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찍이 라디오를 접수했었다. 그건, 일종의 동원령이었다. 깜놀했다. 하지만 부족하고 또 부족했던 모양이다. 이번엔 총동원령이다. 사람, 물자 따위의 모든 것을 대통령에게 집중시키라는 총체적 명령이 떨어졌다.

▲ ⓒ청와대 블로그(blog.naver.com/mb_nomics)
받들어 삽. 우선, 경제 각료들이 벙커로 모였다. 공개적인 은밀함이었다. 청와대 지하에 벙커가 있다는 것만이 포고되었다. 그 광경 ‘그로테스크’(grotesque)했다. 푸코가 말했던가, 권력이 작동하는 방식이 대개 그렇다고. 상상하기 야만스러울 정도로 원초적이고 기가 막히게 본능적이다.

한나라당 사무처가 보고했다. 118만 당원들에게 메시지를 남기시면 어떠시겠냐고. 마다할 까닭이 없었다. 그들이야말로 금수들이 활개치는 이 모진 시절을 함께 살아가는 금쪽같은 동지들이 아닌가? 청와대는 흔쾌했단다. 지난 15일 오후, 휴대전화번호가 ‘등록’된 전 한나라 당원들에게 녹음된 신년 인사가 전파됐다.

“대통령 이명박입니다. (중략) 10년 만의 정권교체를 이루고 뜨거운 감격을 함께 나눈 지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집권 2년차를 맞았습니다. 흔들리는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어려워진 경제를 반드시 살려내고 선진 일류국가를 이뤄내겠다는 약속을 반드시 지킬 공동책임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우리가 용기를 갖고 힘을 모은다면 올해 경제위기를 극복하고 내년은 감격으로 다시 대면할 수 있을 것입니다.(생략)”

그렇게 ‘등록’된 국민들만을 향한 1분7초짜리 메시지는 “진심으로 고맙고 사랑합니다. 건강하시고 새해 복 많이 받으시길 바랍니다”로 마무리되었다고 하니, 살뜰하기도 하셔라, 제왕적 대통령. 다감도 하여라, 근대적 통치술이여. 아, 뭐란 말인가. 차마 훈훈하다 하지 않을 도리가 없는 기괴한 발상에서 느껴지는 참상은.

그런데 그것만으로 또 부족하였나 보다. 그러하니 총동원 체제가 아니겠는가. 국민의 아니 천부당만부당, 오직 국가의 수족일 뿐인 공무원들에게도 복음을 전파하셨다. 다만, 이번에는 동지를 향했던 살뜰함과 다감함 대신 엄부의 심정으로 비정한 매를 먼저 치셨다.

20일 오후 메시지를 보내기로 결심하시고, 21일까지 그러니까 단 하루 만에 중앙공무원과 지방공무원 전원의 휴대전화번호 목록을 가져오라는 명을 하달하셨다. 애당초 시간적으로 불가능한 일임을 제쳐두더라도, 그것은 위법이었다. ‘공공기관의 개인정보보호에 관한 법률’은 본인의 동의 없는 임의적인 개인정보 수집을 금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들 어떠하고 저런들 어떠하랴. 일찌감치 법치주의를 천명하셨던 대통령이셨다. 법치주의 하시겠다는데. 법치주의 안하면 민주주의 안 된다는데. 그렇게 우선 법치주의부터 하시겠다는데. 아직 못 알아들으셨나? 그러니까 사회발전 단계에서 법치주의란 민주주의 이전의 단계라는 말씀이시다. 그리하여 우리는 지금 총동원령을 받았다. 민주주의의 지평에 서있는 상식의 수준을 한 단계 밑의 역사적 지평으로 끌어내리고 말겠다는 결연한 의지로 분기탱천 총력전을 펼치고 있는 정부이다. 법은 곧 나발이다.

지금이 무슨 중세냐고? 과장하지 말라고, 아직도 믿지 못하시겠다면 여론을 다루는 저들의 유치찬란한 자세를 보라. 어제오늘 계속해서 언론사의 설문 조작을 독려하는 경찰의 인터넷 전술이 속속 공개되고 있다. MBC <100분 토론>을 비롯한 5개 언론사에서 시행하고 있는 ‘용산참사’ 관련 설문에 경찰 그리고 경찰 가족 심지어 전의경들까지 총동원되고 있다. 그리하여 여론은 정량적으론 겨우 팽팽함을 유지하고 있다. 그 여론의 아슬아슬한 긴장감 연출하기 위하여 휴대폰, 음성메시지, 여론조사 등 민주주의의 첨단을 상징하는 기술적 장치들은 치도곤을 당하고 있다.

그러했노라. 학교 용지를 전용해 만든 불법 테니스장에서 폭우로 방재당국에 비상이 걸리거나 말거나 지방자치단체의 공무원노조들이 파업을 하거나 말거나 유유자적 황제 테니스를 즐겼을 때 알아봤어야 했는데 둔감했다. 생각해보니, 청계천을 복원한다며 청계천을 거대한 시멘트 연못이자 옆으로 흐르는 기괴한 분수로 만든 것도, 필요할 때마다 민중에 의해 쓰임새가 결정되던 시청 앞 광장을 베르사이유의 궁전에나 어울릴 법한 조형물로 만든 것도 같은 맥락이었음이다. 아, 민주공화국의 ‘대통령’님은 알고 보니 ‘각하’셨다.

비판하면 배제하고 비판자를 비난하며 상황을 돌파해가는 형성된 천성이야 어쩔 수 없겠지마는, 대통령이 ‘동네깡패’처럼 굴면 곤란하다. 정당한 절차에 의해 뽑힌 대통령에 의해 시대의 지평이 추락하는 것이야 공화국의 일원으로서 정직하게 감내해야 하는 일일 테지만, 오직 나와 동일해야만 살려두겠다는 오랑캐의 나라에서는 정말 살고 싶지 않음이다.

이명박 서울시장 시절 어느 외신은 서울시를 향해 ‘어린(young) 민주주의’의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는 표현을 했었다. 어린 민주주의의 사고를 치던 이가 대통령이 된 지금은 어떠한가? 시대는 최소한의 도덕과 윤리를 잃어 일사분란해지고 있다.

권력은 사용할수록 막강하고 곧 세상을 지배할 수 있지 싶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는 것이 동서고금의 역사적 보편적 진실이다. 당원이 공무원이 그리고 특히 국민이 계몽의 대상이던 관제의 시절은 분명 지났다. 여론을 조작할 수 있다고 여기는 근대적 제왕적 사익적 통치관을 어찌해야 할까? 아니면 나는 마루구스병(설사병인데 간첩과 접촉하면 걸리는 것으로 여겨지는 영화 <효자동 이발사>에서 나오는 가상의 병)에라도 걸렸다고 보건소를 찾아가야 하는 것일까. 퇴행적이며 사사롭기까지 한 어느 시대가 만들어낼 미래가 점점 두려워진다. 그나저나 “네트는 광대하다”던 <공각기동대>에의 마지막 대사가 유효하지 않으면 어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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