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에서 처음으로 부인을 위협해 강제로 성관계를 맺은 혐의로 강간죄 판결을 받은 남편 임모씨가 자살함으로써 법정공방은 일단락됐다. 해당 피고인의 사망으로 부산고등법원에서 진행 예정이던 항소심이 자동으로 기각될 것이기 때문이다. 임씨가 살아 상급심의 판단을 기다렸다면 2심이나 3심에서도 부부 강간죄를 인정하는 판결이 나왔을지, 아니면 지금처럼 여전히 부부강간죄를 인정하지 않는 판결이 나왔을지 알수 없게됐다.

하지만 무엇보다 안타까운 것은 1심 재판 결과 뒤 임씨가 갑자기 죽음을 택했다는 사실이다. 왜 1심 판결에 크게 반발하며 항소심을 준비하던 임씨가 자살이라는 극단적 선택을 하게됐을까. 임씨는 1심 판결 직후 여러 언론사에 전화를 걸어 “검찰 조사와 재판 진행과정에서도 일이 이렇게 커질 줄 모르고 소극적으로 대응한 게 화를 불렀다”며 “항소심에서는 진실을 밝혀 억울함을 풀겠다”고 호소했다고 한다. 또 “나이 차가 큰 외국인 아내가 한국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는 등 나도 섣부른 국제결혼의 피해자”라고 주장했다고도 한다.

이런 점에서 볼 때 ‘국내 최초’라는 법원 판결에 대해 언론의 폭발적인 관심이 결국 임씨를 죽음으로 내몬 것은 아닌지 싶다. 언론이 이른바 뉴스거리가 된다며 임씨의 사생활을 미주알고주알 보도하는 사이 당사자는 자신의 치부가 주변사람들에게 적나라하게 노출되는 데 대해 엄청난 분노와 심적 부담을 느껴 목숨을 끊은 것은 아니냐는 말이다.

물론 이번 판결이 가져올 사회적 파장이 큰 만큼 언론으로서는 관심을 보이는 것이 당연하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사안 자체가 부부 사이의 내밀한 문제인 만큼 자칫 흥미위주나 본질을 벗어난 곁가지 얘기로 흐르지 않도록 최대한 신중한 보도 태도를 견지했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부부 강간죄를 인정한 최초의 판결 중심에는 남편으로부터 보호받아야 할 아내의 인권과 함께 아직 대법원으로부터 유죄로 확정도 되지 않았는데도 무차별적인 비난을 받을지 모르는 남편의 인권도 있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언론뿐만 아니라 재판 내용을 언론에 상세히 공개한 법원도 비판의 잣대로부터 자유로울 수는 없다. 앞으로도 사회적으로 큰 파장과 논쟁을 일으킬 수 있는 판결은 얼마든지 나올 것이다. 그때마다 당사자들이 사회적 논란의 희생양이 돼서는 안될 일이다. 이번 사례를 교훈 삼아 사회적 파장이 우려되는 판결이나 결정에 대한 법원의 브리핑 가이드라인과 함께 보도 가이드라인을 만드는 것이 시급해 보인다.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