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공이 울리고, 그 동안에 잠시 KBS쪽 상황을 정리해본다. 사원행동 세 사람을 자르고, 또 다른 몇 사람을 중징계함으로써 작전을 종결지으려 했을 것이다. 그만큼 겁주었으면 됐고, 그래서 이스라엘군처럼 의기양양하게 일방적 무력전을 마감코자 했을 것이다. 그런데 과연 예상이나 했을까? 새로 바뀐 노조 집행부가 뒤에서 협상을 시도하는 사이에, PD와 기자들이 전면에서 들고일어났다. 무기한 제작거부의 레지스탕트 되기를 선언했다. 비극적 용산참사가 터진 날의 일이고, 달력은 재빠르게 입법전쟁 제2회전의 달로 접어들고 있었다. ‘여론’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는 정권의 입장에서, KBS에서의 또 다른 상황발생은 최악의 시나리오였을까? 꽁무니를 빼듯이, 사측이 잽싸게 징계를 철회했다.

2009년 2월2일 현재의 상황은 이렇듯 누구도 절대 주도권을 가졌다고 안심할 수 없는 살얼음판이다. 사측의 입장에서는, 상대방 실력이 결코 만만찮다는 사실을 새삼 절감했을 것이다. 때려도 때려도 머리 내미는 두더지들 보고 혼비백산 놀랐을 것이다. 노조와 사원들 사이의 이간질이 생각대로 통하지 않은 것에, 작전의 혼선을 겪었을지도 모른다. 아무튼 링위의 모두들 조심하시라. 조금이라도 방심하다가는 큰일 날 테니. 1회전에 때려 눕힐 수 있을 것 같던 가소로운 상대가 언제 내 턱에 결정적 하이킥을 날릴지 모르는 일. 관중 여러분도 눈부릅 뜨고 지켜보시길. 언제 또 엉덩이 들썩들썩하면서 와와 흥분할 일이 벌어지게 될지. 게임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 ⓒ송선영
겨우 2회전을 치렀을 뿐. 아직까지 치러야 할 10회전이 남았다. 대체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르는, 기적같은 일이 일어날 수 있는 긴 시간이 남아있다. 일방적으로 밀리는 듯 하다가도, 불리한 것 같다가도, 질 것처럼 보이다가도, 별 것 아닌 것 같던 어름한 한방에 전세는 돌변할 수 있다. 0.1초의 찰나적 해딩질에 급소를 맞은 이노끼가 나가떨어진다. 얻어터지면서 집요하게 날린 잽에 전의를 상실하고 허무하게 무너지지 않던가? 심판이 엉터리로 판정할 수 있다. 적지라 얼마나 불리하겠는가? 그래도 홍수환은 쓰러질 듯 쓰러질 듯 하다가도 마침내 승리해 챔피언 벨트를 쟁취해낸다. 저 멀리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어머니 이름을 불러 모두를 울컥하게 한다.

그렇다. 바로 이런 게 민중이 힘 가진 자에 맞서 치르는 싸움의 방식이다. 맞으면서 얻어 터지면서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다. 죽을 것 같지만, 정신력으로 버틴다. 코피가 터지고 이빨 몇 개 나갔지만, 섬뜩한 미소로 상대를 주눅들게 만든다. 비틀비틀 일어나 다시 나서고, 내가 안 되면 네가 맡는다. 어차피 우리는 힘 약하고 백 없는 난장이들. 오기가 무기일 뿐이다. 정 안 되면 모두가 달려들어 그 잘난 놈의 허벅지를 깨물고 가슴팍을 꼬집으며, 그것도 못할 거면 옆에서 악악 소리와 욕지거리라도 질러댄다. 물론 항상 이길 수는 없는 일. 이번에 안되면 다음에 붙으면 되지. 으름장 한번 놓고, 어깨동무하고 떼거리로 킬킬대며, 막걸리를 찾아 골목 모퉁이 선술집으로 기어든다.

권력에 맞선 대중들이 구사하는 싸움의 기술이다. 영악하고 징그러운 싸움의 방법론이다. 판세를 정확히 읽을 줄 아는, 눈치빠른 난쟁이들의 싸움법이다. 투쟁 중인 YTN 노동자들에게도 똑 같이 적용되는 기술이다. YTN사태와 관련해서는, 여기저기 글을 써 놓은 게 있고, 다른 많은 이들이 이야기를 했으며, 무엇보다 여러분이 다 알고 계신데 무슨 복기가 필요하겠는가? 정 필요하다면 <미디어스>나 <미디어오늘>, <프레시안>의 관련기사를 읽으면 될 일. 사태 해결의 길은 분명하다. 결자해지의 길이다. YTN 사태에 대한 일차적 책임이 낙하산 사장과 그를 투하한 권력에 있으며, 따라서 사태 해결도 낙하산 사장이 물러나고 YTN 방송이 정상화됨으로써 완결될 수 있을 것이다.

YTN 노조의 투쟁은 바로 이 길을 가는 처절하고 힘든 싸움에 다름아니었다. 그 과정에 얼마나 큰 상처, 아픔, 고민이 있었는가? 동시에 명예와 자존심을 되찾게끔 해준 얼마나 놀라운 시민의 성원이 따랐던가? 이제 YTN 문제는 언론 자유의 문제이자 방송 독립의 문제, 미디어 공공성의 문제로 정리된다. YTN 사태는 한국 민주주의 위기 사태의 증거이자 그 자체다. 이처럼 중대한 의미가 부여된 YTN 상황의 해결 책임은 당연히 수백명 YTN 노조원들의 어깨에 달려있지 않다. 낙하산 사장이나 심지어 그를 파견한 권력에게만 있지 않다. 민주주의 수호, 사회 보호의 책무가 우리 모두에게 있듯이, YTN의 선한 노동자들과 YTN의 진실보도 가능성을 보호할 책임도 나/우리에게 공통으로 떨어진다.

최근에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다. 두 가지 이유 때문이다. 우선 KBS의 타협 소식을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KBS도 하는데, 똑같은 처지의 YTN도 일단 중징계를 철회하라는 상식의 목소리가 높다. 사측이 부담을 느끼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더군다나 방통위 재심사 기한이 24일로 다가와 있다. 이른바 ‘노사갈등’ 때문에 보류되었던 재승인 심사다. 제 정신 있는 사측이라면 ‘공동의 적’에 맞서 정전을 선포하디시피 한 노조의 선택에 지혜롭게 응답할 것이다. KBS와 같은 수를 택할 것이다. 지금 당장 징계 수준을 대폭 낮추는 것이다. ‘진정한 사태해결’의 물꼬를 틀기 위해서라도 해고자를 복직시키라는, ‘대국적 결단’을 요구하는 YTN 기자협회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일 것이다.

공평하게 자격을 회복시켜주고, 일단 재승인 문제를 해결한 상태에서, 사태 해결의 답을 지혜롭게 찾아보자는 매우 생산적인 제안으로 읽힌다. 싸움의 룰을 좀 정리하고 가자는 현명한 재촉으로 들린다. 정리하거나 확인된 바 없지만, 시민사회의 입장도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다. 과연 사측이 이 제안을 어리석게 뭉개버릴 것인가? 구 사장이 어제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해고자 문제를 잘 풀겠다며 이해를 구했다. 해고자 문제 해결이 현안의 핵심임을 정확히 알고 있는 모양이다. 그러면서 기다려달라고 여운을 남겼다. 여기서 안타깝게도 빗나간다. 누구로부터 무엇을 기다리는지 모르겠지만, 내가 보기에 그가 취할 가장 현명한 행동은 KBS 사장이 취한 것처럼 하는 것이다. 주저할 여유가 없다.

KBS에서나 YTN에서나 물리전이 아닌 여론전의 긴 싸움으로 들어갔다. 단기전이 아닌, 장기전이다. 이런 싸움판에서는 무리하는 자가 반드시 진다. 이긴 듯 하나 사실은 지고 있을 수 있다. 주변 동정을 잘 살필 줄 알아야 한다. 이긴 놈보고 ‘바보, 네가 진 거야’ 판정하는 게 대중들이다. 졌다고 실망하는 자보고 ‘아니야, 사실은 네가 우리가 이긴 거야’라고 격려하는 게 또 대중들이다. 조금의 머리가 있는 사장이고 권력이라면 대중의 명령을 무시하지 않을 것이다. 대중들은 이미 판정내렸다. ‘아마추어처럼 왜 이러시나. 해고자부터 풀어주고 하시지!’ 아무리 압법을 ‘약법’이라고 선전해도, 설 후 보수신문이 확인하는 여론조차 여전히 ‘악법은 악법’이다. 여론 대중은 엄혹한 시절에도 시퍼렇게 살아 싸움을 지켜보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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