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3 총선이 치러진 그 주말 SBS <그것이 알고 싶다>는 세월호 2주기를 맞이하여 ‘세타(Θ)의 경고! 경고! - 세월호와 205호 그리고 비밀문서’를 방영했다. <그것이 알고 싶다>는 세월호가 국정원이 관리하던 배였으며, 사고가 일어난 후 해경 및 청와대는 승객들 구출보다는 VIP에 대한 보고가 우선이었다는 보고도 믿을 수 없는 사실을 알렸다. 세월호 사고가 일어난 건 2014년, 그로부터 2년이 흐른 후에야 숨겨졌던 의혹들이 방송을 통해 드러났다. 하지만 이 방송을 본 다수의 사람들은 만약 며칠 전 치러진 총선에서 현재와 다른, 선거 당일에도 빨간색을 입고 투표장을 향하던 VIP의 노골적인 마음에 드는 결과가 발생했다면 과연 16일의 <그것이 알고 싶다>는 이런 내용을 고스란히 방영할 수 있었을까란 의구심을 표현했다.

진실을 밝히고자 했던 기자는 왜 괴물이 되었나

진실을 알리겠다는 사명감으로 '언론'에 투신한 젊은이가 세월의 때를 묻히며 '정권의 나팔수'나 '개'가 되어가는 건 이젠 더 이상 새로울 것이 없는 현실이라고 <피리부는 사나이>는 말한다. 일개 기자가 자신이 알고 있던 정보로 '딜'을 통해 나이트라인 앵커가 되는 것이 '출세'가 되는 세상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그 '진실'을 포기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될까? 도시를 마비시키는 테러범들의 배후 '피리부는 사나이'의 정체를 밝히기 위해 고군분투해왔던 드라마 <피리부는 사나이>는 길고 긴 여정을 에돌아 비로소 이 굵직한 질문을 던진다.

<그것이 알고 싶다> 세월호 참사 2주기 특집이 방영된 다음 날 일각에서는 <그것이 알고 싶다>와 관련된 내용이 리트윗이 안 되거나, 검색어 연결이 되지 않는다는 의혹이 등장하기도 했다. 물론 기사도 등장했고 검색어 연관도 되었다지만, 다큐의 충격적 진실이 세상에 펼쳐지기엔 언론의 반향이 적극적이지 않다. 드라마의 '한류' 기사는 너도 나도 하루에 몇 수십 개씩 쏟아내는 거에 비해서는 현저하게 적은 수이다.

SBS <그것이 알고 싶다> 세타(Θ)의 경고! 경고! - 세월호와 205호 그리고 비밀문서

윤희상도 그랬다. 14회에 와서야 비로소 밝혀지듯, 그는 용산 참사가 연상되는 13년 전 철거민 참사의 피해자 중 한 사람이 아니라 가해자의 일원이었다. 이제 갓 대학에 들어가 전경으로 차출된 그는 철거 현장에서 눈물을 흘리며 곤봉을 두들겨야 했던 청년이었다. 철거민이 있는 곳에 올라가 피 흘리며 쓰러진 철거민들과 부모를 잃고 절규하는 어린 여명하(조윤희 분)를 보고 주저앉아버린 순수한 젊음이었다. 그리고 병원에서 만난 어린 명하에게 기자가 되어 진실을 밝히겠노라고 약속했던 신념을 가진 사람이었다.

그러던 그가 언더그라운드라는 사이트를 배경으로 사회에 불만을 가진 사람들을 앞세워 13년 전 그 사건의 진실에 다가가기 위해 도시 테러를 일삼는 '괴물'이 되었다. 진실을 밝히겠다는 그의 신념은 변함없지만, 여명하 말대로 자신의 욕망을 위해 타인을 이용하는 서건일과 다르지 않은 배후 세력이 되어버린 것이다. 무엇이 그를 그렇게 만들었을까?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철거민들의 목숨을 삼켜버린 가해자가 된 청년. 그 청년은 그 '가해'의 트라우마를 '진실'을 알리는 것으로 갚겠다고 결심했다. 드라마에서 헛발을 짚었듯 피해자 가족도 피해자도 피해자의 연인도 아니었지만, 그저 국방의 의무를 다하려 했지만 사람들이 죽어나가는 참혹한 현장에 던져진 젊은 청년은 자신이 감당할 수 없는 시대의 비극을 '기자의 사명감'으로 풀어내려 했다. 하지만 막상 그가 언론 현장에서 맞닥뜨린 것은 '정권의 시녀'로서의 '막힌 언로'였다. 세상을 향해 진실을 알리고 싶었던 청년은 결국 그 '진실'을 알리는 방법을 바꾸었다. 그렇게 그는 '피리부는 사나이'가 된 것이다.

tvN 월화드라마 <피리부는 사나이>

가해자도 결국 피해자로 시대의 비극에서 비껴 설 수 없다는 <피리부는 사나이>의 설정은 이창동 감독의 영화 <박하사탕>을 떠올리게 한다. 순수했던 첫사랑을 간직한 청년 영호(설경구 분)는 5.18 진압군으로 복무한 이후 윤희상과는 또 다른 괴물이 되어간다. 자신의 삶을, 그리고 자신의 연인을 망가뜨려 버린 그는 결국 막다른 기찻길에서 '나 다시 돌아갈래'를 외친다. 그렇게 영호가 자신과 자신의 주변을 처참하게 무너뜨려 갔던 것에 비해, '진실'을 알리겠다는 사명감에 헌신한 윤희상의 방식은 좀 더 적극적이면서도 폭력적인 방식, 하지만 수세적이며 자기 파괴적인 방식이다.

13년이 지나, 여러 사람의 희생을 바치고서야 알려진 진실

'진실'을 알리겠다고 명하에게 약속을 했던 청년은 13년이 지난 후에야, 경찰들이 들이닥칠 스튜디오, 그의 마지막 방송이 될 나이트라인의 마지막 멘트에서 그 약속을 지킬 수 있었다. 아마도 그가 잡히기 직전이 아니라면, 그에게 방송국에서의 입지가 좀 더 남아있었더라면, 그의 약속은 어쩌면 더 지연되었을지도 모른다. 그가 비로소 발설한 13년 전의 진실을 위해, 그는 주성찬(신하균 분)의 애인과 오정학 팀장(성동일 분), 결국 자신의 수족이었던 정수경(이신성 분) 등이 희생되어야 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런 도발이 없었다면, 과연 13년 전의 진실이 만천하에 드러났을까란 질문이 돌아온다. 여전히 수면 아래 잠긴 용산 참사를 비롯하여 세월호의 진실처럼 말이다. 그리고 진실을 밝히기 위해 고군분투하다 결국은 자신의 방송을 잃었던 여러 언론인들처럼.

KBS 2TV 월화드라마 <동네변호사 조들호>

아이러니하게도 '언론'이 미처 다하지 못한 임무를 드라마들이 앞다투어 말하고자 애쓴다. 19일 방영된 <동네변호사 조들호>에서 유치원 선생님의 아동학대 사건을 밝히기 위해 법정에 선 조들호(박신양 분)는 다수의 침묵에 대해 소리 높인다. 분명 유치원 비리 내부고발자 보복 사건인 아동학대 사건. 하지만 법정에서 증인이 되어 주어야 할 사람들의 '침묵'에 진실은 덮여버리고 만다고 말한다. 조들호는 다수의 침묵이 바로 진실을 덮게 되는 것이라고 법정의 방청객, 그리고 시청자들을 향해 말한다.

물론 <동네변호사 조들호>에서는 슈퍼맨 같은 조들호의 활약에 사람들은 쉬이 감복하고, 법정에서 진실은 드러난다. 하지만 <피리부는 사나이>로 오면 '진실'을 밝히겠다는 한 청년의 진심은 13년의 시간이 필요한, 그리고 여러 사람의 희생이 더해진 도심 테러 사건으로 변한다. 법정에서 조들호의 호소는 속시원했지만, 그 다수의 침묵을 강요하는 시대 그리고 그 침묵을 깨고 진실을 알리려는 움직임은 '괴물'이 되지 않고서는 힘들 정도로 침울한 시대라고 드라마는 역설적으로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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