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ITLE 뻑큐멘터리 박통진리교 FuckUmentary
DIRECTOR 최진성
ADDITION 2001 | 85분 | 한국 | color

(*미리니름 : 순우리말 '미리'와 '니르다'의 합성어로, 영화 등의 작품을 감상하려는 사람에게 그 작품의 줄거리 등을 미리 알렸을 때 쓰는 말. 영문 표현으로 ‘스포일러’.)

하 수상한 시절. 공교롭게도 국내 최대 – 그래서 말도 많고 탈도 많은 – 포털의 온라인 상영관에 의외의 작품이 올라와 있다. 김동원 감독의 88년産 다큐멘터리 <상계동 올림픽>. 워낙 널리 회자된 이 다큐멘터리에 대해서 필자가 어눌한 소개를 보탤 필요가 있을까. 김동원 감독이 몸을 담고 있는 다큐 공동체 ‘푸른 영상’ 홈페이지의 영화 소개를 빌려오자.

88년 한국에서 올림픽이 열렸다. 각 언론들은 이 행사가 유사 이래 민족 최대의 소명이라도 되는 것처럼 떠들어댔고 그 영향으로 국민들도 들떠있었다. 그러나 외곽에는 그로 인해 소외된 우리 이웃이 있었다. 올림픽에 오는 외국 손님들에게 가난한 서울의 모습을 보이면 안된다는 도시 미학적(?) 관점에서 진행된 달동네 재개발사업. 이 때문에 상계동 주민들을 비롯한 서울 200여 곳의 달동네 세입자들은 아무 대책도 없이 몇십년씩 살던 집에서 쫓겨나야 했다. 주민들은 최소한의 삶의 공간을 보장하라고 외쳤지만 정부는 철거깡패와 포크레인, 그리고 전투경찰을 앞세워 무자비하게 그들을 구속하고 집을 철거해 버렸다. 많은 사람이 다치고 죽고 했지만, 언론마저 침묵해버렸던 독재의 시대.

86년 10월6일 마침 데이트 약속이 있던 김동원은 아는 신부님의 요청을 받고는 하루치 봉사하는 마음으로 상계동에 달려간다. 그랬던 한 나절의 방문이 몇 년의 동행이 되고, 2시간짜리 테이프는 50개로 늘어난다. 처음엔 철거민들의 막사에 발을 딛는 것도 무척 꺼려졌다고 회고하던, 그냥 리버럴 감수성 정도의 영화 청년이 3년 동안 그들과 함께 생활하며 투쟁과 애환과 전망을 기록하게 된 것이다. 실제 철거민 여성 한 분 ㅡ 의 목소리로 어눌하게 내레이션이 진행되는 이 성긴 이음새의 비디오는 야마가타 다큐멘터리 영화제에 초청되면서 ‘바로 지금 여기’ 한국을 이야기하고 고민하는 기운을 전파하는 성과를 거두지만 김동원 감독 스스로의 평가는 조심스럽다.

“이 작품이 상계동 주민들의 철거투쟁에 어떤 역할을 했는지 평가하기는 어렵다. 여론형성에 꽤 기여를 한 건 사실이지만 한편 과도한 지원을 받아 상계동 주민들이 분열되기도 했기 때문이다. 상계동 주민들은 공동체를 만들지 못했고 또 나도 평생 주민들과 함께 살겠다는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 김동원 특별전 자료집 중에서

11년 뒤 <행당동 사람들> <명성, 그 6일의 기록> 등으로 시선을 넓힌 김동원 감독은 ‘불법 영상 유포죄’ 라는 해괴한 이유로 기관에 끌려가는데 이 구속 문제가 표현의 자유에 대한 투쟁을 촉발하는 계기가 되어 지금의 ‘한국독립영화협회’가 설립되기에 이른다. 감독의 엄격한 자평에도 불구하고, 어찌 됐든 어려운 시절 여러 길동무를 만든 상계동의 오후인 셈이다.

마침 용산 참사 (용산 학살이 더 적당한 표현일 수 있겠으나 일단은) 가 발생한 며칠 후 네이버에 올라온 이 다큐멘터리를 재생하며, 그 시의성이 반갑고도 묘했는데 알고 보니 <동백 아가씨> <어느날 그 길에서> <살기 위하여> 등의 다큐를 배급하고 있는 독립 다큐 배급사 시네마 달 Cinema Dal 과 해당 포털이 접촉한 결과라고 한다. 그러니까 용산 참사와는 별개로 진행된 조우. 기형도와 김선우의 시를 짬뽕해서 얘기하자면 어떤 ‘입 속의 검은 잎들은 어느 날 입 속에 갇혀 있길 거부하고’ 이렇게 우리를 다시 찾아 오기 마련이다.

개인적인 소회를 읊자면, <상계동 올림픽>은 내가 처음으로 접한 한국의 독립영화다. 대학 다닐 때 공강 시간이면 보통 농구를 하거나… 농구를 하려고 기다리거나… 농구를 하려고 사람을 모으거나… 음, 암튼 농구를 했는데… 어쩌다 애매한 시간에 찾아 들어간 조그만 영상자료실에서 접한 VHS 테이프가 바로 27분짜리 미니 다큐. 그 화질이 떡이던 VHS 복사본이 내 인생까지 바꿔놓았다면 과장이겠지만, 전형적인 ‘우익 청년’이었던 내가 이 사회의 작동 원리에 대해 의문을 품는 계기가 된 건 사실이다. 그런 갸웃거림을 살짝 품은 채 군대에 입대해 이런저런 경험을 하며 (그러니까 사회적 약자의 포지션을 처음으로 경험하며) 그제서야, 이 사회의 권력자들이 ‘집단’ ‘애국’ ‘화합’ ‘근면’ ‘경제’ 등의 덕목을 못된 방패 삼고 가짜 핑계 삼아, 진짜 약자나 시민이 아닌, 한 줌도 안되는 자기네들의 잇속을 챙기는 데 이용한다는 걸 깨닫게 된 것.

안타까운 건, 저 엄연한 팩트의 화면들을 보면서도 ‘서민들 불평 다 들어주다간 우리의 경제 발전은 불가능했다’는 무지한 논리를 댓글로 열심히 달고 있는 사람들의 존재.

예.전.의. 나. 같.은. 애.들.일. 것.이.다. 기득권에 대한 어떤 의문 없이 스물 몇 해를 살았던 끔찍한 범생이. 그렇다 해도, 약자의 위치를 배려하는 것과 경제적인 안정이 대척점에 있다는 논리는 어디서 나온 걸까, ‘평균하면 연옥에 있다는 것이’ 누군가에게, 그리고 우리에게 무슨 위로가 된다는 얘기일까?

이렇듯, 어떤 사안들마다 그 수혜자가 누구인지 알 수 없는 (아니, 누구일지 뻔한) 질서, 집단, 경제, 사회안전 등의 항목을 들이대는 못나고 게으른 기운들이 있다. 세상 돌아가는 모습에 대해 공부를 하지 않아서 그렇고 (가령, TV에 나와 대통령 핥아주는 어떤 중견 탤런트들), 실제의 고유한 삶과 마주하는 경험이 미천해서 그렇고 (가령, 듣보잡이라는 인터넷 조어를 자신의 고유 닉네임으로 정착시키고 있는 어느 변변찮은 인정욕구), 가끔은 그런 공부와 경험에도 불구하고 그 화자의 사람됨이 정말 못나고 박해서 그렇기도 하겠지만 (나름 언론인이었던 청와대 대변인이나 부대변인), 몇몇 최악들을 제외하면 대개는 좋은 길동무를 만날 기회가 없어서 그렇지 않을까 싶다.

그렇다면 길동무는 어떻게 만나야 하는가. 철학자 김영민은, 명분을 공유하는 ‘동지’나 공감을 향유하는 ‘친구’, 위태한 감정을 나누는 ‘연인’과는 또 다른 차원의, 함께 걷고 얘기 나누는 긴장과 성찰의 공동체로서의 ‘동무’를 이야기하는 혜안을 보인다. 다만 이 동무論은 더 깊고 오랜 얘기를 요하는 바, 여기서 좀 더 간명한 비유를 들자면, 또 다른 좋은 다큐멘터리에 대한 김애란 작가의 글을 인용해야겠다. 다큐멘터리 연출자가 동물들의 동무가 되어, 그 눈과 숨과 입을 대신하여 로드 킬 Road Kill (야생동물 교통사고) 문제를 다룬 <어느날 그 길에서>. 이 작품에 관한 리뷰를 통해 김애란 작가는 ‘보통명사를 보통명사로 읽지 않는’ 노력을 권유한다. 즉, 소외받고 추락하고 죽음으로 내몰리는 어떤 존재를 ‘세입자’ ‘폭도’ ‘철거민’ 이라는 보통명사로서가 아니라 독자적인 생명체로 읽는 노력.

‘보통명사일 때는 다가오지 않던 어떤 막연함 사이에 다리를 놓고, 나와 연결시킬 수 있는 힘. 타인의 고통을 상상할 줄 아는 능력’.

파시즘은 그 반대로 정의할 수 있겠다. 남의 고통을 상상하는 능력을 거세시키는 주의와 주장. 생물을 무생물로, 활력을 폭력으로, 개인을 집단의 부속으로, 고유명사마저 보통명사로 돌리고 심지어는 그 보통명사마저 익명의 인칭 대명사 ‘이, 그, 저’ 로 돌려버리고 싶어하는 못된 의도들의 담합.

그렇게 어휘를 빼앗기는 와중에도 인간들은 필연적으로 극복과 탈출의 서사를 갈망하기에 어떤 모리배들은 엉뚱한 명사들을 가져와 우상숭배를 요구한다. 자신들의 기득권을 위한 어처구니 없는 페이크. 근데 이게 통한다. 이집트 땅을 빠져 나온 유대인들이 고단한 사막길로 인한 내부 갈등을 봉합하기 위해 무엇을 했던가, 자신들의 재물을 걷어 ‘황금 송아지’를 빚는다. 자신들의 잉여로 만든 피조물에 그들 스스로 경배하는 몰상식의 풍경. 그 황금 송아지가 바로 지금 이 땅의 뉴타운이고, 대운하고, 방송 민영화이고, 경제 만능의구호들이다. 그 앞에서의 휑한 주문들 ‘MB가 해주실 거야’ ‘박 대통령의 따님은 다르실 거야’… 그러나, 사막길의 황금 송아지가 그렇듯 저 급조된 명사와 근거 없는 주문들은 우리네 서사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심지어 경제적인 효용도 없다).

그렇다면 매체가, 서사가, 영화가 할 일은 잃어버린 어휘들을 끊임없이 상기시키고 되돌리는 일. 그 경로로서 각 매체 앞에 붙는 2음절씩의 수식. ‘대안’, ‘참여’, ‘독립’. 말이 말이 되게 하고, 서사가 서사가 되게 하고, 영화가 영화가 되게 하는 일. 소싯적의 윤성호처럼 갈피를 못 잡는 이들의 길동무가 되어 주는 일.

자, 그리하여 일단 <상계동 올림픽>의 일감을 권한다 (문단의 영화제목에 VOD로 가는 링크가 있다). 더불어, 이어지는 길동무에 관한 정보 하나. 올해 2월부터 매달 마지막 주 화요일에 독립영화전용관 인디스페이스를 이용해 일종의 독립영화 월례 상영회를 열 예정이다. 이름하여 ‘월례비행’. 영화 하나 틀고 쭈뼛쭈뼛 문답 몇 개를 나누는 게 아니라, ‘지금 바로 여기’에서 해야할 말을 하고 있는 영화와 작가를 모셔다가 활기차게 대화를 나눠볼 생각이다. 감독과 이야기를 함께 나눌 패널들도 해당 영화에, 그리고 해당 영화가 다루는 문제에 꾸준한 관심을 보여온 평자를 초청할 생각.

이 월례 포럼의 4월 라인업이 김동원 감독의 <행당동 사람들>, 그리고 철거민들이 용역 깡패 및 부당한 공권력과 싸우는 과정을 담담히 소개하는 김경만 감독의 <골리앗의 구조> (‘골리앗’은 철거민들이 자신들을 방어하기 위해 건물 위에 누덕누덕 기워 올린 함석 망루를 뜻한다). 두 분 감독님을 모시고 얘기를 나눌 대담자는 <그들만의 월드컵> <히치하이킹> 등의 발랄한 다큐멘터리와 단편영화를 만들어 온 최진성 감독이다. 마침 다가오는 2월의 상영작 역시 최진성 감독의 <뻑큐멘터리 – 박통진리교>. 박정희 기념관 건립을 소재로 우리 사회에 여전히 내재한 파시즘을 힙합 디스 하듯 경고했던 이 다큐멘터리의 전성기는 7년 전이지만, 영화를 소개하던 그 때의 경쾌한 문장들은 요사이 더 와닿는다.

2000년대, 서울에 나타난 좀비 한 마리. 그 좀비는 수십년 전 저 세상으로 간 이미 오래된 시체다. 그 시체가 산 자들의 양기를 빨아먹으며 다시 좀비로 부활해 지금 활보한다. 그 좀비를 섬기는 사람들, 급기야 그 좀비를 위한 교회를 짓는다. (중략) 수많은 한국의 꼴통들이 여전히 그 좀비를 얘기하고, 과거 그가 지시했던 일들을 여전히 이행하고 있다. (중략) 구석에서 먼지 쌓여 가는 B급 코믹호러 영화의 내용이 아닌, 대한민국의 현재에서 은근히 진행되는 꼴통들의 현실이다.

그리고 좀 더 세월을 먹은 감독의 변. 그 안의 고유명사들.

<뻑큐멘터리-박통진리교>를 만든 지도 벌써 시간이 7년이 지났습니다. ‘27살의 에너지 넘치고, 놀기 좋아하던 최진성’이 놀 줄 모르고 훼방질하기 좋아하는 ‘대한민국의 어른’들과 맞짱을 떠보고 싶어서 만들었던 영화였던 것 같습니다. (중략) 어쩌면 역사가 거꾸로 간다는 느낌이 들만큼 2009년의 대한민국은 그야말로 제정신이 아닙니다. ‘27살의 최진성’만큼 노골적으론 아니지만 ‘35살의 최진성’은 여전히 주춤거리면서 그 어른들이 싫고, 서운하고, 밉습니다. 7년 전 이 영화를 찍을 때 인터뷰에 응해주셨던 선생님 세 분이 그 사이에 돌아가셨습니다. 5·18 광주민주화운동의 마지막 수배자이자, 민청학련 투쟁의 선봉이시기도 했던 윤한봉 선생님, 일제시대 당시 소년 노동자로서 친일파 척결을 위해 ‘부민관 폭파’ 사건을 주도하셨던 민족문제연구소의 조문기 이사장님, 남조선민족해방전선 사건 등으로 내내 반공법과 국가보안법에 시달리시면서도 단 한 번도 굴하지 않고 평생을 청년으로 살아가신 김병권 선생님. 죄 없는 K가 이유 없이 체포된 후 내내 변변찮은 소송 한 번 못해보고 최후에 이르는 카프카적 세상에 우리는 이전에도 살아왔고 지금도 살아가는 것 같습니다. 부끄럽지만, 이 영화를 평생 청춘으로 살다가 돌아가신 선생님 세 분에게 늦게나마 바칩니다.

이런 길동무들 덕분에 나는 조금이나마 눈이 밝아졌고 말도 아닌 말이 아닌 말 같은 말을 하게 됐다. 여러분에게도 좋은 동행이 되리라 믿으며 추천.

2001년에 스물다섯이었던 성호. 그 해부터, 아는 사람은 알고 모르는 사람은 아예 모르는 『산만한 제국』『나는 내가 의천검을 쥔 것처럼』『우익청년 윤성호』『이렇게는 계속 할 수 없어요』등등 극영화 같기도 하고 다큐 같기도 한, 실은 UCC에 가까운 - 중단편을 만들어왔다. 2007년『은하해방전선』이라는 장편영화를 만들며 나름 촉망 받는다고 생각했는데 실제로는 별로 안 풀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존재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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