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MB 정부와 한나라당이 미디어 관련 법을(그 중 하나가 재벌/조중동 방송법인데) 통과시키려고 동원하는 핵심 논리는 미디어 산업발전, 일자리 창출에 기여한다는 것이다. 대통령도 지난 1월 19일 당·청회동에서 “미디어가 최대 산업이고 성장동력이다. 우리가 앞서 가다가 조금 늦어졌다. 방송통신융합이 잘 돼야 고급 일자리가 많이 생길 수 있다”고 말했다고 한다.

이 논리대로 된다면 그보다 좋은 일은 없다. 그러자면 그것이 사실과 맞는지, 기대가 현실화될 것인지, 최근의 미디어·정보통신 분야의 흐름과 부합하는지 꼼꼼하게 짚어봐야 한다.

▲ 1월 30일자 중앙일보 1면.
2004년의 IT 839 전략

2004년 지금 방통위원회의 전신인 정보통신부는 IT 839 전략을 발표했다. 대한민국을 미디어·정보기술 분야의 글로벌리더로 도약시키기 위한 야심찬 정책구상이었다. 그 전략이 내세운 미래의 기대효과 중 아주 친숙한 몇 가지만 간단하게 짚어보자.

△디지털 지상파 TV: 2004-2008년. 생산 229조원, 수출 563억불, 고용창출 126만명 △지상파/위성 DMB: 2012년까지 생산유발효과 5조2천억, 시장규모 4조 1천억, 고용창출 7만4천명 △휴대인터넷 서비스: 2010년까지 가입자 800만명, 3조원 규모시장 창출, 4만여명 고용창출 △IPTV를 핵으로 하는 광대역통합망 구축과 홈 네트워크 보급 투자유발 67조원, 생산 125조원, 수출 560억불, 2007년 세계시장의 11% 이상 점유

지금 시점에서 되돌아 볼 때, 이 중에서 예측과 사실이 맞아떨어진 것이 있는가? 디지털 지상파 방송? DMB? 2010년의 휴대인터넷 기대효과? 광대역 통합/홈 네트워크? 그 어느 것 하나 예측대로 실현되지 못했고 2010년이 아니라 그 이후 중기적 미래의 시점까지도 이 희망은 참으로 안타깝지만 거의 실현 불가능이다.

그 이유는? 도표와 수치와 통계를 넣어 장밋빛 미래를 그리는 것과 그것을 실제로 추진할 수 있는 역량을 우리의 기업과 정부가 가지고 있느냐 하는 문제를 간과한 탓이다.

미국의 경우

그럼 미국은 어떨까? 미국은 자타가 공인하는 미디어·정보통신 산업 분야의 최강자이다. 콘텐츠 분야의 경쟁력은 더 말할 필요가 없고, 광대역 인터넷 망의 수준과 보급률이 떨어진다, 기기제조 분야가 떨어진다고 하지만 미국의 역량을 그 누구도 무시하지 않는다. 그러한 미국의 미디어·정보통신 산업 분야에도 빨간불이 켜졌다. 큰 제목만으로도 현 사태의 심각성을 짐작하고도 남는다.

△마이크로소프트, IBM, 구글, HP, 스프린트, 텍사스 인스트러먼트 등 쟁쟁한 정보통신, 컴퓨터, 인터넷 기업 총 5만여명 감축예정 △디즈니, ABC, MSO 케이블 비전 경역감축 및 채널 축소 계획 △NBC 500명 감축계획 △마이크로소프트 2009년 1월 케이블 MSO 투자지분 매각 결정 △MTV와 파라마운트 영화사 850명 감축예정 △비디오 게임제작사 Electronic Arts 1000명 해고예정 △워너브라더스: 2009년 1분기 800명 해고계획 발표 △유니버설 영화사, 2008년 12월 70명 이사 해임 △파라마운트, MGM, 20세기 폭스, 스필버그 프러덕션 등 영화 제작예산 확보에 비상 등등.

이유는? 가장 큰 것은 물론 점점 장기적 공황국면으로 들어서고 있는 작금의 ‘경제 쓰나미’이다. 경제 쓰나미의 여파로 국내·외적인 경기침체와 소비둔화, 고위험 연예산업 투자회피, 방송사의 광고판매 부진, 신용경색으로 인한 스튜디오와 독립제작사 파산, 부대산업 부진 등등. 이 때문에 20만 명 정도의 고용효과, 2-3백억불 규모의 미디어·연예산업의 중심인 LA가 크게 흔들릴 지경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올해보다 2010년이 더 최악의 해가 될 것이라는 것이 일반적인 예상이다.

일자리가 줄어든다

그런데 이것이 지금의 경제 쓰나미로 인한 일회성 파도라면 얼마나 좋겠는가? 그러나 그것이 일회성이 아니라 보다 구조적인 것이라는 증거와 자료들이 쌓여가고 있다. 즉 미디어·정보통신 분야의 일자리가 점점 줄어들고 있는 것이다.

올해 1월 6일자 발행된 비즈니스위크지에 따르면 1998년부터 2008년까지 지난 10년간 미국 전체 산업에서 차지하는 미디어·정보통신 분야의 고용비중은 2.6%에서 2.1%로 감소했다. 이 분야 일자리가 크게 즐어 든 것이다.(이에 대해서는 지난 1월 8일 텍사스 주립대의 최진봉 교수, 그리고 1월 22일 홍헌호 시민경제사회연구소 연구위원이 <프레시안> 등에 전모를 파악할 수 있는 기사를 게재한바 있다.)

왜 그럴까? 경제상황도 상황이지만 보다 근본적인 이유는 자본의 이윤논리와 효율성 논리에 의해 관철되는 일인다역화, 원소스멀티유즈, 작업의 컴퓨터화, 통폐합 시너지, 구조조정, 외주용역, 계약직 고용 등등의 업무과정, 작업방식, 회사조직의 변화가 주 원인이다.

강제로 밀어붙이는 희망?

2MB 정부와 한나라당의 희망대로, 또 조중동 같은 신문이 주장하듯이 법을 만들어 미디어나 정보통신 분야 산업이 발전하고 일자리가 늘어나면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가? 정부나 한나라당은 재벌·조중동 방송법이 그럴 것이라고 진심으로 믿는 듯하다. 그렇게 될 수 있다면 정말 좋은 일이다. 그러나 그건 틀린 이야기이다. 좋게 말해 희망사항일 뿐이다.

지난 1995년 삼성은 영상사업에, 현대는 케이블 사업에 뛰어들었다. 불과 4년 후인 1999년 그들의 영상사업, 케이블 사업은 문을 닫았다. IMF 사태가 직접 원인이라고만 알려져 있을 뿐이다. 지금은 IMF 보다 구조적으로 더 어려운 시절이라고들 말한다. 앞서 여러 사례에서 보았듯이 미국도 예외가 아니다. 그런데 그저 장밋빛 수치만 들이대면서 박정희 식으로 밀어붙이면 대한민국의 국부를 창출할 수 있다고 말한다.

미디어나 정보통신 산업성장의 핵심은 지식이다. 때린다고 공부 잘하는 것이 아닌 것처럼, 마구 밀어붙인다고 모자란 지식이 갑자기 늘어나지는 않는다. 그런데도 그럴 것이라고 마구 우겨대고 있다. 정말로 국가의 미래 먹거리를 생각한다면 ‘우리를 따르라’고 소리높일 것이 아니라 ‘도대체 왜 우리가, 그리고 잘나가는 미국마저도 이런 한계에 부딪쳤는지’를 진지하게 따져보고 배우는 것이 늦더라도 더 올바른 일이다. 터무니없는 희망을 내세우는 것은 도박사들이나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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