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병국 한나라당 의원이 신문·대기업의 방송 진출 허용 등을 주요 골자로 하는 미디어 관련법 추진의 진짜 배경을 밝혔다.

3일 오후 서울 광화문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한국방송학회 주최 ‘2009 방송법 개정안 대토론회’에 패널로 참석한 정 의원이 “매체 영향력 면에서 1위가 KBS(32.5%)이고 2위가 MBC(21.7%)인데, 이 둘만 합쳐도 60%에 가깝다”며 “정권이 나올 때마다 방송 장악에 대한 유혹을 가질 수밖에 없고 그래서 개편한다”고 한 것. 상대편 패널로 참석한 전병헌 민주당 의원은 이에 대해 “상당히 솔직한 표현”이라고 평가했다.

▲ 3일 오후 서울 광화문 프레스센터에서 한국방송학회 주최 ‘2009 방송법 개정안 대토론회’가 열렸다 ⓒ곽상아
이날 토론회에는 한나라당 방송법 개정안 찬성 패널로 정병국 의원 외에 황근 선문대 언론광고학부 교수, 정윤식 강원대 정치언론학부 교수, 문재완 한국외대 법대 교수가 참석했으며, 반대 패널로 전병헌 민주당 의원, 최영묵 성공회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이창현 국민대 언론정보학부 교수, 이남표 MBC 전문연구위원이 참석해 열띤 논쟁을 진행했다.

◇ “어느 시대인데 언론 장악?” VS “미네르바가 구속되는 시대”

한나라당 미디어특위 위원장인 정병국 한나라당 의원은 “IT강국의 장점을 살려내서 미디어산업의 정기를 살려내야 하는 급박한 시기에 야당과 시민단체들이 ‘재벌방송’ ‘방송장악’이라는 선정적 문구로 국민의 눈과 귀를 가리고 있다”며 “지금은 인터넷상에서 글을 쓰는 미네르바가 온라인의 경제대통령으로 불리는 시대다. 이런 시대에 어떻게 언론이 장악되고 특정 기업에 의해 좌지우지 되느냐”고 주장했다.

토론 도중 정 의원은 “2008년 언론재단이 매체 영향력을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1위 KBS(32.5%) 2위 MBC(21.7%) 3위 네이버(17.1%) 4위 다음(4.2%)이다. KBS, MBC만 보더라도 60% 가깝고, 네이버와 다음을 합치면 80% 가깝다. 정권이 나올 때마다 방송장악에 대한 유혹을 가질 수박에 없다. 그래서 개편한다”고 속내(?)를 밝히기도 했다. 방송을 장악하기 위해 법을 개정하려는 것인지, 아니면 방송장악의 유혹을 느낄 수 없도록 두 방송사의 영향력을 낮추겠다는 것인지 해석의 여지가 남지만, 적어도 인위적으로 기존 지상파 방송에 영향을 미치려는 의도가 있음을 드러낸 것이다.

▲ 왼쪽부터 정병국 의원, 황근 선문대 교수, 정윤식 강원대 교수, 문재완 한국외대 교수
정윤식 강원대 교수도 “참여의 범위와 수준을 어찌할 것인지 등에 대한 논의가 남았는데 ‘언론장악’이라며 아예 출발을 하지 못하게 하는 것은 부당하다”며 야당을 비판했다. 문재완 한국외대 교수는 “사전 소유규제는 풀되 사후규제에서 시청 점유율 정도를 넣으면 괜찮다”며 한나라당 방송법에 대해 찬성 입장을 보였다.

이에 대해 최영묵 성공회대 교수는 “지금 상황은 시작부터 정원만 공개하는 정도가 아니고 안의 창고까지 다 내주겠다는 것인데, ‘왜 시작부터 막느냐’는 지적은 별로 설득력 없다”며 “수십년간 유지해온 게임의 법칙을 바꾸려고 하면서 한두 달 논의하는 것이 과연 충분하다고 할 수 있느냐”고 지적했다. 그는 “경제개발, 고용창출, 지역발전 효과를 위해 대한민국의 모든 국립공원과 그린벨트를 어느날 갑자기 풀겠다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덧붙였다.

이남표 MBC 전문연구위원도 “방송산업 활성화로 경제를 살린다는 논리는 합당하지 않다. 방송산업 대부분의 수익은 기업광고에서 나오므로 경제가 살아나야 방송산업이 좋아지는데 논의가 뒤집혔다. 한나라당은 거대 여당으로서 경제살리기에 보다 헌신했으면 좋겠다”며 “세계 어떤 나라가 산업자본이나 재벌을 곧장 지상파에 투자하게 함으로써 글로벌 미디어 그룹을 형성하느냐”고 의문을 제기했다.

전병헌 민주당 의원은 ‘지금이 어느 시대인데 언론이 장악되느냐’는 정병국 의원의 주장에 “인터넷상 글 한편으로 미네르바, 네티즌 한사람을 구속하는 시대가 지금 시대”라며 “그런 정부, 당이 언론을 새롭게 구조개편하겠다는 것”이라고 맞섰다.

이창현 국민대 교수는 용산 참사에 관한 방송사와 보수신문의 보도태도를 비교하며 “공영방송조차 사기업화되면 용산사태에서 토건업체와 공권력을 지지하는 여론만 형성되고 생존권을 잃어가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체계적으로 배제되는 정치적 상황이 연출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 “학자인 나도 법안 모른다” VS “충분히 논의했다”

이날 토론회에서는 한나라당이 여론 수렴과 충분한 논의를 거치지 않은채 법안을 일방적으로 밀어붙이고 있어 전문가조차 미디어법안의 내용을 알 수 없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 왼쪽부터 전병헌 의원, 최영묵 성공회대 교수, 이창현 국민대 교수, 이남표 MBC 전문연구위원
전병헌 의원은 “사회적 시각에 따라 충돌이 있을 수 있는 법인데 왜 입법 절차와 과정에서 여론을 수렴하지 않고, 제대로 된 공청회도 열지 않았느냐”며 “한나라당은 바깥에 나가면 쓸데없는 논란을 불러올 것이라며, 미디어발전특위에서 회의를 한 다음 자료조차 수거해갔다. 법안이 제출될 때까지 사실상 비밀리에 논의를 진행한 것 아니냐”고 지적했다.

이남표 위원도 “당내에서 충분히 논의했다, 여론의 다양성 문제 충분히 고민하고 그 결과로 이번 법안이 나왔다고 하지만 막상 학계에서는 한번도 본 적 없다고 한다”며 “나 역시 방송쪽을 공부하는 사람인데도 작년 12월 3일 나온 법안을 다음날 처음 봤다”고 밝혔다. 2일 열린 ‘2009 방송법 개정안 대토론회’ 1라운드에서 강형철 숙명여대 정보방송학과 교수는 “나름대로 공영방송법에 대해 공부해온 사람인데 나 조차도 공영방송법이 어떤 것인지 구체적으로 모른다. 총체적인 논의가 생략된 채 법안만 던져졌다”고 지적한 바 있다.

하지만 정병국 의원은 “2004년말 제출한 공영방송법은 당시 수차례 공청회를 했는데, 좀 과문하신 것 같다. 그렇게 몰아붙이지 말아주시라”며 “전병헌 의원은 우리가 논의하는 것을 모르는 척 하는 것인지, 무지의 소치인지, 아니면 정략적 의도가 있는 것인지 의견이 있으면 거리로 나가지 말고 논의 구조로 나와라. 국회에서 논의가 안되니까 바깥에서 모른 것”이라고 맞섰다.

이에 전병헌 의원은 “2006년도부터 문방위 간사를 하며 법안소위위원장을 했는데, 도대체 공청회를 언제 했다는 것인지 알고 싶다. 당시 박형준 의원은 법안을 제출해놓고 토론하자고 공식적으로 요청한 적이 단 한번도 없었다”며 “몇년 전에 발의했다 하더라도 적극적으로 관철하려는 노력이 없었고 의제화하지도 않은 법을 가지고 ‘과거에 제출했기 때문에 새로운 게 아니다’ ‘왜 몰랐냐’고 하는 것은 논리의 비약”이라고 주장했다.

◇ “IPTV만 열어라” VS “일관성 고려”

한편, 이창현 교수는 ‘방통융합으로 더는 지상파중심 시대가 아니다’는 정병국 의원의 발언에 대해 “그렇다면 차제에 신문과 대기업의 지상파진출은 그만두고 IPTV만 중심으로 하자. 세계적인 미디어기업이 CNN이 아닌 것처럼 보도 부문이 (미디어기업 육성에) 별로 도움이 안되니까 보도 부문을 빼고 엔터테인먼트 중심의 세계적인 대기업을 만드는 것으로 다시 법안을 꾸며보는 것은 어떻느냐. 이야말로 IPTV시대에 조응할 수 있는 것 같다”고 주장, 일부 참석자들의 환호를 받았다.

이에 정병국 의원은 “IPTV 시대에는 신문이 방송을 안하려야 안할 수가 없다. 신방겸영을 허용하면서 대기업의 진입장벽만 막아놓는다면 일관성, 형평성 면에서 위헌 판결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며 “지역방송들이 IPTV 시대에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 중 하나가 (대기업과의) 컨소시엄인데 이런 여지를 만들어줘야 할 필요성 등을 고려한 것”이라는 답변을 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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