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기'하면 조건반사적으로 성인물을 떠올리지만, 실상 금기는 사회문화적 개념이다. 금기가 많아질수록, 시대는 퇴행하고 사회는 음란해진다.

영화 <음란서생>은 금기를 다룬다. <음란서생>의 금기는 무엇이었나? 김민정의 '슴가' 아니면 한석규의 '서사' 둘 다 아니다. <음란서생>이 말하고자 하는 금기의 본질은 왕으로 표상되는 남성/가부장주의 체제를 보존하고픈 욕망과 표현의 억압적 체계이다. 지배자의 사적 취향을 공적 체제를 통해 보호하려는 욕망의 충동은 필연적으로 대다수의 사적 취향을 공권력을 통해 억압하고자 하는 반동의 시대, 해석 획일화의 시대로 치닫는다. 한석규의 이마에 새겨진 낙인처럼 금기가 늘고 또렷해진다. 오늘은 어떠한가? 오늘의 금기가 이명박으로 표상되는 우익/공안주의 체제를 만수무강하고픈 욕망의 충동이라고 단순화하면 것도 철부지같은 소리겠지만, 분명히 시대는 걷잡을 틈 없이 퇴행하고 있다. 음란한 해석은 판을 치고 있다.

엊그제, 어느 선배가 술자리에서 농을 했다. 지난여름 촛불 정국 당시, 초등학교 다니는 아들이 '쥐박이는 전과 14범이다~♫'는 노래를 흥얼거려 심히 놀랬는데, 얼마 전에는 아들이 '이명박은 민주공화국이다~♫'로 가사를 바꿨단다. 국가원수를 모독하는 것부터 배우는 것은 아닌지 싶어 야단을 치려 물었단다. '대한민국이 민주공화국이지, 왜 이명박이 민주공화국이냐고? 또 지난여름 노랫말에서 가사를 왜 바꾸었냐고?' 맹랑한 아들 왈, "아빠, 요새 밖에 나가서 쥐박이는 전과 14범이라 그러면 잡혀가요." 순간, 모두가 박장대소를 터뜨렸다. 근데, 확 뒷골이 서늘하더라. 불과, 1년 전만 하더라도 대통령 욕하는 놀이가 전 국민의 스트레스 해소 스포츠였는데.

그렇다. 금기는 두려움이 보편화되는 것이다. 고백하건대, 나도 두렵다. 이렇게 글을 금기 없이 '막' 써대다가 긴급체포 당하는 건 아닐까 싶고, '20대, 고졸, 프리랜서' 주제에 사회정치경제문화 가릴 것 없이 떠들다 검찰에 의해 개망신 당하진 않을까 싶어 떨린다.

근데 어디, 나 뿐만이겠는가? 알만한 대학교수들은 알게 모르게 들어오는 압력이 실감난다 하고, 광고로 먹고 사는 매체의 기자들은 뚝뚝 떨어지는 광고가 두렵단다. 입장의 선명함으로 밥을 버는 칼럼니스트들은 아예 밥줄 끊길까 싶어서인지 두루뭉술하게 버무리는 기교로 승부 보려 한다. 누구랄 것도 없이 '오직, 두려움을 금기시하자. 한 번도 두렵지 않았던 것처럼'을 속으로 몇 번은 되뇌어야 또 하루를 버틸 수 있는 하수상한 시절이다.

MB정권은 방송국에도 새로운 금기가 만들었다. 지금 보도국에선, '검은 옷'을 금기시 하는 색깔의 놀이가 한창이다. 검은 옷, YTN 투쟁 이후 그 칼라는 언론을 장악하려는 MB정권의 일사분란한 행동을 제지하는 불온한 브레이크의 상징이 되었다. 특보단 출신들을 언론의 각 영역에 낙하산으로 던지고, KBS를 완력으로 장악하고, MBC를 압박하겠다는 MB의 계획은 일사분란했다. 그런데 그 반동적 움직임에 제동을 건 것이 인식조차 하지 않았을 YTN이었다. 검은 옷은 YTN 투쟁의 상징이다. YTN이 검은 옷을 입은 이후 그 색깔은 MB정권의 언론 장악에 맞서는 상식의 상징 칼라가 되었다. YTN 투쟁의 정의로움을 지지하는 마음으로, 언론의 공정성이 정권의 완력보다 중요한 것이기에, 민주주의는 죽을 수 없기에 MBC도, SBS도 검은 옷을 입었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충견'스런 위원들이 입에 걸레를 물고 떠들어댔지만, 끝내 막진 못했다. 그런데 유독, KBS만 입지 않았었다.

KBS는 애증의, 가증스런 이름이었다. 오죽하면, 여전히 네티즌들은 '캐배스'(완화시킨 표현이다.)라고 부른다. KBS에 가면, 투쟁이 아니라 투정을 하는 '노조'가 있고, 낙하산 사장을 지키려고 공권력이 투입되도 그런가보다 하는 '어용'들이 있고, 바른말 했다는 이유로 선/후배, 동료들이 한직으로 털릴 때도 침묵했던 '괴물'들이 있다고 했다. 그런데, 드디어 KBS에도 검은 옷이 등장했다.

▲ KBS <뉴스타임> 22일(목) 방송 장면

▲ KBS <뉴스타임> 23일(금) 방송 장면
KBS <뉴스타임>을 진행하는 정세진 아나운서와 이윤희 기자가 지난 22일 그리고 23일 이틀 연속으로 검은 옷을 입고 스튜디오에 앉았다. '깨어나는 계기를 만들겠다'며 KBS 노조가 제작거부를 했던 이틀이었다. 보도국 차원의 결정인지, 정세진/이윤희 아나운서의 소신인지 그것도 아니면 과잉된 호들갑일 뿐인지 확인하진 않았다. 뭣도 아니라면 다시 맞이할 실망이 두려웠다. 그 검은 옷 어렸을 적 설빔처럼 반가웠다. 지금은 아니지만, KBS는 언론노조에 가입된 모든 사업장 가운데 가장 큰 조직이었고, 가장 강한 조직이었다. 그리고 한 동안은 언론운동의 '금기'이기도 했다. 첫 단락을 뒤집어 말하면, 금기가 깨질수록, 시대는 진보하고 사회는 양호해진다. '독일병정'이라 불리는 '퇴행'적 낙하산이 떨어질 때도 저항하지 않았던, 조직적으로 '음란'했던 KBS에도 봄은 움트고 있다. 바닥은 깊을수록 단단한 법이다. 우리 시대의 검은 옷 시즌2, KBS편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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