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서남부 연쇄살인사건 용의자 강씨의 사진이 공개됐고 범죄자에 대한 얼굴공개 여부에 대한 논란이 지속되고 있다. 그러나 ‘무조건 공개해야 한다’는 입장에서 분위기가 약간은 변한 것 같다. 강씨의 얼굴을 일방적으로 공개했던 조선·중앙일보가 일정정도 빠진 상황에서, 논의는 ‘공개해야 한다’ ‘공개하지 말아야 한다’가 아닌 ‘사회적 논쟁을 통한 합의는 필요한 것 같다’는 쪽으로 흐르는 중이다.

‘얼굴공개는 너무 성급했다’는 의견 등장하기 시작

▲ 2월 3일 방영된 '생방송 오늘 아침'ⓒMBC

조선·중앙일보의 일방적인 얼굴공개에 대해 ‘너무 성급했다’는 의견들이 이제야 조금씩 나오고 있다. 특히 이러한 의견은 강씨의 얼굴이 공개되자마자 함께 살고 있던 강씨의 아이들이 마을을 떠나 종적을 감췄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그 기울어짐이 도드라지게 나타나고 있다. MBC <생방송 오늘 아침>에서는 3일 아침 ‘알 권리? 인권 침해? 논란 속 살인범의 얼굴’이라는 주제에 대해 살펴보는 시간을 가졌다. 여기에서 강씨의 이웃 사람들은 흉악범의 아들로 평생을 낙인찍혀 살아갈 수밖에 없는 아이들을 걱정했다. 마을 주민인 한 여성은 “외국으로 이민 보내야죠”라며 “외국으로 이민 보내서라도 살게 해줘야죠”라고 안타까워했다. MBC <뉴스데스크>에서 강씨의 얼굴을 공개한 것과는 다르게 <생방송 오늘 아침>은 얼굴을 비공개로 처리했다.

또한 2일 오늘자 <경향신문>은 ‘기자메모’에서 “반인륜적 범죄를 저지른 피의자의 인권 보호가 적절한지, 재범 방지를 위한 국민의 알 권리가 먼저인지에 대한 논쟁은 이제 한 번쯤 진지하게 해볼 때도 됐다”면서 “하지만 요즘 일부 언론은 이런 문제를 지면 홍보를 위해 상업적 선정적으로 이용하고 있는 것 같아 씁쓸하다”고 비판하고 나섰다.

▲ 2월 3일자 '경향신문' 기자메모 캡처

경향은 또 얼굴공개는 “재범 방지의 실효성, 무죄추정의 원칙, 여론재판의 우려, 인권 보호와 언론 자유의 한계 등에 대해 따져 사회적 법률적 기준을 마련하는 어렵고도 무거운 문제”라고 밝혔다.

‘무조건 공개해야 한다’는 의견이 압도적일 때와 비교해보면 보잘 것 없이 적은 수에 불과하지만 들끓는 여론에 ‘차분히 고민해보자’는 의견은 그 파장의 크기를 넘어서는 의미가 있을 수 있다. 지금 당장 필요한 한 마디였다.

그렇게 조선·중앙일보에 의해 불거진 범인 얼굴공개 여부에 대한 논의도 아직 끝나지 않은 상황이다. 아니, 이제 차분히 시작할 준비단계에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강씨 사건은 이미 ‘얼굴 공개’를 넘어 그 이상의 논쟁으로 퍼져가고 있는 상황이다.

슬며시 고개 드는 CCTV확대·사형집행론·흉악범유전자은행도입

강씨가 군포 여대생 실종사건의 용의자로 붙잡히자마자 방범용 CCTV 설치를 확대해야 한다는 주장들은 이미 시작됐다. 각종 언론매체에서는 경기도의 CCTV 설치 현황에 대해 대대적으로 보도했고 이에 김문수 경기도지사는 치안을 위한 방편으로 경찰력의 확충과 CCTV 설치 확대를 지시했다. 그리고 지난 2일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와의 인터뷰에서 경찰권을 지방으로 이전해 줄 것을 주장하고 나섰다.

그리고 무엇보다 사형집행론에 대한 언론의 관심은 주도적으로 나타났다. 지난 31일 <조선일보>는 “우리 곁에서 ‘살인짐승’을 떼어 놓을 방법은 없나”라는 사설을 통해 “일본은 작년 18명의 사형수에 대한 형을 집행한 데 이어 지난 29일 사형수 4명의 형을 집행했다”며 은연중 사형 집행을 주장하고 있음을 엿볼 수 있다.

▲ 2월 2일자 세계일보 사설 캡처

<세계일보> 또한 지난 2일 사설 “사형 집행은 법치주의 실현이다”에서 “검사 출신인 한나라당 박준선 의원이 어제 ‘사형수들은 조속히 집행해야 한다’고 말을 인용해 “강○○씨 같은 반인륜적 범죄자의 근절을 담보하지 못할지라도 제도가 폐지되기 전에는 법대로 하는 것이 법치주의의 첫걸음”이라고 강조했다. 악법도 법이라는 주장이다. 그밖의 신문에서도 사설로는 아니지만 약속이나 한 것처럼 ‘사형제’에 대한 기사들이 대량으로 쏟아졌다.

▲ 2월 3일자 '중앙일보' 사설 캡처

그리고 오늘 3일자 <중앙일보>는 드디어 사설에서 ‘흉악범유전자은행’ 도입을 강력하게 주장하고 나왔다. “강○○의 경우를 보면 법안 도입 자체를 언제까지나 미룰 일은 아니다”며 “잠재적 범죄 피해자의 생명과 인권에도 눈을 돌려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는 피해자를 상정하고 죗값을 이미 치른 이들을 예비 범죄자로 규정해버리는 것과 다름이 아니다. 살인 사건이 발생하면 1차적으로 이들을 대상으로 수사가 들어가는 것이다. 이를 단순히 ‘죄만 지지 않았으면 됐지’라고 넘기면 곤란하다. ‘흉악범유전자은행’ 도입은 정말 죄를 뉘우치고 새 인생을 살아가려는 이들에게 족쇄가 될 것이 뻔하다.

조선·중앙일보가 부추긴 범인 얼굴 공개에 대해 이미 경찰은 ‘흉악범 신상공개법’을 제정하겠다고 밝힌 상황이다.

앞서가는 언론, 논의지형에서 뒤처지는 국민들

그렇게 언론들이 만들어내는 새로운 논쟁주제들 ‘치안’으로 귀결된다. ‘치안’을 위해서 CCTV 설치가 확대되어야 하고, 사형은 집행되어야 하며, 흉악범유전자은행이 빠르게 도입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 2월 3일자 '한겨레' 1면 기사 캡처

이에 대해 <한겨레>는 3일자 1면을 통해 “거꾸로 도는 ‘인권시계’”라 했다. 한겨레는 기사에서 “강아무개씨 사건의 여파가 ‘사형 집행론’, ‘흉악범 신상공개법 제정’ 등의 주장으로 번지고 있어 자칫 우리 사회가 꾸준히 진전시켜 온 인권 가치와 기준마저 후퇴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고 우려했다. 또한 박근용 참여연대 사범감시팀장의 말을 빌려 “이른바 ‘무관용’, ‘법치’ 등을 강조하는 이명박 정부의 정책 기조 아래서는 인권 후퇴적 행태가 반복될 수밖에 없다”며 후퇴하는 인권현황에 대한 현 정부의 책임론을 강조했다.

시간을 두고 사회적 논쟁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국민들. 그러나 언론매체들은 국민들을 기다려주지 않았다. 장사를 위해 새로운 주제, 새로운 논쟁이 필요한 언론매체의 속성 때문인가. 혹은 ‘범인 얼굴 공개’에 대한 허무맹랑한 그들의 논리를 뒤덮기 위함인가. 어떤 이유에서인지는 모르겠으나 언론매체들이 국민들의 논의를 앞서만 간다면 사회적 합의는 영원히 이뤄질 수 없다. 경기 서남부 연쇄살인사건, 지금 필요한 것은 ‘기다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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