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자흐스탄 출신의 한국계 프로복싱 세계챔피언 게나디 골로프킨이 6개월 만에 열린 타이틀 방어전을 다시 한 번 KO승으로 장식하며 지존으로서의 면모를 재확인시켰다.

현재 세계복싱협회(WBA)와 국제복싱연맹(IBF), 세계복싱평의회(WBC, 잠정) 등 3대 메이저기구와 국제복싱기구(IBO) 미들급 타이틀을 보유하고 있는 골로프킨은, 24일 오후(한국시간) 미국 캘리포니아 잉글우드 더 포럼에서 열린 도전자 도미닉 웨이드(26, 미국)와의 타이틀 방어전에서 2라운드 2분37초 만에 KO승을 거두며 타이틀 방어에 성공했다.

이로써 골로프킨은 프로 통산 전적 35전 전승 32KO을 기록했다.

골로프킨은 특히 자신이 치른 17차례에 걸친 세계타이틀전에서 모두 KO승을 거둔 것을 포함해, 지난 8년간 치른 22차례 경기에서 모두 KO 또는 TKO 승리를 거두는 놀라운 KO 퍼레이드를 이어가고 있다. 골로프킨이 판정승을 거둔 가장 최근의 경기는 지난 2008년6월 아마르 아마리와의 8라운드 경기에서 3-0 판정승을 거둔 경기다.

사실 이번 웨이드와의 타이틀전은 경기 일찌감치 ‘미스매치’라고 표현이 될 정도로 결과가 빤히 보이는 경기였다. 누가 이기느냐보다는 웨이드가 얼마나 버틸 수 있을 것이냐가 관심사였던 경기였다.

그런 예상은 경기 시작을 알리는 공이 울린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그대로 현실이 됐다.

1라운드 초반 골로프킨은 웨이드와 가벼운 펀치를 주고받으며 탐색전을 펼쳤고, 1라운드 중반을 넘어서면서 서서히 페이스를 끌어올렸다. 그리고 1라운드 종료 7초를 첫 다운을 빼앗았다. 웨이드와 접근전을 펼치다 던진 골로프킨의 강력한 오른손 훅이 웨이드의 왼쪽 관자놀이 위쪽 머리를 강타했고, 그 충격으로 웨이드는 순간 다리가 풀리며 바닥에 주저앉았다.

경기 종료 직전 나온 다운이었으므로 심판이 카운트를 세는 동안 1라운드 종료를 알리는 공이 울렸고, 웨이드는 그렇게 1라운드를 버틸 수 있었다. 하지만 이미 대세는 기울어 있었다.

골로프킨, 22연속 KO승 [AFP=연합뉴스]

1분의 휴식시간 후 2라운드가 시작됐고, 승리에 대한 확신을 가진 골로프킨은 적극적으로 웨이드에 달려들었다.

웨이드는 골로프킨보다 팔길이가 11cm나 긴 유리한 신체조건을 가지고 있었지만, 상대에게 펀치를 뻗을 수 있는 적정거리를 결코 허용하지 않는 골로프킨의 접근전과 강력한 펀치력에 부담을 느낀 나머지 이렇다 할 저항을 하지 못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골로프킨의 라이트 어퍼가 웨이드의 턱을 강타했고, 웨이드는 다시 한 번 바닥에 넘어졌다. 심판이 ‘8’까지 카운트를 했고, 웨이드에게 싸울 의사가 있는지를 물었는데 웨이드는 말로는 싸우겠다고 하면서도 눈빛은 이미 전의를 상실해 있었다.

웨이드에게 반복해서 2-3차례 싸울 의사를 확인한 후에 심판은 경기 재개를 선언했지만 이번에는 골로프킨의 라이트 스트레이트가 정확히 웨이드 안면에 꽂혔고, 바닥에 쓰러진 웨이드는 심판이 ‘10’까지 카운트 할 동안 일어나지 못하는 듯 일어나지 않는 것으로 더 이상의 경기를 포기했다.

골로프킨은 그 순간 링을 둘러싼 사방의 관중들에게 일일이 머리를 숙여 인사하는 세리머니를 펼쳤다. 이견의 여지가 있을 수 없는 화끈한 KO승이었다.

하지만 이번 경기는 분명 골로프킨의 이름값에 턱없이 미치지 못하는 경기였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골로프킨 정도의 기량과 커리어, 그리고 현재의 위상을 생각하자면 지금쯤 그가 펼쳐야 할 경기의 상대는 현WBC 미들급 챔피언인 사울 ‘카넬로’ 알바레즈나 미겔 코토, 아니면 아미르 칸 정도는 되어야 했다.

골로프킨이 미국 출신의 복서였다면 이미 성사되고도 남았을 카드들이다. 하지만 실력에 비해 비즈니스라는 측면에서 밀리는 골로프킨에게 그의 궁극의 목표인 미들급 천하통일의 기회는 번번이 뒤로 밀리고 있다.

일례로 골로프킨이 작년 10월18일 IBF 챔피언이던 데이비드 르뮤를 8회 TKO로 제압하고 WBA WBC(잠정)에 이어 IBF까지 3대 메이저 기구 통합 챔피언에 등극하자, 전문가들은 골로프킨이 코토와 알바레즈 간 경기(WBC 미들급 세계타이틀매치)에서의 승자와 내년 상반기 중 대전을 가질 것으로 확신을 가지고 있었지만 결국 올 상반기 골로프킨의 상대는 이번에 때려눕힌 웨이드였다.

골로프킨, 22연속 KO승 [AFP=연합뉴스]

골로프킨 입장에서는 WBC ‘잠정’ 챔피언으로서 ‘인정’ 챔피언인 알바레즈와의 경기를 통해WBC 타이틀에 붙은 ‘점정’ 꼬리표를 떼어버리기를 원하고 있지만 알바레즈는 골로프킨과의 대결에 미온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알바레즈는 다음 달 8일 미국 라스베이거스 T-모바일 아레나에서 도전자 아미르 칸을 상대로 1차 타이틀 방어전에 나선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골로프킨-알바레즈 카드 성사에 있어 걸림돌은 ‘체중 문제’다.

알바레즈 측은 알바레즈가 미들급(한계 체중 160파운드, 72.6kg) 타이틀을 지녔지만 미들급이 적정 체급이 아니라면서 계약 체중으로 싸워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알바레즈의 소속사인 골든 보이 프로모션의 에릭 고메즈 이사는"카넬로는 미들급 복서가 아니다. 골로프킨이 진정 경기를 원한다면 계약 체중에 대해 협의해야 한다"고 입장을 밝혔다.

실제로 알바레즈는 작년 코토와도 155파운드 계약 체중 경기를 펼쳤고, 앞으로 있을 칸과의1차 방어전도 155파운드 계약체중으로 치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WBC의 입장에서 보면 미들급에도 엄연히 한계 체중이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한계 체중보다5파운드나 적은 체중으로 타이틀전을 치르자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는 알바레즈에 대해 타이틀을 박탈하고 골로프킨에게 ‘인정’ 챔피언 타이틀을 주는 것이 원칙적으로 맞지만 그렇게 하지 않고 있다.

결국 상황을 종합해보자면 골로프킨-알바레즈 카드의 성사가 지지부진한 진짜 원인은 두 선수의 경기를 좀 더 비싼 값에 팔려고 하는 WBC와 프로모터들 사이의 일종의 ‘침묵의 카르텔’ 때문이라고도 볼 수 있다.

‘세기의 대결’로 불린 작년 메이웨더-파퀴아오 카드가 성사되기까지 수년간 최대한 시간을 끌며 그 가치를 최고치까지 끌어올린 다음 경기를 치름으로써 천문학적인 흥행기록을 만들어낸 선례를, 골로프킨-알바레즈 카드가 재현할 수 있을지 지켜볼 일이다.

스포츠 전문 블로거, 스포츠의 순수한 열정으로 행복해지는 세상을 꿈꾼다!
- 임재훈의 스포토픽 http://sportopic.tistory.com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