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 아니 더 좁혀서 TV토론이 ‘정치’를 구원할 수 있을까? 대답은 아니올시다이지 싶건만, 정치의 미디어 의존도 정확하게는 TV토론 집착증은 날로 심해지고 있다. 오늘 밤 대통령이 TV토론에 오른다. 지난 9월에 이어 두 번째이다.

물론, 까만 밤을 하얗게 지새우더라도 차마 다 하지 못할 만큼 할 이야기는 많다. 용산참사, 개각, MB악법, 언론장악, 4대강 살리기, 미네르바, 용산참사, 오바마 이후의 한미관계, 남북관계 등 얼핏 생각해봐도, 살아있는 이슈들만 따져도 십 수가지가 넘는다. 현안위에 현안이 쌓이고 복잡한 문제들이 아예 나름의 결들을 이루면서 고여 가고 있다. 오늘밤 대통령은 무슨 말을 할까?

▲ SBS 홈페이지 <대통령과의 원탁 대화-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캡처.

언제나 원론만, ‘당연한 말씀 감사한’ 수준까지만 소통하는 화법의 대통령이다. 벌써부터 청와대는 용산참사 등의 민감한 문제는 최소화하고 ‘경제위기’ 중심으로 진행할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경제가 어려우니 손에 손 맞잡고 열심히 잘 살아보자’고 요약되는 새마을 운동 버전의 ‘대통령 담화 라디오’로만 들어도, 충분히 지겹고 아무런 도움도 안 된다. 솔직히 요즘 같아선, 할 말 안 할 말 구분 없이 던져대며, 불리해지면 ‘지금 막가자는 거냐’고 성을 내던, 그때 그 사람이 살짝 그립기까지 하다.

오늘 토론의 패널은 조국(서울대 교수, 법학) 정갑영(연세대 교수, 경제학), 김민전(경희대 교수, 정치학), 박상원(배우)이다. 배우 박상원씨가 어떤 이야기를 할 수 있을지는 솔직히 감이 오질 않는다. 하지만 조국 교수는 국가인권위원회 위원으로 시대가 얼마나 빨리 거칠어지고 있는 지를 생생히 목격하고 있는 지식인 가운데 한 명이다. 정갑영 교수는 오락가락하며 쓸데없는(대운하) 것에만 집착하는 정부의 경제정책을 줄곧 비판해왔다. 시사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김민전 교수는 산적한 현안들의 만만치 않음과 정부의 갑갑한 대처를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불과 몇 시간도 남지 않은 토론이다. 평소 대통령의 언행을 봤을 때, 단 두 시간의 토론에서 화끈하게 많은 것을 말하리라 기대하는 것도 무리이다. 3명의 패널들에게 부탁한다. 딱 3가지 이야기만 끝까지 물어 답을 들어보자.

◇ 용산참사, 책임은 무엇이고 어떻게 질 것인가? = 어제 <100분 토론>에서 한나라당 장윤석 의원은 시종일관 '선 진상규명, 후 책임'이 한나라당과 정부의 변함없는 입장임을 강변했다. 그러면서 동시에 철거민들이 화염병을 사용하며 시민의 안전을 위협했기에 공권력의 집행을 불가피했음을 강조했다.

진상규명에 앞서 이미 경찰에겐 책임이 없다는 것을 주장하고 있는 모순이었음에도, 매 발언마다 정색하고 무한 반복했다. 부끄럽고 지겨웠다. 용산참사, 책임을 져야한다. 사건 발생 열흘이 훌쩍 지나도록 어떤 정부 당국자도 책임 있는 사과를 하지 않는 이유를 따져 물어야 한다.

오히려 보상에서 배제되는 세입자라는 절박한 경제적 조건을 가졌던 시민들의 행위를 도심 테러에 비유하며 이미 정해지 인사를 밀고 가려는 독선과 오만의 천박한 태도가 용산참사를 대하는 이명박 대통령의 입장에서 부터 출발하는 것인지 들어야 한다.

전용철, 홍덕표 농민 사망 사건 당시 국가인권위는 경찰에게 사과하라는 권고를 내렸었다. 시대가 추워서일까, 지금은 인권위마저 조용하다. 인권위원인 조국 교수가 맡으면 좋겠다.

◇ 경제위기, 노력 말고는 대책이 없는 것인가? = 경제 위기가 백척간두이다. 어제는 ‘오프라인의 미네르바’라고 불리던 이동걸 금융연구원장이 돌연 사퇴했다. 사퇴의 변을 밝히며 그는 이명박 정부의 경제정책을 고강도로 비판했다.

한 마디로 정부가 연구원을 ‘씽크탱크(Think Tank, 두뇌)가 아니라 마우스탱크(Mouth Tank, 입)’로 취급한다는 것이다. ‘재벌에게 은행을 주는 법률 개정안을 어떻게 경제 살리기 법이라고 부를 수 있는지’도 물었다.

비단 이동걸 원장의 말이 아니더라도 경제위기와 관련해서는 이명박 대통령 자신이 바로 ‘마우스 탱크’였다. ‘지금 주식을 사면 1년 내에 부자 된다’부터 시작하여, ‘경제 위기는 3년 이상 가지 않는다’, ‘나 같으면 펀드를 사겠다’, ‘내년(2009년)에 주가지수가 3000을 돌파하고 임기 안에 5000까지 간다’ 등 그는 매 고비마다, 국면마다 실언으로 시장의 조롱을 받았다.

그의 동반자인 강만수 장관도 마찬가지였다. 뭉뚱그려서 ‘노력해보자, 우린 할 수 있다, 시장을 활성화해야 한다’ 따위의 하나마나한 소리 말고 좀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대책을 말해야 한다. 없으면 없다고 고백이라도 해야 한다. 이 질문은 경제학을 전공한 정갑영 교수의 몫이다.

◇ MB악법, 법을 장악하는 것이 법치인가? = 정국의 풍경을 결정적으로 거칠게 만든 것은 이른바 ‘MB악법’에 대한 이명박 대통령의 ‘속도전’ 의지이다. 지난 해 국회가 사상 최악의 파국을 맞았던 것은 모든 법을 뜯어 고쳐 장악하려는 MB의 무모함이 원인이었다.

입으로 법치주의를 강조하며, 자신의 입맛대로 법을 바꾸려는 시도를 중단해야 ‘공안독재’, ‘개발독재’ 따위의 근대적 오명을 벗을 수 있다. 여야는 현재 동상이몽의 합의문을 쥔 채 서로를 벼르고 있는 상황이고, 시민사회를 포함하여 상식의 소중함을 믿는 사람들은 언제라도 거리로 나갈 준비를 하고 있다.

결자해지, 이명박만이 풀 수 있는 문제이다. 2월 임시국회에서 'mb악법'을 강행 처리하는 속도전을 시행 할 것인가? 아니면 더디더라도 토론하고 타협하는 민주주의의 원칙으로 돌아갈 것인가? 이 부분은 정치학을 가르치고 있는 김민전 교수의 분발이 필요하다.

TV는 속성상 모든 것을 흩날리고, 지나간 모든 이미지를 낡은 것으로 만든다. 기억에 남기려면 그래서 증거로 삼고자 한다면, 강렬한 가시적인 무엇을 만들어내야 한다.

수평적으로 나열되는 문제들, 켜켜이 쌓이기만 하는 현안들, 그럴싸한 말들의 성찬은 가슴만 더부룩하게 할 뿐이다. 복잡한 길일수록 간단하게 질러가야 한다. 오늘밤 딱, 3가지 이야기만 화끈하게 들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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