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 운동이 한창일 지난 4월 1일과 2일. 이틀 동안 경남 창원성산에 거주하는 만 19세 이상 남녀 500명에게 물어보았단다. 휴대폰 번호로 연락하지는 않았고 전화번호부 인명편에서 유선전화 번호를 찾아내어 면접원이 전화를 걸었다. 500명의 응답을 받기 위해 통화에 성공한 사람 수는 3,825명이었다. 응답률이 13.1% 나왔으니 다른 여론조사에 비하면 낮은 수준은 아니다.

늘 그렇듯 응답자들에게 “이번 국회의원 선거에서 다음 후보 중 누구에게 투표하시겠습니까?”라는 질문을 던진다. 1번 새누리당 강기윤 후보, 2번 국민의당 이재환 후보, 3번 정의당 노회찬 후보, 4번 지지후보 없음 이다. 모른다거나 답변이 없으면 그래도 한 번 더 생각해 보라며 다시 한 번 묻는다. 이런 질문의 답을 모으니 500명 중에 31.2%가 새누리당의 강기윤 후보를, 34.8%가 정의당의 노회찬 후보를 지지한다고 응답했다. 동일한 방식으로 이번 조사를 반복하면 100번 조사했을 때 95번은 새누리당 강기윤 후보가 26.8~35.7%, 정의당 노회찬 후보가 30.4~39.2% 사이의 지지율이 나올 것이다. 그러니 이건 누가 앞서고 있는지 모른다고 말하는 것이 맞다.

그런데 이렇게 얘기하면 시청자들은 “그래서 누가 이기고 있냐?”고 물을 것이다. 통계상의 의미란 중요하지 않다. 방송에서는 무조건 답을 주어야 한다. 다행히 설문 문항에 결정적인 질문이 포함되었다. “선생님께서는 다음 국회의원 후보들 중에서 누가 당선될 것이라고 예상하십니까?”이다. 응답자들에게 각자가 지지하는 후보가 누구냐고 물은 것이 아니라, 자신을 제외한 다른 사람들은 누구에게 더 많은 표를 던질 것이냐고 물은 것이다. 그랬더니 예상 밖의 결과가 나왔다. 실제 여론 조사의 지지율과 다르게 새누리당 강기윤 후보는 38.6%, 정의당 노회찬 후보는 29.9%로 새누리당 후보가 이길 것이라고 보는 응답자들이 많았던 것이다.

㈜리서치앤리서치가 MBC의 의뢰로 실시한 4월 1~2일 간 여론조사 질문 문항 중 일부

500명에게 물어본 결과 실제 지지율은 누가 더 높은지 알 수 없었다. 그런데 응답자들은 자신을 제외한 지역 유권자들이 새누리당 강기윤 후보를 정의당 노회찬 후보보다 더 많이 지지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유권자들의 “실제 지지율”과 유권자들의 “머릿속에 있는 창원성산의 표심”은 이렇게 다르다. 사회심리학에서는 이런 차이를 다원적 무지(pluralistic ignorance)라 부른다. 번역이 좀 이상하니 정확히 말하자면 “집단 내 개인의 오해”라고 부를 수 있다. 다시 말해 관념 속 타인과 실제의 타인을 혼동하는 것이다.

4월 5일 MBC 뉴스데스크 여론조사 보도 화면 캡처

여론조사로 파악한 응답자들의 지지율인 <31.2% vs. 34.8%>과 응답자들의 머리 속에서 구성된 타인들의 지지율인 <38.6% vs. 29.9%> 간의 격차는 바로 그런 혼동을 보여주는 예시이지 이 자체로 지지 여론을 반영한 결과가 될 수는 없다. 그런데 MBC 뉴스데스크는 이런 혼동의 사례를 지난 4월 5일 수도권과 영호남 두 꼭지의 “MBC 여론조사”로 보도했다. 게다가 그래픽의 구성에서 응답자들의 실제 지지율 아래에 응답자들의 머릿속 예상을 “당선 가능성”이라는 제목으로 배치했다. 뉴스를 시작할 때 기자가 “누가 당선될 것 같느냐”는 질문의 답이라고 언급했지만, 화면을 보는 시청자들에게는 글자 그대로 당선 가능성으로 받아들여진다. 물론 그 당선 가능성을 누가 어떻게 예측했는지 의문을 가질 틈도 없이 말이다.

이 뉴스는 아마도 역대 여론조사 보도 중 최악의 보도 중 하나로 기록될 것이다. 창원성산 지역구 유권자들의 머릿속에서 만들어진 표심, 그러니까 관념 속 타인들을 구성해 낸 장본인은 바로 MBC와 같은 방송과 신문들이다. 미디어 스스로가 만들어 놓은 유권자 머릿속 타인들을 뻔뻔하게도 “당선 가능성”이라는 수치로 만들어 실제 여론조사 결과에 의심을 갖도록 ‘조작’한 셈이다. 여론조사 질문지의 구성에서 그 보도까지 발주처인 MBC가 아무런 의견을 내지 않았을 리 없다. 정말 “당선 가능성”으로 보도하기 위해 “누가 당선될 것이라고 예상하십니까?”라는 질문을 넣었다면 고도로 악의적인 조사와 보도다. 그런 의도가 없었고 정말 이 질문의 답변을 당선 가능성으로 받아들였다면, 이 보도는 순진함을 넘어 무지함의 극치를 보여준다.

뒤늦게 이 보도를 확인한 것은 지난 4월 6일 지상파 방송 3사 노조가 주최한 총선보도 긴급 점검 합동 토론회에서였다. 문화방송본부 민실위 이호찬 간사가 꼽은 MBC 뉴스데스크의 불공정 보도 중 한 사례로 지적된 보도였다. 놀라웠던 것은 이런 보도가 나갔던 5일 이후 어떤 언론학자나 여론조사 전문가도 이 문제를 지적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MBC 뉴스데스크의 시청률이 그렇게 낮아졌기 때문인가, 아니면 침묵으로 여론 조작에 동참하려 했던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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