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민주당 출신, 시민운동가 출신 미국 대통령 오바마에 대한 평가 중 핵심은, 우리의 눈에는, 남북문제 또는 한반도 평화 정착의 문제다. 과연 오바마 정부는 북한을 어떻게 볼 것이며, 어떤 자세로 대화하거나 싸울 것인지가 아마도 한국에서 바라보는 미국 대통령 오바마에 대한 기대와 우려일 터.

‘김정일 군사위원장을 무조건 만나겠다’는 선거과정에서의 발언이 과연 성사될 수 있을까? 최근의 기류는 작년 유세 때와 상당히 다르다. 여러모로.

지금 한국에서는, 그래서 ‘오바마에 대한 기대와 우려’에 대해서 고민이 많다. 하지만 기대보다는 우려, 즉 한계를 먼저 봄으로써, 대미관계를 고민해야 할 시기다. 막연함에서 구체성으로 문제를 읽어봐야 할 시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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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까지 대북정책에 대한, 대통령 당선인으로서, 대통령으로서 오바마의 어떤 구상도, 공식적으로, 드러난 게 없다. 그리고 상당한 내부 논쟁을 거쳐야 할 것이기에 조만간 그의 대북정책을 만나기는 어려울 것 같다. 그렇다면 구체성을 어떻게 확보할 것인가? 그것은 유사한 정권이 유사한 상황에 어떤 결정을 했는지를 통해, 즉 역사적 경험을 통해 유추할 수 있을 따름. 바로 미국 전 대통령 클린턴으로부터 오바마에 대한 기대와 한계를 읽을 수 있다. 특히 북미관계 한미관계의 실무총책이 클린턴의 부인이자 오바마 정부의 국무장관 힐러리이기 때문에 더더욱.

1994년 6월의 한반도 전쟁위기, 공화당이든 민주당이든, 결국 ‘미국은 미국일 뿐’이라는 사실을 우리사회가, 그것도 한참 뒤에, 절감한 사건이다.

1994년 6월. 미국이 북한의 영변을 폭력하려고 했던 사건으로 알려져 있지만, 진상은, 한반도전쟁이었다. 북한의 도발을 유도할 수 있는 미군의 병력증강프로젝트가 바로 그 해 6월 진행되고 있었다.

6월 어느 날. 당시 주한미국대사 제임스 레이니가 청와대를 방문한다. 당시 대통령 김영삼에게 ‘주한 미국인들을 소개(疏開)해야겠다’고 통보하러 온 것이다.

소개? 한국에 있는 미국인들을 미국으로 피신시킨다고? 그 시점은 미국인 학교가 이미 조기방학을 했고, 많은 미국인들이 빠져 나간 뒤였다. 심지어 CNN은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날 상황을 예상하고, 휴전선에서 생방송을 하기 위해 MBC에 협조요청 공문까지 보냈던 시기. 당시 주한미군사령관 게리 럭은 6월16일, 주한 미 대사 제임스 레이니를 불러 ‘이른 시간 내 주한 미국인들을 소개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제임스 레이니는 당시 한국에 있던 자신의 손자 손녀 세 명에게 미국으로 떠나라고 지시했던 상황이었다.

그날 저녁 김영삼은 클린턴에게 전화를 한다. 미국 대사 제임스 레이니로부터 ‘주한 미국인 소개 통보를 받고서야, 김영삼은 ‘진짜 전쟁이 일어나는구나’하고 깨달은 것이다.

당시 상황을 후에 김영삼은 이렇게 회고했다. “클린턴 대통령하고 그 때 대판 싸웠습니다. 여러 차례 전화로요. 그때 내가 그렇게 싸우지 않았다면 아마 ‘남북전쟁’이 일어났을 거예요. 큰 전쟁이 일어났을 거예요.”

결국 미국의 전 대통령 지미 카터가 방북, 북한 주석 김일성을 만나 ‘남북정상회담’ 등을 합의하며 극적인 화해를 끌어냄으로써 클린턴이 병력증강 승인을 중지, ‘1994년6월 한반도전쟁위기’는 일단 수면 아래로 들어간다.

한국의 정보기관도, 심지어 한국 대통령도 모르고 있던 상황에서, 한국인들의 의지와 무관하게, 미국에 의한 한반도에서의 전쟁, 동족상잔의 위기가, 소리 없이 왔다가 소리없이 지나간 것이다.

1994년 5월 주한 미군사령관 게리 럭은 한반도에서의 전쟁계획을 수립하고 워싱턴에 보고했다. 5월18일 펜타곤에서 당시 국방부 장관 페리를 비롯해 미군 수뇌부들이 한국전 계획을 최종 검토, 그 결과를 클린턴에게 보고했다. 결과는 끔찍한 것이었다.

전쟁이 시작된 뒤 3개월 동안 미군 사망자가 5만-10만 명. 한국군 사망자는 최소 50만 명. 한국 민간인 피해자 수백만 명. 재산피해 규모 1조 달러였다.

하지만 이것은 ‘한반도에서 전쟁을 하려는 미국의 검토사항’일 뿐.

당시 비상기획위원장이었던, 이후 김대중 정부에서 국정원장 국방장관을 역임하고 국방위에서 국회의원으로 활동한 천용택이 기억하고 있는 ‘워 게임 시뮬레이션’에 따르면 그 상황은 훨씬 더 심각하다.

한반도에 전쟁이 나면 직접 전쟁터에서 죽는 인원이 500만 명, 간접 피해까지 합하면 2000만 명이 죽거나 다친다. 2000만 명은 남한 인구의 절반에 가까운 숫자다. 여기에 현역, 예비역, 민방위 대원들이 포함된다. 결국 남한은 40~50대 이후의 사람들만 남을 뿐이다. 또한 산업시설이나 도로 항만은 다 깨지고 생산시설과 인프라는 폐허상태가 된다.

1994년 6월11일, 전쟁이 임박한 시점, 미국인들이 한국을 빠져 나가고 있던 상황, 조선일보 논설실장 유근일의 칼럼 일부다.

“조금이라도 약세를 보여서는 안되고 상대방의 ‘페인트모션’이나 테스트에 말려도 안된다. 일관된 강세로 선공은 피하되 눈싸움에 이기면서 몇 달만 지그시 견뎌보자. 그러면 결판은 날 것이고 전쟁은 막아질 것이며 우리의 2세들은 시집 장가 잘 가게 될 것이다.”

당시 대통령 김영삼의 판단 능력, 자체의 문제도 있었지만, 조선일보의 위와 같은 ‘훈수’와 ‘강경 분위기 조장’이 그나마 있던 판단능력 자체를 거세시킨 것이다. 또한 전쟁에 대해 우리나라 대통령이 어떤 결정도 할 수 없는, ‘전시작전통제권’이 미국에 있으니.

상황이 복잡해지고 미국에 불리해지면, 죽고 죽여서라도 전쟁이라는 ‘카드’를 빼들 수 있는 곳이 미국이요, 미국 대통령이다. 공화당 출신이든 민주당 출신이든, 백인이든 흑인이든 결국 미국의 이익을 위해서, 그들의 눈에 극동의 작은 나라, 하나쯤은 언제든지 묻어버릴 수 있는 게 미국이다. 그들의 국가이익에 부합된다면.

오바마에 대한 기대와 한계는, 미국에게 이익이냐 아니냐, 이것이 핵심적인 판단요소임을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참고자료>
정길화 김환균 외 지음, <우리들의 현대침묵사> “1994, 불바다 발언과 전쟁위기,”(최승호), pp. 305-325. 해냄출판사, 2006.
신동아, 체험현대사-강원룡 목사와의 대담, http://cafe.naver.com/oktalktalk/16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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