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 21일 워싱턴의 링컨기념관 앞에서 열린 대통력 취임식에서 미국의 제44대 대통령 버락 오바마는 1861년 링컨 대통령이 사용한 성경에 손을 얹고 취임선서를 했다. ‘검은 링컨’으로 불리는 오바마가 미국 최초의 흑인 대통령이 되면서 요즘 링컨이 세인의 주목을 받고 있다.

‘특허의 아버지’ 링컨

‘흑인 노예 해방의 아버지’로 불리는 링컨에게는 또 다른 ‘아버지 별칭’이 있다. 그는 미국 대통령으로서 유일하게 특허를 출원한 인물로, ‘특허의 아버지’라고도 불린다. 얕은 물 위에서도 배가 움직일 수 있도록 부력을 이용한 장치를 발명한 링컨은 1849년 5월 22일 미국 특허번호 제6469호를 받았다. 미국 특허청 건물에는 “특허는 천재의 불꽃에 관심의 연료를 더한다.(The patent system added the fuel of interest to the fire of genius.)”라는 링컨의 문구가 새겨져 있다. 이어령 전 문화관광부 장관은 2007년 1월 저작권법 제정 50주년을 기념하는 포럼에서 링컨이 남북전쟁에서 승리한 이유는 “그의 주변에 개인지뢰 발명가 등이 많았기 때문”이라고도 말했다. 이어령 전 장관의 이야기대로라면 링컨은 특허 발명을 보호해서 흑인 인권 해방의 전기를 마련한 셈이다.

그러나 20세기 이래 특허는 ‘특히’ 흑인에게 재앙이었다. 흑인이 인구의 대다수인 아프리카는 에이즈로 인해 ‘죽음의 대륙’으로 불린다. 전 세계 에이즈 감염인 4천여만명 중 3천만명이 아프리카에서 살고 있다. 25년 후에는 아프리카에서 에이즈로 인한 사망자 수가 1억명에 달할 것이라는 끔찍한 전망이 공공연하게 나온다. 1987년 최초의 에이즈 치료제인 ‘지도부딘(AZT)’ 이후 수 십 종의 에이즈 치료제가 개발되어 에이즈는 당뇨나 고혈압과 같은 만성질환처럼 다스릴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아프리카의 흑인들은 1인당 국민소득보다 더 높은 약값 때문에 약 한번 먹어보지 못하고 죽는 경우가 태반이다. 약값은 왜 높을까? 전 세계 모든 국제기구와 관련 전문가들은 이구동성(異口同聲)으로 ‘특허’를 그 이유로 꼽는다.

의약품 특허와 강제실시

1995년 세계무역기구(WTO)가 출범한 이후, 특허는 의약품의 수급 문제에 관한 논의에서 가장 첨예한 쟁점이 되었다. 물론, 환자의 의약품에 대한 경제적 접근 가능성은 정부의 지원이나 보험제도가 어느 정도 뒷받침되어 있는가에 따라 차이가 있다. 하지만, 의약품 가격이 지나치게 높다는 것은 세계적인 공통점이다. 20년이라는 보호기간 만료 전후의 가격차이나, 특허를 보호하는 국가와 그렇지 않은 국가 사이의 의약품 가격 차이가 100배가 넘는 것도 있다. 반면, 마진율이 무려 2000%에 달하는 특허 의약품도 있다. 때문에 정부가 가격을 낮추려고 하지만, 제약회사는 오히려 공급 거부로 맞선다. 특허권자인 제약회사가 발명에 대한 경제적 보상으로써 특허를 부여받은 의약품을 20년간 독점적으로 생산 및 판매할 권리를 갖기 때문이다.

결국 2001년 아프리카 국가를 중심으로 한 제3세계 국가들은 ‘TRIPS 협정과 공중보건에 관한 도하선언문’을 채택하였다. 선언의 내용은 공중보건 보호조치를 위해 각국 정부의 자율권 보장으로, 주된 목적은 ‘강제실시(Compulsory License)’의 현실화이다. 강제실시란 특허권자가 아닌 제3자가 정부의 승인을 얻어 특허 의약품과 같은 약을 생산·공급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이다. 특허를 통한 제약회사의 시장독점에 대항할 수 있는 유일한 무기인 셈이다.

있어도 못 먹는 약, 푸제온

2008년 12월23일 국내에서는 에이즈 치료제 푸제온(fuzeon)에 대한 강제실시 청구가 있었다. 1961년 특허법이 제정된 이래, 네 번째 강제실시 청구였으며, 의약품에 대한 청구로서는 세 번째, ‘공공의 이익’이 청구 이유가 된 두 번째 청구였다. 푸제온은 스위스계 다국적 제약회사 로슈가 생산하는 에이즈 치료제이다. 그러나 2004년 식약청의 시판 허가 이후 4년이 훨씬 지난 지금까지 한국에서 그 약을 구경조차 할 수 없다. 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 제시한 푸제온의 가격이 너무 낮다며 로슈가 국내에서 푸제온을 공급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한국의 한 에이즈 환자는 제 때에 푸제온을 공급받지 못해, 지난 2006년 말 의사에게 시한부 인생 선고까지 받았으며, 결국 한 쪽 눈이 실명되고 말았다.

푸제온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어떤 약을 생산할 수 있는 제약회사가 이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이상 의약품에 대한 경제적 접근을 달성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 경우 약값은 협상을 통해 내리는 것이 아니라 여러 곳에서 만들도록 해서 저절로 내려가게 해야 한다. 설령 제약회사가 자율적으로 약값을 내린다 하더라도, 어떤 약을 생산할 수 있는 제약회사가 이 세상에 하나밖에 없다면, 필요한 양을 자율적이고 안정적으로 공급하는 것을 보장할 수 없다. 로슈가 독점 생산하는 또 다른 약으로, 조류독감의 유일한 치료제인 타미플루(tamiflu)가 그 경우이다. 세계보건기구(WHO)의 권장량은 각국 ‘인구의 20%에게 투약 가능한 분량’이다. 로슈의 생산능력으로는 기껏해야 연간 800만명의 수요만을 충당할 수 있다. 하지만, 로슈는 2016년까지 타미플루의 특허를 포기할 생각이 없음을 분명히했다. 그리하여 2005년부터 전 세계적으로 타미플루에 대한 강제실시가 논의되고 있다.

이처럼 강제실시는 그 자체만으로 약값을 떨어뜨리고 약물의 안정적 공급을 향상시켜, 의약품에 대한 공공의 통제를 강화한다. 로슈가 푸제온의 공급을 거부하는 사태에 대해 프랑스, 태국, 미국 등 각국의 NGO가 한국 정부의 강제실시 발동을 요구하고 있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그러나 국민의 건강을 책임지는 보건복지가족부는 ‘행정권한법정주의’ 운운하면서 특허청 소관이라고 발뺌을 한다. 그러면서도 “한국은 특허를 존중하는 나라다”라며 특허청 대변인 노릇이나 하고 있으니 기가 찰 노릇이다.

특허통? 특허꼴통!

특허‘통(通)’으로 통하는 특허청은 2003년 3월 백혈병 치료제 글리벡에 대한 시민사회단체들의 강제실시 청구를 기각했다. “발명품이 고가임을 이유로 강제실시를 허용할 경우, 발명자에게 독점적 이익을 인정하여 일반 공중의 발명의식을 고취하고, 기술개발과 산업발전을 촉진하고자 마련된 특허제도의 기본취지를 크게 훼손할 수 있는 만큼 강제실시 인정 여부는 이러한 두 가지 상충되는 이익을 비교 형량하여 신중히 결정해야 하는 당위적인 측면”을 기각의 이유로 제시했다.

그러나 강제실시가 특허권자의 권리 남용을 제한하기 위해 만들어진 제도인 만큼, ‘환자들이 얻을 이익’과 비교형량해야 할 대상은 발명의식이나 특허제도의 기본 취지 훼손이라는 추상적인 이익이 아니라, ‘특허권자 개인의 사익’이다. 특허청의 논리대로라면 오히려 특허법 제106조와 제107조, 나아가 무역관련지적재산권협정(TRIPS) 제31조와 제44조에 명시되어 있는 강제실시 제도 자체가 존재해서는 안 될 것이다.

특허법은 ‘발명의 보호’와 ‘발명의 이용’을 도모하는 균형 작업을 통해, 기술 발전을 목적으로 하는 법률이다. 복지부와 특허청이 앞다투어 설파하고 있는 “강제실시가 특허의 보호를 방해한다”는 논리는 1995년 TRIPS가 체결되던 때부터 강제실시를 무력화하기 위해 다국적 제약회사들이 내놓은 가공의 대립개념일 뿐이다. 하지만, 균형 작업을 도모해야 하는 규제자인 특허청은 이윤에 눈이 먼 특허 ‘꼴통’들의 주장을 앞장서서 외치고 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흑인 인권 해방의 역사는 특허권자인 링컨 대통령이 지뢰 발명을 보호함으로써 이뤄진 것이 아니다. 특허를 비롯한 산업재산권의 보호를 마치 인권해방 선언인양 천명하는 이어령 전 장관의 발언은 역사를 망각하고, 현실을 외면한 저급하기 짝이 없는 궤변일 뿐이다. 오히려 인명을 살상할 목적으로 만들어진 지뢰 발명은 특허제도의 공공성을 훼손시키는 만큼, 특허 부여의 대상이 되어서도 안 될 것이다. 19세기 남북전쟁 당시의 미국에서나, 21세기 한국에서나 ‘특허를 보호하기만 할 뿐’인 특허 제도는 다량의 특허를 보유한 기업의 이윤 말고는 그 누구의 인권과도 조응하지 않는다.

푸제온 강제실시 청구의 귀추가 주목되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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