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하의 날씨는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습니다. 조금씩 내린 눈은 수북하게 쌓여 며칠째 눈 세상입니다. 이렇게 산에 눈이 쌓이면 산에 사는 동물들이 배고픔을 이겨보려고 마을에 자주 옵니다. 마을 주위로 미처 따지 못한 감이 나무에 주렁주렁 매달려 있습니다.

낮에는 눈밭에서 먹이를 구하지 못하는 새들 먹이가 되어 줍니다. 밤에는 멧돼지 가족이 떨어진 감을 주워 먹기 위해 집주변까지 내려옵니다. 구름이 또별이는 밤에도 편안히 자지 못하고 멧돼지 때문에 짖느라 바쁩니다.

며칠 동안 자세히 살펴보니 멧돼지가 구름이 또별이 몸집이 작다는 걸 알고 가까이 와 짖어도 관심을 전혀 보이지 않습니다. 주워 먹던 감을 태연하게 주워 먹으며 무시해 버립니다. 몸집이 큰 멧돼지가 무서워 더 이상 가까이 가지는 못하고 한참을 짖다가 맥없이 집으로 돌아옵니다.

오늘은 빨래하는 날입니다. 영하의 날씨가 계속되면 아무 때나 빨래를 할 수 없습니다. 마을에 하나 있는 얼지 않는 샘에서 계속 물을 길어 와야 하고 난로와 아궁이 솥에 물을 끓여야 하기 때문에 빨래하는 날을 정해서 합니다.

어제는 온 가족이 머리 감는 날이라 몇 시간을 물 끓이고 물 길어 날랐습니다. 날이 좀 풀리면 하려고 미뤄두었던 빨래인데 날 풀릴 기색은 없고 쌓이는 빨래를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어 오늘 하기로 했습니다.

어제에 이어 오늘도 집에서 샘까지 눈밭을 수 십 번 오르내렸습니다. 빨래는 어둠이 짙어져서야 겨우 끝냈습니다. 덕분에 손전등 들고 오르내리다 눈에 미끄러져 물을 다 쏟기도 하고, 손발이 얼얼해졌습니다.

두껍고 부피 큰 겨울빨래 하느라 애쓴 아내는 밤에 팔이 저리다고 합니다. 눈밭에 미끄러지고 넘어져 가면서 물 길어나르느라 팔이 저리지만 큰 빨래하느라 고생한 아내가 고마워 조용히 아내 팔을 주물러 봅니다.

산중 겨울은 버튼만 누르면 되는 쉬운 빨래를 하루 종일 둘이 매달려야 하는 일입니다. 시간과 움직임을 돈으로 계산하는 지금 삶에서 보면 정말로 한심한 일일지 모릅니다.

눈 쌓이고 언 땅에서 먹을 것을 구하지 못하는 멧돼지 가족이 눈보라 맞으며 먼 길 걸어 마을에 내려오는 것이 한심한 일이 아니듯 시간도 움직임도 돈으로 계산하지 않는 삶에선 자연스런 일입니다.

힘겹게 겨울빨래를 하면서 빨래는 입었던 옷만 깨끗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도 깨끗이 하는 일임을 느낍니다. 널려 있는 빨래를 보고 있으면 절로 마음이 흐뭇해져 웃음 지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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