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문득, 특별한 시가 가슴에 안기는 날이 있다. 마종기 시인의 <우화(友和)의 강>은 요즘들어 더욱 가슴에 많이 남는 시다.


사람이 사람을 만나 서로 좋아하면
두 사람 사이에 물길이 튼다.
한쪽이 슬퍼지면 친구도 가슴이 메이고
기뻐서 출렁거리면 그 물살은 밝게 빛나서
친구의 웃음 소리가 강물의 끝에서도 들린다.
처음 열린 물길은 짧고 어색해서,
서로 물을 보내고 자주 섞여져야겠지만
한세상 유장한 정성의 물길이 흔할 수야 없겠지.
(중략)
큰 강의 시작과 끝은 어차피 알 수 없는 일이지만,
물길이 항상 맑게 고집하는 사람과 친하고 싶다.
내 혼이 잠잘 때 그대가 나를 지켜 보아주고
그대를 생각할 때면 언제나 싱싱한 강물이 보이는
시원하고 고운 사람을 친하고 싶다.
(마종기 우화(友和)의 강 1 중에서 )

물길이 트이고 기쁨과 슬픔을 출렁이는 물결로 공유할 사람이 세상에 과연 몇이나 될까마는, 이 세상에 태어나 정말 고맙고 감사한 일이 ‘물길이 항상 맑게 고집하는 사람’이 주변에 많다는 것이다. 내가 제작하던 프로그램 소개 원고 청탁을 계기로 만난 H기자는 자주 만나지는 못하지만 평소 글의 흐름이나 진취적 기상, 인간미 등 호감이 가는 사람이었다. ‘물길이’ 통하는 느낌이랄까. 어느 날 다니던 직장 접고 북경으로 유학을 간다 했다. 왜 하필 북경이며 그곳에서 무엇을 할지 시시콜콜 묻고 대답하는 관계는 아니었으나 능히 그럴 만하다고, 그럴 수 있다고, 그럴 나이라고, 잘 다녀오라고 응원해 줬다. 딸랑 비상약 몇 개 들려 보내고 1년이 훌쩍 지났다.

마침 지인이 북경에 간다기에, H기자에게 필요한 것이라도 챙겨 보낼 양 연락을 취했더니 한국에 돌아왔단다. 중국 꽃미남 가수들이 부른 CD를 내 선물로 사왔다나. 그 먼 곳에서 누군가가 나를 위해 뭔가를 준비했다는 말에 감동받았다. ‘막판에 환율이 뛰어올라 고생 많았겠다’는 내 말에 “환율도 환율이지만, 나중에 아는 이름 줄줄이 구속되고, 한국 기사가 웃긴 게 너무 많아 ‘쪽팔려서’ 힘들었다”는 답변. “요즘 방송계 힘들지 않냐”며 외려 나를 위로하다가 자신도 직장 구하는 일이 시급하다고 걱정이다. ‘사람들 힘들게 하는 기자, 힘 팽기게 하는 기사를 쓰는 기자는 하고 싶지 않다’며 꺼낸 의외의 말.

“사람들 행복하게 하는 일 하고 싶어요.”

▲ 평화가 요리하고 있는 모습.

타국에서 바라본 조국의 모습은 상식과 도덕이 상실된 추한 모습이었을까? 오죽 이 나라 국민들이 가엾고 불행해보였으면 고국에 돌아와 ‘사람들 행복하게 하는 일’이란 화두를 내걸었을까. 지금 대한민국에선 신나고 재밌는 기사거리가 없는 게 사실이다. 새로운 직장에 대한 그녀의 의도가 차라리 ‘시원’하고 ‘싱싱’하다.

후배의 딸, 초등학교 3학년에 올라가는 평화의 꿈은 요리사. 어느 날 후배의 홈페이지에 들렀더니 평화의 일기가 게재돼 있었다. 아주 재미있게 읽었다.

주제 : 요리학원의 기대

지금 막 두근거린다.
내일이면 바로바로 요리학원에 가기 때문이다.
난 요리학원이 귀찮지않고 재미있다.
초보이긴 하지만 내 꿈은 요리사이다.
지금 이 마음에서 수호캐릭터가 나올 것 같다.
요리학원에서는 두 팀으로 나눠서 한다.
난 그 점이 좋다.
왜냐하면 요리를 잘해서 대회에 나가는 것 같기 때문이다.
‘가을’이란 이름을 가진 언니가 있다.
마음도 예쁘고…… 내가 딱 닮았다.
요리를 해서 사람들을 행복하게 해주는, 그런 요리를 개발해내겠다.

‘내가 딱 닮았다’는 표현을 써놓고 살짝 무색해졌는지, 그 말을 삭제해달라는 평화의 강력한 요구를 무시해서 미안한 마음이지만, 사실 평화의 그 마음조차 예쁘다. 무엇보다 “사람들을 행복하게 해주는, 그런 요리를 개발해내겠다”는 의욕이 ‘시원’하고 ‘싱싱’하지 않은가?

대부분의 사람들은 “행복하게 살고 싶다”는 생각은 해도 “모두를 행복하게 하고 싶다”는 생각까지는 미치지 못하는 것 같다. “행복하게 살고 싶다”는 건 다른 사람이야 어찌되든 나 혼자만 잘살면 된다는 이기심이 깔려 있고, “행복하게 하고 싶다”는 건 다른 사람을 위해 기꺼이 손해와 희생을 감수하겠다는 각오가 서려 있다. 전자는 욕심이고 후자는 서원이다. 원불교 2대 종법사 정산 종사께서는 “서원과 욕심이 비슷하나 천양의 차가 있나니, 서원은 나를 떠나 공(公)을 위하여 구하는 마음이요, 욕심은 나를 중심으로 사(私)를 위하여 구하는 마음”이라고 하셨다. 출발은 같을 수도 있으나 결과는 천양지차인 것이다. 국민과 나라를 위해 대의명분을 갖고 일하는 사람이야 당연히 욕심이 아닌 서원을 세우고 경건한 자세로 일해야 한다. 신문과 TV, 인터넷을 달구고 있는 작금의 사태들을 보면 행복하게 ‘하고’ 싶다가 아닌 행복하게 ‘살고’ 싶다가 빚은 결과다. 나라의 일 또한 그러하다. 일부 기득권층만 ‘행복한’ 나라가 아닌, ‘국민 모두가 행복한’ ‘국민을 행복하게 하는’ 마음이 우선돼야 한다. 하기야 ‘모두를 행복하게 하는 요리를 개발하고 싶은’ 열 살짜리 예비 요리사의 반만 닮았더라도 북경의 한국 유학생이 타국에서 ‘쪽팔리는’ 사태는 없었을 터인데.

오늘 아침 방송에서 한 애청자가 이런 문자를 보내왔다.

“당신이 단 한 사람이라도 누군가의 그대가 되면 당신은 성공한 사람입니다. 한 사람의 마음에 사랑, 희망, 기쁨, 즐거움, 반가움, 위로, 감사를 심어준다면 당신은 성공한 사람입니다.”

매일 아침, <아침의 향기 - 전북>을 청취하는 애청자들은 서로에게 사랑과 희망, 기쁨, 즐거움, 반가움, 위로, 감사를 나누고 심어주고 있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는 서로에게 성공한 사람이라고 감히 말할 수 있겠다.

이제, 대한민국 정치, 경제, 사회를 책임지고 있는 사람들에게 묻고 싶다. 지금 당신은 국민의 마음에, 사랑, 희망, 기쁨, 즐거움, 반가움, 위로, 감사…… 그 무엇 하나 제대로 심어주고 있는지.

1965년 볕 좋은 봄, 지리산 정기가 서린 전북 남원에서 태어났다. 원광대학교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 행정대학원에서 언론홍보를 공부했다. 전공을 살려 지방일간지 기자와 방송작가 등을 거쳤고 2000년 원음방송에 PD로 입사, 현재 편성제작팀장으로 일하며 “어떻게 하면 더 맑고 밝고 훈훈한 방송을 만들 수 있을까?” 화두삼아 라디오 방송을 만들고 있다.

지역 사회와 지역 문화에 관심과 애정이 많아 지역 갈등 해소, 지역 문화 발전에 관련된 라디오 프로그램을 기획, 제작해왔다. 수필가로 등단, 간간히 ‘뽕짝에서 삶을 성찰하는’ 글을 써왔고 대학에서 방송관련 강의를 시작한지 10여년이 넘어 드디어 지식이 바닥을 보이자 전북대학교 대학원 신문방송학과 박사과정에서 공부하며 용량을 넓히려 안간힘을 쓰는 중이다. 최근 전북여류문학회장을 맡았다. 방송에서나 인간적인 면에서나 ‘촌스러움’을 너무 사랑하는 사람이다. http://blog.daum.net/kse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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