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도모창대회, 톱스타 X파일, NG 열전, 외국인 며느리 장기자랑 혹은 노래자랑. 진부하다면 진부할 수 있고, 재미있다면 재미있을 수 있는, 명절 때마다 TV를 통해 흔히 접할 수 있는 특집 프로그램들이다. 번한 레퍼토리로 명절 때마다 반복되는 것 같지만, 엄연히 말하자면 그 ‘번함’에도 법칙이 있고, 의도가 있는 법이다.

새해, 올 한 해 빨간날이 며칠인지 세어보는 정도의 ‘센스’를 가진 사람이라면, 설 혹은 추석이 되기 전에 각 방송사 홈페이지에 들러 편성표를 확인하는 ‘센스’도 함께 가지고 있을 터이다. (인터넷이 보편화되지 않았던 그 때, 나는 신문 한 쪽에 실린 편성표를 통해 명절 주요 프로그램을 확인하는 게, 수북하게 쌓인 명절 음식을 보는 것만큼이나 흐뭇했다.)

이 글을 읽고 있는 여럿 가운데, 각 방송사들이 명절 때마다 프로그램 재방, 삼방을 통해 ‘우려먹기’ 한다고 입을 삐쭉거렸던 사람이 있다면, 안타깝지만 올 해는 이런 현상이 더욱 도드라져, 그 입을 더욱 삐죽거릴 수밖에 없을 게다.

본디 명절 편성전략의 기본은 최소 투입-최대 산출이다. 투입요소는 ‘사람’이고 산출요소는 ‘시간’이다. 방송사 사람들도 연휴 때 최대한 많은 사람들이 쉬어야 하므로 적게 일하고 길게 때워야 하는 것이다. (그 악조건 안에서 시청률도 올리고 의미도 찾아야 하는 편성 PD들에게, 결과와 상관없이 경의를!) 그러나 올 명절 편성에서 최소 투입요소는 사람보다 ‘돈’이다.

나라 안팎의 경제 상황이 방송3사에는 더 큰 영향을 줘, 결국 설 특집 프로그램이 대대적으로 축소됐다. 방송3사의 편성 관계자 모두 <미디어스>와 통화에서 “경제 상황이 너무 어려워 제작비 절감차원에서 편성을 했다”고 토로했다. (방송3사가 <무한도전> <1박2일> <패밀리가 떴다> 특집을 준비했다고 하니, 여기에서 위로를 찾으시길.)

신규 프로그램 혹은 특집 드라마를 통해 시청자들에게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했던 이전과는 달리, 기존 프로그램을 다시 편집하거나 최대한 제작비를 절감하는 방향으로 프로그램이 제작됐다. 이 가운데 가장 크게 제작비 절감의 영향을 받은 곳은 KBS2다. 명절 때마다 새로운 프로그램으로 대대적 물량 공세에 나섰던 KBS2는 3개 정도의 신규 프로그램을 제외하고는 모두 재방송 위주로 편성됐다.

▲ KBS 2TV <아주특별한 개그콘서트> ⓒKBS
◇ KBS1, ‘가족’ ‘희망’ 강조하는 편성

“수신료의 가치를 생각”하는 KBS1은 이번 설을 맞아 ‘가족’ ‘희망’ 코드를 살리는 데 주안점을 뒀다. 설 특집 다큐멘터리 <길에서 맛을 찾다>를 비롯한 3편과 지역네트워크 특징을 살린 프로그램 2편을 방송함과 동시에 이미 방송됐던 신년경제기획 프로그램 3편을 재방송한다.

편성팀 관계자는 “KBS1 편성은 다른 오락 프로그램을 방송하는 타 방송사에 비해 경쟁력은 약하지만 공영방송으로서 해야 하는 역할을 한다”며 “경제 상황이 좋을 때 보다는 적지만, 그래도 (공영 방송의 역할을 하기 위한) 신규 제작 프로그램이 여럿 들어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오락적 요소를 강조하는 다른 방송사들에 대한 보완 작용으로, 시청률은 덜 나온다 하더라도 교양, 다큐 등의 특집을 통해 명절의 의미를 되살리자는 것”이라며 “이러한 의도로 편성을 하고 라인업을 짰는데 그 의도가 잘 전달되어 시청자들이 명절에 잘 보셨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 KBS2, 제작비 압박 영향으로 재방 위주 편성

KBS2는 이번 설 때 <아주 특별한 개그콘서트> <쉘 위 댄스> <빅스타 X파일> 등 3개만 순수 제작 프로그램으로 방영할 뿐, 그 외에는 기존 방영됐던 프로그램을 하이라이트로 재방하는 수준으로 편성했다. KBS2는 설 편성을 앞두고, 그 어느 때보다 제작비 압박을 많이 받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편성팀 관계자는 “방송사가 어려우니까 기존 방송됐던 프로그램을 재방하고 기존 특집 프로그램 포맷을 그대로 유지해 파일럿 프로그램도 없다”며 “제작비 압박을 많이 받았다. 영화도 대부분 이미 방송됐던 영화들로, 처음 방송되는 영화는 없다”고 말했다.

◇ MBC, 모든 연령을 아우르는 가족 중심 편성

MBC의 이번 설 특집 프로그램은 총 9개로, 방송3사 가운데 가장 많다. MBC는 <2009 어르신 가요제>와 <추억의 코미디 바이러스>를 통해 중·장년층을 집중 공략하는 한편, <스타 댄스 배틀> <팔도모창가수왕>을 통해 젊은층을 공략, “세대간 소통의 장”을 마련하는 취지로 이중 편성 전략을 짰다.

이와 함께 기존 명절 때마다 방송했던 <외국인 며느리 열전> 등 익숙한 프로그램을 방송하는 한편, 파일럿 프로그램으로 출발해 정규 편성으로 자리 잡은 <우리결혼했어요> <스타의 친구를 소개합니다>처럼, <스타 황당극장 ‘어머나’>를 방송해 시청자들의 반응을 확인한다는 계획이다. 또 <무릎팍도사> <무한도전> 등 주요 인기 프로그램이 특집으로 다시 방영된다.

편성팀 관계자는 “제작비 여건이 너무 어렵기 때문에 기존 방송을 다시 편집해 방송을 한다”면서도 “기존의 프로그램을 방송하더라도 왠만하면 새로 편집하고 재가공해서 시청자들에게 새로운 방법으로 접근하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제작비 문제로 어쩔 수 없지만, <공룡의 땅> 재방송의 경우 아이들도 관심을 가질 만하다고 판단했고 <닥터스>의 경우 특집으로 신생아 병동을 다룬다”며 “여러 프로그램들을 통해 가족의 가치에 대해 다시 생각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재방송이 꼭 시간 떼우기만은 아니다. 방송은 한번 지나가면 다시 볼 수 없는 시간적 한계가 있기에 이러한 부분들을 고려해서 잘 만들어졌다고 판단된 여러 프로그램들 못 보신 분들을 위해서 다시 한 번 방송한다고 이해해줬으면 좋겠다. 설 특집 프로그램을 MBC가 가장 많이 준비한 걸로 알고 있다. 시청자들께서 많이 기대해줘도 좋을 것 같다.” (아! 본 기자, 듣고 나니 가슴 짠하다.)

▲ MBC <스타 황당극장 '어머나'> ⓒMBC
◇ SBS, <스타주니어쇼 붕어빵> 등 파일럿 프로그램 강조 편성

SBS도 경제 상황을 고려해, 기존 오락성이 강했던 특집 프로그램을 줄이고 몇몇의 핵심 프로그램 위주로 편성됐다.

인기 프로그램인 <패밀리가 떴다> <스타킹>을 특집으로 준비하는 한편, 파일럿 프로그램인 <스타주니어쇼 붕어빵>과 <대결!스타셰프> 등을 통해 시청자들에게 신선한 볼거리를 제공한다는 계획으로, 파일럿 프로그램을 통해 시청자들 반응을 살핀 뒤 정규 편성에 반영할 예정이다.

SBS는 설특집 영화로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 등을 편성했지만, 예전에 비해서 영화 편성 자체도 상당히 위축됐다고 한다. 과거 영화는 명절을 채울 수 있는 좋은 콘텐츠였지만, IPTV와 케이블이 대중화되기 시작하면서 영화는 명절 편성에 있어 큰 의미가 없어졌다.

편성팀 관계자는 “경제 상황 때문에 새로운 형식, 특집 프로그램으로 예산을 쓰는 게 어려운 상황으로, 설 특집 프로그램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제작비 때문에 중간에 접은 경우도 있다”며 “이런 점은 시청자들께 죄송하다”고 말했다.

그는 “새로운 프로그램에 대해 좋든 나쁘든 반응이 나왔으면 좋겠다. 그래야 설 편성을 준비한 의미가 있을 것 같다”며 “단순히 시청률이 잘 나오는 게 아니라 시청자들이 프로그램에 대한 반응을 보여야 나중 편성에 있어 변별력을 줄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 SBS <스타주니어쇼 붕어빵> ⓒSBS
명절 내내 한 손에 리모콘을 손에 끼고, 다른 한 손으로 동태전을 집어먹으며 TV앞 ‘죽돌이’가 돼본 적 있는 당신이라면, 올해 방송3사 설 특집 편성은 다소 실망스러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어찌 하겠는가, 이미 경제는 어려워졌고, 방송3사도 심각하게 영향을 받았을 뿐이고, 어떤 사장님은 손수 제작비 절감을 강요했을 뿐인 것을.

방송3사 편성 관계자 모두 “할 수 있는 선에서 열심히 했다”고 강조했으니, 이번 설 연휴 동안 속는 셈 치고, 그들의 말을 믿어 TV앞 죽돌이가 되어 보는 것은 어떠할까?

난, 이 글을 마지막으로 연휴가 끝날 때까지 모든 현안을 안상태 기자에게 살포시 맡기고 싶을 뿐이고!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