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명의 검사장이 검찰을 떠나면서, 검찰을 향해 검찰총장을 향해 그리고 이명박 정권을 향해, 한 사람은 ‘요시나가 유스케’의 명언으로, 한 사람은 ‘메멘토 모리’로 우회적이고 비유의 쓴소리를 남겼다. 특히 임채진을 향해.

▲ 임채진 검찰총장 ⓒ여의도통신
임채진 검찰총장은 지난 2일 대검찰청에서 열린 시무식에서 “대한민국의 정통성과 정체성을 부인하면서 친북좌익 이념을 퍼뜨리고 사회혼란을 획책하는 세력을 발본색원해야 한다”며 “경제정책과 관련된 노사분규나 불법 집단행동이 대폭 증가할 텐데 선제 대응하고 불법필벌의 원칙을 반드시 관철할 것”이라고 밝혔다.

1980년대 귀가 따갑도록 들었던 4자성어 ‘발본색원’이 2009년 신년사에서 그것도 검찰총장의 입에서 다시 재현된 것이다. 국민을 적으로 돌리고 저항세력을 선제 대응의 목표물로 삼고 있다.

임채진 총장은 또 “경제위기 극복과 선진일류국가 진입을 위해 부정부패 수사가 보다 강력하고 지속적으로 수행돼야 한다”고 주장함으로써, 아주 이례적으로 검찰이 경제위기 극복과 선진일류국가 진입의 선봉장을 자임한다.

노무현 정부에서 검찰총장이 된 임채진 총장이 이명박 정부에서 ‘살아남기 위한 안타까운 몸짓’쯤으로 이해했다. 노무현 정부에서는 ‘결코 할 수 없었던 발언’이었으나, 바뀐 정권에서는 ‘안하면 안되는 주장’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한 걸음 더 나아가, 임 총장은 이날 신년사를 통해 경제위기 극복에 초점을 맞춘 ‘검찰권 행사, 법질서 확립, 부정부패 척결’ 등 3대 과제에 모든 역량을 집중하라며, “기업 신용을 훼손하는 악성 유언비어 유포자 등을 집중 단속하라”고 지시한다. 그리고 채 일주일도 지나지 않은 지난 8일 ‘미네르바 체포’와 '미네르바 개인정보'를 검찰이 공개한다. 검찰을 권력의 시녀로, 아예 대놓고, 전락시키는 장면이었다.

이 와중에서 두 명의 검사장이 지난 15일, ‘미네르바 체포와 구속’으로 인해 검찰이 만신창이 나는 광경을 목도하면서 검찰을 떠난다.

검찰은 고랑을 청소할 뿐, 맑은 물이 흐르게 할 수 없어

‘TK약진’으로 평가되는 이번 검찰 인사로 물러나는 박영수 전 서울고검장(57)이 15일 퇴임식에서 후배 검사들에게 “검찰권을 행사할 때는 절제가 필요하다. 검찰권은 시류에 편승하거나 그렇게 비쳐져서는 안된다”고 일침을 가했다. 또 “검찰은 오물이 고여 있는 도랑을 청소할 뿐이지 그곳에 맑은 물이 흐르게 할 수 없다”는 전 일본 검사총장 요시나가 유스케의 말을 인용한다.

1월2일 임채진 검찰총장의 신년사를 겨냥한 발언으로 볼 수 있다. 신년사에서 임채진 총장이 ‘경제난 타개’를 위해 ‘기업 신용을 훼손하는 악성 유언비어 유포자 집중 단속하라’고 지시한 직후 ‘미네르바 체포 및 구속’이 이어졌는데, 이에 대해 ‘검찰권 절제가 아닌 남용’으로, ‘원칙이 아닌 시류편성’으로 본 것으로 해석할 수 있는 대목이다.

경제난 타개를 위해서 검찰이 앞장선다는 것을 ‘오물이 고여 있는 도랑 청소’가 아니라 ‘맑은 물을 흐르게 하려는 검찰의 청와대를 향한 과잉충성’으로 보고, 이를 독려하는 임채진 총장을 겨냥했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임채진 총장의 ‘유언비어 유포자’ 집중 단속 지시가 불과 1주일도 되지 않은 지난 8일, ‘미네르바 체포’라는 검찰 발표로 이어진 것을 보고 ‘권력의 시녀로 검찰을 전락’시키는 검창총장에 대한 불편한 감정을 비유로 드러낸 것이라면 과언일까.

그는 “25년이 넘도록 몸 담았던 공직을 갑자기 떠나려하니 망설임과 번민도 없지 않았으나 ‘감사하다’는 마음만 간직하고 떠난다… 이켜보면 행복하고 축복받은 검사”라고 자신을 돌아보며, 서초동청사를 ‘망설임과 번민을 갖고 갑자기’ 떠났다.

권력을 행사하는 자여! 메멘토 모리!

또 다른 한 명의 검사장은 박영관(57) 제주지검장이다. 퇴임자리에서 ‘권력자의 겸손’을 강조하면서 이명박정권을 우회적으로 비판했다.

16일 오전 퇴임식에서 “로마제국 시절 군중들이 개선장군을 환호하자 한 노예가 ‘메멘토 모리’(Memento Mori:죽는다는 것을 기억하라)를 외쳤다는 일화가 문득 생각난다. 모든 것은 변하니 겸손하고 교만하지 말라는 뜻일 것”이라며 “나를 비롯해 권력을 행사하는 모든 이들에게 ‘메멘토 모리’라는 말을 꼭 전하고 싶다”는 말로 현 정권을 비판한다. 영원히 권력을 잡을 것 같지만, 길어야 4년밖에 남지 않았음에도 전횡과 독단의 정치와 인사를 자행하는 이명박 정부에 대한 불편한 심기를 숨기지 않은 것.

메멘토 모리는 전쟁에서 승리한 후 돌아와 행진하는 개선장군 뒤에 노예 한 명을 세워 로마 시내를 지나는 동안 뒤에서 “메멘토 모리”를 외치게 하는 당시 풍습. 로마 제국 당시 전쟁에서 돌아온 개선장군들은 승리에 들떠 쿠데타를 모의하기도 했기 때문에, 승리한 장군이 군대를 끌고 입성하면 사형에 처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너무 우쭐거리지 말고 겸손하라. 그렇지 않으면 죽는다는 것을 기억하라”는 뜻으로 노예를 시켜서 개선장군에게 ‘메멘토 모리’를 복창하게 만든 것.(http://en.wikipedia.org/wiki/Memento_mori)

자성의 말도 함께 했다. 25년간 검사 생활에 마침표를 찍는 데 대한 진한 아쉬움을, 박 전 검장은 “언젠가는 물러날 것이라 생각했지만 이렇게 칼바람 부는 겨울에 나갈 줄은 몰랐다. 사람 일은 이렇듯 한치 앞도 모르는데 어리석고 자만했던 것 같다”는 말을 남기고, 칼바람 부는 겨울 거리를 향해, 떠났다.

‘권력의 빅4’로 일컬어지는 국세청장 경찰청장은 이미 사의를 표했고, 국정원장도 바뀔 모양이다. 유일하게 살아남은, 임채진 검찰청장.

‘당신도 메멘토 모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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