생각하는, 인간 중심 주거공간을 의미한다는 '휴먼시아' 라는 네 글자만이 모든 과거를 지우며 서 있다.

2. 용산참사 되풀이 될 수 밖에 없는 구조

용산 참사의 희생자들을 보면서 몇 년 전에 있었던 양림동 철거민 문제를 떠올렸다. '죽음'은 피했지만 또 다른 '생존'의 문제에 부딪혀야 했다. 용산 참사도 마찬가지다. 턱없이 낮은 보상금으로는 이미 서울의 어디를 가도 살 수가 없다는 것을 모르는 이는 없다. 게다가 금융자본의 탐욕으로 시작된 경제 위기로 자영업자들이 내몰리는 엄혹한 시절 아닌가. 그들이 망루에 오를 수 밖에 없었던 이유였을 것이다.

이 땅에서 진행됐던 수 많은 재개발 사업은 항상 원주민을 폭력적으로 밀어내는 방식으로 진행돼 왔다. 개발 이익은 정부, 관료, 건설회사에게 돌아갔지 결코 주민이나 세입자에게 돌아오지 않았다. 그 과정에서 항상 강제적인 이주에 저항하는 철거민이 있었고 저항이 있었고 자본이 있었고 용역깡패가 있었고 국가권력이 있어왔다.

생존권을 요구하는 이들을 이번 정권처럼 과격하게 진압한다면 '죽음'의 피해는 언제든지 있을 수 있다. 건설회사 CEO 출신인 대통령의 나라, 그 정권에 있어 철거민들은 주거권을 보장 받아야하는 국민이 아니라 개발에 방해가 되는 걸림돌에 다름 아니었을 것이다.

▲ 양림지구 조감도. 그 지역에는 주민들이 밀려나간 자리엔 말끔한 고층아파트들이 들어섰다. 그러나 원주민이 아파트에 입주하는 경우는 드물다.ⓒ광주드림
용산 참사의 원인은 시너와 화염병이 아니다.

고영근 토지정의시민연대 정책부장은 칼럼을 통해 용산 참사가 되풀이 될 수 밖에 없는 이유에 대해 언급한다.

“철거민 문제는 근본적으로 토지문제다. 즉, 개발에 따른 개발이익(즉, 토지불로소득)을 둘러싼 이해관계와 주거권, 생존권의 문제다. 따라서 만악(萬惡)의 근원은 토지불로소득이라고 할 수 있다. 결국 개발이라는 것은 실수요가 아닌 이상 토지 불로소득을 둘러싼 이해관계의 먹이사슬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개발이익은 절대 '없는 사람들'에게 돌아오지 않는다. 만약 이 같은 문제에 눈감고 시너와 화염병이 문제라고 주장한다면 고통을 분담하고 위기를 극복하자는 정부의 말은 거짓말이다.

용산의 참사는 다시 되풀이 될 수 있다. 생존권을 요구하는 절박한 사람들에게 국가권력은 언제든 '법'이나 '질서'를 들이대며 똑같이 나올 수 있다. 이미 생존의 벼랑으로 내몰리는 사람이 많아지고 있다. 가는 현장마다 심상치가 않다. 이주노동자나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현실도 마찬가지다. 각종 재개발 사업은 여전히 진행되고 있다. 문닫는 자영업자들이 속출하고 있다.

제2, 제3의 참사는 되풀이 될 수 있다. 그리고 그 때의 원인도, 시너와 화염병이 아니다.

지역일간지 <광주드림>에서 기자로 일하고 있습니다. 광주드림은 한때 지역 문화잡지 <전라도닷컴>과 한몸이었으나 자본의 문제로 각각의 길을 걸어가고 있습니다. 지역신문이 지역에서 살아남기 어렵다는 것을 몸으로 체감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여전히 신문법 한 조항에 집착하고 있습니다.
"정기간행물은 상대적으로 소수이거나 이익추구의 실현에 불리한 집단이나 계층의 이익을 충실하게 반영하도록 노력하여야 한다" 신문법 <제5조> 3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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